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11)
마태복음 16장 13-18절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곗니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 교회는 반석 교회이며,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베드로 교회는 견해나 의견들에 기초한 교회가 아니라, 계시의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가?”에 대해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늘 새롭게 말하며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늘 찬양과 기도 속에서 신앙 고백을 하고 전하면서 대열을 정비해 나갑니다. 교회가 이러한 신앙 고백의 반석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교회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한순간이라도 신앙 고백을 멈춘다면, 바람에 불려 날아가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맙니다.(마7:26)
그러나 베드로 교회는 신앙 고백과 믿음의 반석, 베드로에 대한 자부심으로만 넘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던 그 밤에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 당하던 그 밤에, 베드로는 장작불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는 굳건한 믿음이 없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바닷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꾸짖으셔야 했던 바로 그 제자였습니다.(마26:69-75, 14:28-31, 16:23).
그 후에도 베드로는 거듭거듭 연약해졌고, 자신의 사명을 부인했으며 넘어졌습니다. 충성스럽지 않고 굳건한 믿음이 없어서 두려움에 떠는 교회,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자신의 사명에서 떠나 반복적으로 세상의 견해에 휘둘리는 교회가 베드로 교회입니다. 베드로 교회는 주님을 위해 서야 할 그 순간에 오히려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가 실패한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마26:75, 눈22:62). 그리고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부인했던 유다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이것이 베드로와 유다가 서로 다른 점입니다.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 교회는 신앙을 고백할 뿐 아니라, 연약하여 신앙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또한 슬피 울 수도 있는 교회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라고 기록합니다(시137:1).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러한 눈물이야말로 길을 다시 찾은 사람이 돌이켜 고향으로 가는 것과 같으며, 잃어버렸던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와 그 앞에 울면서 무릎 꿇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눅15:18-21) 베드로 교회는 우리를 기쁨으로 인도하는 여정인 거룩한 슬픔을 느끼는 교회입니다.
베드로는 정말이지 요동하는 땅과 같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반석입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베드로를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는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사실은 우리 모두가 베드로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교황이나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베드로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하기도 하고 충성스럽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 누구도 교회를 세우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스스로 교회를 세우려는 사람은 이미 교회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의 전을 세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고,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계획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계신지 허물고 계신지를 볼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붕괴와 몰락의 시기가 주님께는 위대한 세움의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위대한 교회의 시기가 주님께는 교회가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큰 위로가 있습니다. “너는 신앙을 고백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나의 증인이 되어라. 교회는 오직 내가 기뻐하는 곳에 내가 세울 것이다. 나를 통치하려들지 말라. 교회여, 네가 해야 할 그 일을 올바로 수행하라. 그러면 네 할 일은 다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올바로 해야 한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주장을 살피지 말고, 사람들의 판단을 구하지 말라. 끊임없이 계산하지 말고, 의지할 다른 대상을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말라. 교회는 교회로 머물러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신앙을 고백해야 하며, 거듭거듭 신앙을 고백하고, 또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교회를 세우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망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망은 종말을 고합니다. 사망의 깊은 골짜기를 마주하고 교회가 세워지며, 교회는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고백합니다. 교회는 사망이 삼키려 하는 바로 그곳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교회가 영원한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사망이 교회를 삼키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는 영원한 교회입니다.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교회가 영원하다는 사실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는 논쟁의 여지없이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세상을 통과하여 나아가야 하며, 때로는 세파에 완전히 뒤덮여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교회의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며, 사망의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승리를 볼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승리할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승리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위대한 베드로 교회, 즉 로마 교황의 성당 반구형 천장에는 오늘 본문 말씀이 어마어마하게 큰 글씨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 교회는 수백 년 동안 넘치는 자부심을 갖고 교회의 승리와 영원함을 세상에 과시해 왔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갖지 않으셨고 추구하지 않으셨던 세상의 영광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우리에게 있음을 압니다. 크든 작든, 비천하든 고귀하든, 약하든 강하든, 주님을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승리를 약속 받은 것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주께서 그의 성을 거룩한 산에 세우셨다”(시편87:1, 표준새번역).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