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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그레이스 Nov 16. 2020

디트리히 본회퍼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7)

세 번째 메시지: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순 있을까?(1)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늘 본문은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혁명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진정한 혁명가들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주 배타적입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여전히 비밀로 남겨지거나, 아니면 하나의 공허한 미사여구로 사용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만일 하나의 미사여구로 사용된다면, 말씀 속에 담긴 혁명적인 속성은 완전히 무뎌지고 맙니다.      


과연 어느 누가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위대한 혁명가들, 아니면 그들의 추종자들일까요? 여러 민족의 자유 투사들일까요? 지식의 진보를 위해서 싸우는 투쟁가들일까요? 도대체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과연 이 말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 모두 한번쯤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른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 자리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굉장히 곤혹스럽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대화의 흐름을 바꾸지 못합니다. 거짓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고통스러운 발언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자리에 동석하게 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면서도 덮어 버리려고 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어른들이 모르는 것처럼 보여서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단순하게 말해 버립니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 반응을 본 아이는 더욱 이상하게 여깁니다. 사람들은 절망적인 눈빛으로 아이를 응시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올바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웃으며 기뻐합니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거짓 발언이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듯 끊어지고, 거짓과 두려움 위에 갑자기 눈부신 빛이 비칩니다. 거짓과 두려움의 정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빛이 비치는 곳에서 거짓과 두려움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어른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아이를 통해 진리가 빛 가운데 드러난 것입니다. 아이의 말을 통해 어른들의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일어난 이일은 정말로 혁명적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누구를 통해서 일어났습니까?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아이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오직 그 아이만이 자유로웠습니다.      


또 다른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영주들의 궁정에는 기사들 외에도 가수들과 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궁정의 전통은 물론이고 심지어 궁정의 거짓까지도 수호했습니다. 그런데 옷차림을 보아하니 그들 무리가 아닌 듯한 사람이 끼어 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궁정의 어릿광대였는데, 궁정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정에서는 우스꽝스럽고 예외적인 이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궁정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궁정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존재를 없애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진리를 이런 자세로 대합니다. 그는 궁정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앞서 언급한 두 장면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세 번째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바로 알아챌 것입니다. 여기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내가 곧 진리다”라고 말한 이 남자는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쓴 채로 온갖 조롱을 당하며 재판관 앞에서 있습니다. 재판관 빌라도는 인간적으로는 지혜로워 보이지만 철저하게 세상적인 질문을 그에게 던집니다. “무엇이 진리인가?” 빌라도는 자신이 곧 진리라고 말한 그 사람에게 바로 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자신이 곧 진리인 그 사람은 빌라도에게 침묵으로 대답합니다. 이것은 빌라도너는 진리 앞에서 어떤 존재냐?”라고 묻는 것입니다이 사건은 진리가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빌라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진리를 통해 심판 받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네가 진리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진리가 네게 묻는 것이다!”      


우리가 경배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진리의 왕. 이 세 번째 장면을 주목하며 신약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해 다시 들어 봅시다. 아이, 어릿광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여러분은 인류를 구원하는 자, 혁명가로 이들을 택했다는 사실이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으면, 지금 우리가 누구를 생각해야 할지가 분명해집니다.   

   

진리는 인간의 삶에서 왠지 낯설고 이상하며 예외적인 것입니다. 진리가 말해지는 곳에서는 전혀 예기치 않은 일들이 갑자기 우리 삶 속으로 무섭게 뛰어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팔을 불 듯 크게 진리를 외쳐 대는 소리를 듣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외쳐 대는 진리는 참된 진리가 아닙니다. 참된 진리는 무언가 아주 특정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면에서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진리와 구별됩니다. 말하자면, 참된 진리는 인간을 구속에서 풀어 주며 자유롭게 합니다참된 진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거짓에 매여 자유롭지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하며그에게 자유를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성경은 인간이 거짓의 노예로 살고 있으며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진리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일인의 열정을 일깨우며, 그들의 모든 것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옛날 포로로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깊이 시름하며 자유의 날을 꿈꾸었던 것처럼, 오늘날 독일 땅에는 자신의 꿈이 깨어지기까지 위대한 환상 속에서 자유의 그림을 그리며 애타게 추구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구절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참으로 적절하지 않은 말입니다. 우리의 행동, 우리의 힘, 우리의 용기, 우리의 민족, 우리의 미풍양속. 간단히 말해서,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되려는 것은 이해하기 쉽고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과 분별력 있는 ‘진리’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이해해야만 합니까? 오늘날 진리는 인기 없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진리라는 말에서 무언가 우리를 거스르며 반대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말은 날카롭습니다.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이나 세계관과 관련하여 진지하게 “그 모든 게 사실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더 분위기를 깨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너무 비판적이고, 파괴적이며, 몰이해한 것처럼 들립니다. 매우 차갑고 폭력적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 앞에서는 언제나 극복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우리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심지어 자신이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우리는 늘 우리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자신의 내부를 누군가가 들여다볼까 봐 두려워합니다질문하듯 응시하는 이의 눈길 앞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가치가 산산조각이 날까 봐 두려워합니다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마치 진리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더욱 크게 떠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이러한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하나님이 바로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하나님이 갑자기 우리를 진리의 빛 앞으로 이끌어 내어 우리의 거짓된 모습을 드러내실까 봐 두려워합니다진리는 우리 위에 있는 하나의 권세이며언제든 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는 강력한 능력입니다진리는 결코 개념이나 이상 따위가 아닙니다진리는 하나님의 검입니다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밝은 빛을 발하며 밤하늘을 뚫고 지나가는 번개와도 같습니다진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 자체이며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 앞에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인간은 거짓과 핑계로 자신을 점점 더 깊숙이 감춰버립니다. 인간은 죽고 싶지 않아서 진리와 대면하기를 꺼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교활하게 심사숙고하여 거짓말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거짓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어서 마침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됩니다. 거짓을 도리어 진리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서 하는 모든 말을 도리어 과장된 거짓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치적 거짓말관습적 거짓말세계관적 거짓말사회적 거짓말자기 유익을 위한 거짓말이 우리 삶에 무서운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할 것입니다한순간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던 거짓의 베일이 모두 벗겨지고 우리가 진리 가운데 서게 된다면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럴 때 우리의 본질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드러날지 아무도 모릅니다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우리가 지금까지 살던 대로는 도무지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빛의 투명함 속에서가 아니라어두움의 불투명함 속에서 살고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날즉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 삶에 부과된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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