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2(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

탈무드에서 찾은 세계 1퍼센트 인재교육법, 성장하는 아이 존중받는 부모

by 김태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평범한 20년차 직장인 입니다. <작가는 처음이라>,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작가 입니다.


최근에 출판된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저자가 책의 원고를 브런치 가족분들께 시리즈로 공개합니다

코로나 판데믹 시대, 위기가 아니라 가정복원의 기회일수도 있습니다.


자녀는 신이 맡긴 선물입니다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스토리2_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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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 기사 내용이다.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는 마포대교 북단에 있다. 최근에 이 지구대에 “다리 난간에 기대 우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급하게 경찰이 출동했더니 체격이 건장한 고3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강남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이 학생은 진로에 대해 아버지와 의견 갈등을 겪다가 세상을 등지려 했다고 한다.


“저는 체육학과에 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세요. 고3인데 지금부터라도 수학을 공부하라고 하시니 너무 힘들어요. 전 수학 공부가 너무 어려운데…….”


경찰은 학생을 안정시킨 뒤 “아버지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다. 하지만 진로에 대한 생각이 너무 다르니 너를 알고 부모님도 아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봐라. 선생님이 말해주면 아버지의 마음도 바뀔지 모른다”고 조언했다.


며칠 뒤 학생은 “선생님과 면담하기로 했다”며 고맙다는 문자를 해당 경찰에게 보내왔다고 한다.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학과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자녀가 목숨을 끊으려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학생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데려가려고 지구대에 온 아버지는 예체능계 학과에 가려면 소질이 뛰어나야 할 텐데 아이가 그런 것 같지 않아 다른 진로를 찾아주려고 했을 뿐이라며 매우 당혹했다고 한다. 경찰은 “요즘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가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라서 작은 갈등에도 쉽게 충격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원가는 것이 스트레스가 된 아이들 뇌 과학과 자녀교육의 관계를 보면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내면에 부정적인 정서를 쌓게 한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에게 반감이 생기게 된다. 이런 스트레스는 불안, 두려움, 공포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여러 정신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뇌 발달에 맞지 않는 선행 학습 때문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부정적인 정서를 축적한다.


그것이 성격으로 나타나면서 아이는 짜증내거나 대들거나 소리 지르거나 욕을 하고 아무나 때리는 이상 행동을 하게 된다. 특히 30여 년 전에만 해도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소아정신과를 요즘 아이들이 많이 찾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과도한 조기 학습은 아이 스스로 필요하다기보다 부모의 욕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좋다면 무조건 따라하고 보는 부모들의 불안한 심리가 숨어 있다. 일단 ‘다른 아이들도 하니까 우리 아이도 해야지, 절대 뒤처질 순 없지’ 하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 교육에 막연히 잘되겠지 같은 생각은 조심해야 한다. 교육이란 결국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 학습이 우리 아이에게 맞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신적 부담, 실패로 인한 좌절, 정서 발달의 저해 등 장기적으로는 학습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평생 공부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아이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를 교육할 때 그것을 시켜야 하는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욕심이나 불안감 때문 인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한국은 최근 의사 배출이 많아져 대학 병원이나 개인 병원 의사나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소아정신과만은 예외라고 한다. 이곳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우리 정서상 정신과에 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아정신과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다니는 것은 조기 학습, 영재 광풍이 몰고온 부작용일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소아정신과로 몰고 간 부모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이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얼마나 아이교육에 지금까지 신경 써 왔는지 구구절절 설명한다. 그리고 나는 제대로 못 먹고 옷 한 벌 안 사 입어도 아이를 위해 좋은 음식, 좋은 옷을 입히며 최고로 키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는 어찌 보면 스토커와 다름없다. 부모의 일방적 사랑인 것이다.


유대인이나 핀란드 부모들은 우리나라 교육을 아동학대로까지 볼 수도 있다. 무엇이든 발달 과정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진도가 나가면 아이들의 뇌가 망가지고 성격이 무너진다. 그래서 사회와 부모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소리 지르고 친구를 왕따시키고, 죽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고, 부모를 욕하고 때리고 결국 게임중독에 빠진다. 10대의 경우 학교 성적, 따돌림 등 학업이나 교우관계 문제가 자살 원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살에 대한 충동과 이유’에 따르면 자살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는 13~19세 청소년 중 35.7퍼센트가 학교 성적과 진학 문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없는 사교육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경제적 어려움(15퍼센트), 가정불화(14퍼센트), 외로움(13퍼센트), 따돌림(11퍼센트)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교육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학교 등수만 보인다. 인격보다 점수를 평가할 뿐이다. 학생자살용 족쇄들이 매일 같이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만들고 있다.


최근 6년 동안에도 초·중·고등학교에서 870명의 어린 학생들이 자살했다. 최근 한 해에만 무려 150여 명의 어린 아이들이 목숨을 끊었다. 학교를 떠나 길거리에서 헤매는 중도 탈락 학생들 역시 부지기수다.


우리 학교 교육에 학습은 있지만, 배움이 없다. 그래서 매년 학생 자살이 반복된다. 학습은 성적과 등수를 키우는 일이지만, 배움은 사람을 키우며 인격을 길러내는 힘이다. 배움이란 생명을 존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게 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자기 단련의 힘이 배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교육에 배움은 없다. 그저 시험에 나올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정보들을 달달 외우게 하고 답안지에 쏟아 내라고 다그치는 학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조정래 작가의 장편 『풀꽃도 꽃이다』를 발간하며 한국교육의 현실을 꼬집은 노老작가의 말이다. 누구든 영혼의 99퍼센트는 고교졸업까지 받은 교육에서 그 뿌리가 만들어진다고 조정래 작가는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교육이 없는 탓에 청소년들이 성적, 왕따, 폭력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런 이유로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문에 기사로 났던 이야기다. 신문 기고자가 자신의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어느 날 딸아이가 엄마에게 와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라며 엄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단다. 그러자 엄마는 고민할 것도 없이 너도 그런 애랑 말 섞지 말라며 딸에게 당부를 했다는데 그다음날, 딸아이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 왕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엄마조차 자신을 외면하는 태도를 직접 보면서, 자신의 딸이 느꼈을 슬픔과 절망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그 엄마는 또 어떠했겠는가? 딸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남이야기하듯 무심히 대답한 한마디가 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아마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갈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컸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냉정하게 우리는 이 이야기 속 엄마의 모습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 속 엄마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설마 나는 아니겠지’,‘내 아이는 아닐 거야’라는 자기중심적 심리가 반영된 작은 태도 하나가 이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저 출산이 문제가 될 만큼 우리 사회는 아이를 적게 낳아 기르거나 아예 낳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그러다 보니 한두 명뿐인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지나치다 싶을 때가 많다. 아이의 인생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안내하기 위해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최고의 학원, 최고의 선생님을 찾아다닌다.


물론 이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아이들의 인성과 이성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승자가 되는 법은 가르쳐 주면서 약자를 배려하는 법이나 실패를 극복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부모들도 누구든지 약자나 실패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아니겠지’, ‘내 아이는 다를 거야’라는 생각으로 아이가 약자나 실패자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약자가 될 수 있고 실패자가 될 수도 있다.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목소리가 어느 순간 내 아이의 목소 리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변의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슬픈 결말을 행복한 결말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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