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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Nov 03. 2021

수건이라도 산뜻하게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하는 카피라이터 김하나와 프리랜서 에디터 황선우가 함께 쓴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두 여자가 한 집에서 살기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현실적이라 실감 난다. 사회에서 만난 여성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같이 살아도 괜찮겠다는 결심부터 서로의 가치관 조율 등 여자끼리 산다고 절대 만만찮다. 각자의 짐을 합치고 무엇보다 같이 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대출을 받는 등 현실적인 부분이 결혼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서로의 가족으로부턴 혼자 사는 딸과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밑반찬을 보내주시거나 한 끼라도 더 챙겨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훈훈하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제3의 주거 형태와 가족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자 둘이 살면 어떤 느낌일까, 좋겠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상상해봤음직한 스토리.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합리성에 의문을 갖고 있거나 결혼이 후회스러운 순간에 읽으면 어느 정도 대리만족도 된다. 혼자 사는 게 어떤 면에서는 홀가분하고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겠지만 외롭거나 아플 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건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하며 산다는 건 환상이 깨지는 순간도 존재하고 그 갈등의 과정도 디테일하게 여과 없이 보여줘서 자주 통쾌하게 웃었다. 각자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같이 살아서 좋은 점만 최대한 누리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또 그렇게 이상적일 수만은 없을 테니. 


두 작가의 글솜씨가 별거 아닌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읽는 내내 그래, 에세이란 이런 거지. 가감 없이 드러난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굳이 결혼과 비혼을 구분 짓지 않더라도 연결고리는 무궁무진하다. 진솔하면서 유쾌하고 뭉클하면서 인간적인 에세이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 '타인이라는 외국' '쫄보에게 빌붙는 자' '능숙한 빚쟁이가 되어라'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자취는 언제 독신이 되는가' '행복은, 빠다야' '돈으로 가정의 평화를 사다' '남자가 없어서 아쉬웠던 적' '우리가 헤어진다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 이런 제목만 봐도 내용이 어느 정도 짐작되면서 읽고 싶어 진다.


그러고 보니 호텔 침대 위의 흰수건과 화장실에 걸린 수건 사진을 꽤 찍었다. 그리고 우리집 흰수건


이 책을 다 읽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우습게도 흰색 수건을 산 일이다. 김하나 작가는 새해 의식으로 헌 수건을 몽땅 버리고 새 수건으로 교체한단다. 그것도 모두 흰색으로. 나도 모르게 마음에서 무릎을 탁 쳤다. 수분 흡수 잘 되지 않는, 수건 올 납작해진 오래된 수건은 도대체 언제 바꾸는 걸까. 아까워서 못 버리고 한국에서부터 끌고 온 무슨 교회 몇 주년, 돌잔치 기념품 등 글씨 박힌 수건은 5년이 지나니 자연히 사라졌지만 낡은 수건은 여전히 그대로다. 싹 갈아치우는 방법이 있다는 건 생각 못 했다.


기존에 쓰던 수건은 마음 약해서 몽땅 버리는 건 차마 못하고 모두 발수건으로 전락시켰다. 수건은 흰색이 갑이지. 호텔 화장실에 걸린 수건이 모두 다 흰색인 이유가 있을 거다. 통일감으로 보기 좋고 세탁도 의외로 편하다. 색깔 수건에 때 묻은 것만큼 구질구질해 보이는 것도 없다. 민트 초록 갈색 살구, 일관성 없이 제멋대로인 색색이 수건이 영 눈에 거슬린다. 여름엔 시원한 민트지, 하면서 처음엔 예쁘다고 들인 민트 수건도 그 예쁨이 오래 못 간다. 흰색 빨래를 모았다가 흰 수건도 한꺼번에 세탁기 돌려 건조대에 탁탁 널어놓으면 보기만 해도 상쾌하다. 세수 후 수건으로 닦을 때 도톰해서 수분 흡수가 잘되면 잠시나마 기분도 좋고. 수건 올이 모두 숨 죽어서 밋밋하지 않고 살아있는 촉감으로 닦는 것. 가장 빠르게 산뜻한 기분으로 직행이다. 결혼을 물릴 수 없다면 수건이라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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