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이 얼마 없는 두바이인데, 이건 또 무슨 날인가 하고 보니, 공휴일이나 나라에서 지정한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두바이와 아부다비 지역의 Homegrown food makers 즉, 이곳 태생의 푸드메이커들이 '아시다Aseeda'라는 이곳의 호박죽 같은 음식을 재료로자신들만의 특별한 디저트 메뉴를 선보이는 날이다.
총 18개의 UAE Homegrown food makers들이 만든 각기다른 아시다 디저트들
두바이 푸드메이커들을 찾아다니며,살면서 한번 도 맛본적 없는 이곳 전통음식이재탄생하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축제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마음 같아서는 총 18개의 모든 곳을 가보고 싶었으나, 아이 둘을 돌봐야하는 빠듯한 일정에이 축제를 주최한 미르잠 초콜릿 Mirzamchocolate과, 빵이 맛있기로 소문난 알쿠아즈 Al Quoz 거리의 숨은 빵집, 버치 베이커리 Birch Bakery두 곳에서만, All new아시다를 맛보기로 했다.
(좌)미르잠초콜릿 (우)버치베이커리
첫 번째. 미르잠 초콜릿Mirzam Chocolate
내셔널 아시다데이 포스터
주최자의 규모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모스크가 한눈에 보이는 층고가 아주 높은 초콜릿 카페다. 아시다 여권에 도장이라도 찍어주는 줄 알았지만, 그런 이벤트 없이 아시다 여권은 그저 참여 업체가 적힌 종이다. 주문전 여권과, 무료로 아시다 한 컵을 받았다.
엥? 호박죽을 좋아하는 나지만, 아시다는 좀낯설었다. 죽보다는 더 찰기가 있고,얼그레이향같은카다멈향이 강해 내 입맛에 잘 맞지는 않았다. 떡도 아닌것이, 죽도 아니고, 섣불리 아시다 디저트를 사 먹었다가 돈만 날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왼쪽에서 네번짜가 아시다 쿠키
그래도 왔으면 맛은 봐야지. 미르잠이 아시다를 가지고 만든 디저트는 아시다 커스터드 쿠키였다. 이미 커피를 한잔 마신 터라 쿠키만 주문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쿠키였지만, 음~ 쫀쫀하고 꾸덕한 것이 맛있다. 너무 달지도 않고, 아시다를 그냥 먹을 때보다 쿠키로 만드니 호박향이은은하게 풍기면서 훨씬 입맛에 맞는다. 그리고 동전모양의카다멈 초콜릿이어우러져 먹는 식감까지 재밌어졌다.
그냥 돌아섰으면 후회했을 뻔했다. 혼자 먹기 아까워 아이들용으로 하나를 더 샀다. 학교 끝나면 우유데워서 두바이 호박죽 쿠키라고 얘기해 주면서 같이 줘야지.
두 번째로찾은 곳은 창고거리 속 비밀공간처럼 숨어있는 버치 베이커리 Birch Bakery.
버치 베이커리
버치 베이커리는 올 때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다. 커다란 나무아래 거대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꼭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것 같다.
유리창 너머 종업원에게 아시다 디저트를 물으니, 아시다 번을 추천한다. 시나몬롤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비슷한 생김새의 디저트가 마음에 들었다.
아시다 번
와~ 달콤하다!
먹는 순간 이거 살찌겠다 싶었지만, 호박잼이 있으면 이런 맛이 아닐까 싶었다.
호박, 샤프란, 카다멈이 달달하게 조려져, 버터향 가득한 번으로 재탄생하니 뭔가 파리 어딘가에서 중동 출신의 파티시에가 고향을 잊지 못하고 만들어낸 음식 같았다. 잠이 덜 깬 아침이었는데, 달콤한 한입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두바이 하면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새로운, 화려한, 미래의 것으로 가득 차 있어 보이나, 오히려 두바이 현지인들은 과거의 가치를 굉장히 높게 두고, 과거에서 이어진 본인들의 것들을 이 미래 도시에서 어떻게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더욱 신기한 일은, 이들이 모두 아랍인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두바이에서 자라난 두바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민자 혹은 이주자들이 중동의 전통을 새롭게 지켜내는 일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지금의 두바이를 공존의 도시로써,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냥 아시다를 맛보았다면 그냥 나랑 안 맞는구나 하고 잊었겠지만, 아시다 데이를 통해 나는 중동 전통 디저트로 만든 아시다 쿠키와 아시다 번이라는 새로운 디저트 취향을 획득했다. 이렇게 나는 두바이에, 중동 문화에 조금씩 또 스며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