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파리 (Lost in Paris /2016)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파리병이 도진다.
밑도 끝도 없이 파리에 가고 싶은 마음.
혹시나 싶어 파리행 티켓 가격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몇 해 전 찍었던 파리 사진을 들춰보다가
괜히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해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답도 없다는 파리병을 한창 앓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영화,
오락가락 노망 직전의 할머니를 찾는
캐나다에서 온 빼빼마른 못난이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파리의 노숙자.
절대적인 미(美)와는 거리가 있는 세 사람이지만
어떤 동화 속의 주인공보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이 지금 '파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도입부에서 피오나의 할머니, 마르타는 말한다.
"파리, 이 곳에서 48년을 살아왔지만 나는 아직도 이 도시를 사랑한단다."
피오나가 파리에 도착하면서부터 보여지는
총천연색의 파리는
과연 누구나 사랑에 빠질만하다.
이 세 사람은 엄청난 확률로 얽혀있는데도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만큼
일은 꼬이고 꼬여 서로를 지나친다.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센느 강에 빠져버리고
자신의 가방을 훔쳐 스웨터를 훔쳐입은 노숙자와 춤을 추고
일면식도 없는 노인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잃는
쉬운 길을 멀리 돌아가는 그녀의 여정이
어찌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나 프랑스같아서 또 파리다워서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목적은 할머니를 찾는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 피오나는
누구보다 파리를 잘 여행하고 있었다.
아니, 잘 헤매고 있었다.
c'est la vie
쎄라비.
뜻한대로 나아가지 않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지.
라는 뜻의 프랑스 격언.
어쩌면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한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살짝 얼간이(?)같은 주인공을 완벽히 연기한
피오나 고든(피오나 역)는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다.
심지어 남자주인공역을 맡은 도미니크 아벨 (돔 역)과는 부부 사이.
이토록 엉뚱한, 그리고 순수한 영화를 만들어낸 부부라니,
그 들의 삶은 또 어떠할지 상상이 되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 참 ,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을 깜빡했다.
이 총천연색의 영화를 보고 나면
파리병은 더욱 심해진다.
당장이라도 저 도시에 뛰어들어
마음껏 길을 헤매고 싶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