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Mar 14. 2022

독일과 궁합이 잘 맞는 은지 님이 궁금하시다면(2)

[인터뷰] 독일 거주 엄마들을 만나다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기회 의도는 독일 거주 엄마들의 고유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줌의 위안을 얻기도 하니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문장을 자주 상기했어요. 독일 거주 20년 차 선배의 거침없이 당당한 스토리에 매료되었어요. 설문지 답변과 화상 인터뷰(2022년 3월 3일)로 만나 작성한 글입니다. 인터뷰 글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발행됩니다. 


김유진 : 독일 살이 6년 차, 독일어를 잘하는 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까마득하고 이젠 그만하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합니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은지 : 사람마다 적성이 달라서 외국어를 즐겨 배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어도 못 배우겠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지요. 제 친구는 Fach Hoch Schule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는데요, 정말 독일어를 지긋지긋해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갔어요. 그 친구는 독일에서 체류하는 10년 내내 독일어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독일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어떻게 독일어 때문에 힘들어할까? 싶지만 의외로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대학을 다녀도 독일어가 그다지 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어학원이 아니니까요. 대학엘 다니는 사람도 이런 실정인데 다른 사람들은 말해 뭐하겠습니까. 모두 힘들어하는 것이 독일어입니다.     


저 역시 그만뒀었죠. 직장 다니는 시기는 그 스트레스로 집에만 오면 한국 방송만 봤습니다. 심지어 드라마 영화는 안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만 봤습니다.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진 님도 어쩌면 육아에 외국 생활에 지쳐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을 수도 있어요. 이런 힘든 상태에서는 뭘 해도 성과를 내기가 힘들죠. 한 단계 낮춰서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요? 과정이 너무 힘들면 스트레스를 받고 의욕도 없어지지요. 당장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받아 가면서 공부할 필요는 없잖아요. 한 단계 낮춰서 시작하면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을 거고 그러면 공부에 재미도 붙지 않을까요?     


김유진 : 혹자는 모국어는 영혼의 안식처라고도 하는데 전 한국어는 산소 호흡기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독일어만 들리는 곳에 있다고 집에 돌아오면 공기가 희박한 곳에 있다가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숨도 더 잘 쉬어지는 것 같고 두통과 허기짐이 동시에 몰려오곤 해서요. 


이은지 : 한국어는 제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작가 박완서 님께서 하나뿐인 잘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고통과 회한에 몸부림치던 시기,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수필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 수필 말미에 박완서 님이 아픈 기억이 있는 한국을 벗어나 딸이 살고 있는 미국에 가서 잠시 지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분은 죽은 자식에 대한 기억이 있는 한국을 도망치듯 떠나 미국에 갔지만 한국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어라는 산소호흡기가 필요하셨던 거죠. 저 역시 그 부분에서 극히 공감했습니다. 


모국어로 쓰기와 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모국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저는 독일 생활 초창기 때 눈이 헛헛해서 혼났습니다. 한국 음식은 그립지 않은데 한국어로 된 읽을거리가 그리워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한글책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때 함부르크 대학 도서관에 한국문학 전집이 있어서 그걸 빌려다가 다 읽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무리 독일어를 갈고닦아 잘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독일어로 책을 읽기는 고무장갑 끼고 등 긁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참된 재미가 없습니다.     




김유진 : 이방인으로서 외국에 오래 살면서 터득하는 건 “단념하는 걸 배우는 지혜”라는 부분도 동감입니다. 단념한 것 베스트 쓰리도 공개해 주시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단념하면 안 되는 단 한 가지는 뭘까요.     


이은지 : 단념해야 할 것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내가 독일인처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의지입니다. 외국인으로서 어떤 것들은 절대 독일 사람처럼 할 수 없습니다. 한 예로 이메일을 독일 사람처럼 완벽하게 쓸 수 없죠. 이메일 시그니처를 보면 다들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압니다. 조금 틀려도 되니 완벽한 이메일 쓴다고 시간 잡아먹어가면서 교정하지 말고 대충 써서 보냅시다.     


둘째, 독일 동료들, 학부모들 대화에 끼어서 대화하다 보면 나를 공기 취급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내 말을 무시하고 내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도 있죠. 거기에 상처받지 말아요.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악센트가 섞인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하고 그런 사람과는 얘기 안 하면 됩니다.     


셋째, 한국에서의 나를 잊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었든 독일에서는 새로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설거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 합니다. 그게 어때서요? 왕년에 한국에서 내가 이랬는데... 이런 생각으로 독일에서 산다면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입니다.     


독일에서 잘 살기 위해서 단념하면 안 되는 한 가지는 첫째도 독일어, 둘째도 독일어입니다. 독일어를 잘해야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친구 중 하나는 독일에서 산 지 1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병원에 혼자 가지 못합니다. 한 번은 협심증이 있는 것 같다면서 아침 9시에 병원 예약이 있는데 전화로 의사와의 대화를 통역해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독일인이지만 독일에 온 지 1년째부터 혼자서 병원에 다녔습니다. 당연히 도와줘야 할 시간이 근무시간이라 도와주지 못했지만 시간이 있어도 흔쾌히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독일어를 잘 못하면 자기 앞가림 못하고 남에게 자기 뒤치다꺼리까지 맡겨야 합니다. 자식이 있다면 자식 뒤치다꺼리까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집사를 둘 만큼 경제력이 있다면 모를까 보통이라면 당연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러니 하기 싫어도 독일어는 해야 합니다. 독일어가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김유진 : 오디세우스가 낙원 같은 곳을 마다하고 험난한 여정을 겪으면서 10년이나 걸리더라도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뭘까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강대진 교수님은 “내가 기억하고 타인도 나를 기억해 주는 곳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초반엔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익명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쪽으로 사는 느낌이랄까요.      


이은지 : 저는 다행히 외국에서 살기에 적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가족 친지 친구 동호회 모임이 일반적인 한국에서의 삶이 맞지 않습니다. 1년에 한 번 혼자서 2,3주 여행 다닙니다. 혼자서 많이 걷습니다.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 보니 있던 친구들도 다 떨어져 나가고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한국 친구는 두엇 정도 있습니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냐고 하는데 저는 털어놓을 속마음도 별로 없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왜 친구에게 그것을 털어놓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독일 친구도 살다 보니 두엇 생겼는데 자주 연락은 하지 않지만 만나면 반갑고 같이 요리해서 먹고요, 쓸데없는 잡담 나눕니다. 애가 있어서 학부모와도 연결이 돼서 친분이 유지가 되고요. 한국에서 살았어도 인간관계의 폭이 독일보다 넓진 않았을 것 같아요.      





김유진 : 최인철의 『굿 라이프』에서 이민자들의 삶을 연구해 본 결과 “삶의 질이 좋은 나라로의 이민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라는 문장을 읽고 반가웠답니다. 선진국 독일에 살면서 나는 과연 얼마나 행복한가 자문해 보게 되더라고요. 은지 님은 전반적으로 독일 생활에 얼마나 만족하시나요? 1) 10점 만점이라면 몇 점을 주실 건가요. 2) 해당 점수를 주신 이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 때문인가요.      


이은지 : 10점 만점에 7점 정도 줄 것 같아요. 좋은 것은 자연이 아름답고 공기가 좋고 산책로가 좋고 조용합니다. 물가도 저렴하고 애 키우는 비용도 적게 들고요, 철철이 프랑스로, 오스트리아로, 이태리로 놀러 다닐 정도로 볼거리 많은 유럽에 살아서 좋고 휴가가 풍부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이 내 삶에 참견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독일에서 20년 살면서 한국에 다섯 번 정도 갔었는데요, 늘 친구들이 저의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지청구를 줍니다. 남의 인생에 관심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모로 피곤합니다.      


3점 깎인 건, 이 나이에 아직도 독일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한동안 동네 합창단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 합창단은 수요일 오후 4시인데 이 합창단은 목요일 저녁 7시였습니다. 가보니 저 혼자 외국인이더라고요. 콩나물 대가리 읽으랴 독일어 가사 읽으랴 해석하랴 머리를 여러모로 돌려야 노래를 잘하겠더라고요. 갱년기라 뭔가를 하면서 즐기고 싶은데 그걸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학부모 회의에 가도 외국인인 것이 늘 의식이 되어서 말 한마디 하는데도 조심스럽습니다. 회사 미팅에서도 외국인인 것이 의식이 되어 남들보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혹시 남들이 나를 외국인이라고 얕잡아 보지나 않을까 의식됩니다.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도 여기서는 의식적으로 해야 될까 말까입니다. 삶이 여러모로 고국보다 힘들겠죠. 그래도 장점이 7이나 되고 단점이 3밖에 안되니 독일에서 살아야겠죠.      


김유진 : 거침없이 당당하게, 진솔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