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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Jul 08. 2024

우리는 이렇게 다시 아이가 된다

오만 무산담 돌고래 크루즈 3


꼬끼오.


잘못 들었나?


꼬끼오.


두바이에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새벽닭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오만에 오긴 했구나.


어젯밤, 긴 입국심사와 어둠의 돌길 속에서 긴장되었던 몸이 숙소에 오자마자 풀어져, 모두 씻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두바이에서 매일 들리던 새벽 기도소리인 아잔 소리가 아닌, 새벽닭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12월 중동 국가들은 여행하기에 황금기라 할 정도로 날씨가 좋다. 한국에서 딱 '아 이제 가을 왔구나.' 하고 느끼는 아침 첫 공기같이 선선한고 습도는 낮다. 얇은 재킷하나 걸치고 아침 산책하기 좋은 날씨. 오만 무산담도 예외는 아니라, 네 식구는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돌산이 어디 바닷속에서 지형이 솟아오른 것처럼 멋졌다. 우주를 좋아하는 큰 아이는 연실 여기가 화성 같다며 신이 났고, 태어나 한 번도 못 본, 나이테같이 생긴 웅장한 돌산들을 보며, 몰디브를 외쳐대던 내 마음속 삐침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돌고래 크루즈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 갈 길이 없다.



사진으로 봤던 돌고래 크루즈 배는 굉장히 작아 보였는데, 우리 가족 네 명을 포함하여 15명이 간다고 한다. 안전은 한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돈은 냈고, 우리를 데려갈 소형 버스는 이미 숙소 앞에 도착을 했다. 걱정도 팔자인 나는,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아이들 암튜브며, 구명조끼며, 바리바리 싸들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타고 갈 전통배 다우

다우라고 불리는 이곳의 전통배 모양으로 만든 배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돌고래를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는 평들이 있어, 말은 안 했지만 돈만 날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의 걱정이야 어찌 됐든 간에, 신밧드의 배는 돌고래를 찾아 아라비안해로 속력을 냈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배의 속력은 빨라지는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침 바다는 쏟아지는 햇살을 다 머금은 듯 눈이 부시도록 반짝였고, 그 반짝이는 바다를 가두려는 듯 커다란 피오르 지형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낡은 배를 타고 어디 다른 세상으로 떠나온 건가. 무언가 비현실적 풍경 속에서 온몸으로 평화로움을 느꼈다.


아, 좋다.


자연의 힘이 이리도 큰 것일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내 마음이 휘리릭 하고 풀려버렸다. 이럴 땐 나도 참 쉬운 사람이다.



갑자기 배가 마치 뭐라도 쫓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속도를 낸다. 나도 빨라지는 배의 속력만큼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맞잡은 아이의 손에 땀이 났다.



속력을 줄이더니 배가 멈췄다. 배의 선장아저씨가 멀리 손가락을 가리켰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많은 물결 사이 동그랗게 포물선을 그리며 물속으로 슬로 모션으로 들어가는 무언가가 보인다.


저기 돌고래다!


그것도 엄마와, 아기처럼 몸집이 다른 두 마리의 돌고래가 보였다. 아름다운 바다에, 돌고래까지 보이니, 그림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내가 예상한 돌고래 크루즈의 모습이었다. 나의 오만이었다.


부르릉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더니 빠르게 배가 이동한다.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배옆으로 두 마리의 돌고래가 빠르게 따라왔다. 마치 레이스를 하듯,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따라오는 두 돌고래를 보며 아이들과 연실 소리를 질러댔다.


이렇게 신나게 소리를 지른 게 얼마 만인 건가?


마치 같이 놀자는 것 같기도 하고, 아부다비에 있는 테마파크인 씨월드 같은 곳에서 보던 돌고래쇼에서 느꼈던 안쓰러움 없이, 그냥 마냥 신나게 헤엄치는 두 마리의 돌고래를 보며 아이처럼 신이 났다. 그러다 물 위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배에 탄 15명의 사람들이 모두 환호를 해댔다.


두 마리가 사라지는 듯하더니 어디서 또 한 마리의 돌고래까지 삼총사가 되었다. 가족 돌고래인가? 엄마 쫓아다니는 새끼 돌고래에, 한 박자 느린 아빠 돌고래까지. 꼭 우리 꼬맹이들과 우리 부부 같았다. 빛나는 바다에 빛나는 돌고래 가족, 그리고 신이 난 우리 네 식구의 완벽한 합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때쯤, 배는 닻을 내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바다로 풍덩하며 바다수영을 시작했다. 겁이 많은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차갑고 깊은 바닷물에 온몸이 긴장이 되어 배에서 1m도 멀어지지 못하고 다시 배로 올라왔다. 엄마가 겁을 먹으니, 나를 닮아 겁이 많은 큰 녀석도 내심 무서웠는지 물에 들어가자마자 무섭다며 나를 따라 올라왔다.


배에 올라와 바다를 보니, 내 성화에 수영을 할 수 있어도 암튜브를 한 남편과 4살 꼬맹이 딸이 망망대해에서 헤엄을 치며 웃고 있었다. 튜브 없이 멋진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는 외국인 커플만큼 볼품이 나지는 않았지만, 든든한 아빠 손을 잡고 바다를 떠다니는 아이의 모습에, 오만에서의 이 경험이 아이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아빠를 떠올리는 한 장의 추억이 될 생각 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보다는 사고 싶은 게 더 많아지는 나의 마흔 살에, 나 역시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격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도 큰 아이 손을 잡고 저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었다. 내가 꿈꾸던 7살의 모습으로, 여기가 태평양이든, 아라비안해든, 아무 두려움 없이 풍덩 하고 싶었다. 중동의 사막처럼 건조했던 내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는 숙소로 돌아갈 시간.


정밀 행복했다. 예기치 못한 여행지의 감동이 이리도 크다.

돌아오는 배에서 남편이 말했다.

"여보 소리 제일 크게 지르더라. "


이럴땐 좀 모른척 해주라 남편.

우리는 오만 무산담에서 그렇게 다시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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