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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그레이스 Jan 03. 2021

디트리히 본회퍼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12)

여섯 번째 메시지: 하나님께 사로잡힐 수 있을까?     


예레미야 20장 7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이 임했을 때, 그는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다며 자신을 방어했고, 부르심을 피해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려는 그를 부르심의 말씀이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화살이 날뛰는 야수를 쓰러뜨려 버렸다고 하는 옛 격언처럼, 그는 꼼짝없이 하나님께 사로잡혀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부르심은 우리 마음의 동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은밀한 마음의 소원이나 소망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강력하게 임하여 그 사람을 사로잡아 버리는 말씀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낯설고 어색하며 전혀 예기치 못한 주님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임하여 꼼짝없이 사로잡아 주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주님의 부르심을 거역할 수 없으며,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1: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41:10, 43:1참조).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우리는 낯설고 멀기만 했던 미지의 강력한 말씀이 갑자기 너무나도 친숙하고 가까운 말씀, 자신의 피조물을 애타게 찾으시는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주님의 사랑의 말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됩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올가미가 더욱 단단하고 아프게 조여서, 자신이 사로잡혀 있음을 알게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로잡혔고, 이제 순종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절대로 놓아 주시지 않는 길이며,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길은 나쁜 시절이든 좋은 시절이든 한결 같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결코 버리지 않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 길은 철저하게 인간의 연약함 한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를 받으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해치는 위험인물로 간주됩니다. 사람들이 매로 때리고 형벌을 가하며 옥에 가둘 뿐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즉시 죽여 버리고 싶어 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예레미야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에 걸쳐 사람들은 하나님께 강력하게 사로잡힌 이들을 망상가요 고집불통이며, 평화를 해치는 자요 민족 반역자라고 욕했습니다.      


예레미야 자신이 다른 말을 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겠습니까? 전쟁과 재앙이 있는 곳에서 평화와 구원을 외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평화와 구원을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내버려 두고, 차라리 침묵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등에 타고서 그를 진리에서 진리로, 고난에서 고난으로 내몰기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우리처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끊임없는 굴욕과 조롱, 잔인한 폭력을 견뎠습니다. 밤새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한 어느 날,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 인생에 간섭하셨습니다. 당신은 나를 붙드시고 더 이상 놓아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내가 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나셨고, 나를 매혹시켜 당신께 내 마음을 기꺼이 드리게 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동경과 영원한 사랑에 대해, 그리고 당신의 신실하심과 강한 권능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능력이 필요할 때 당신은 내게 힘이 되어 주셨고,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당신은 내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으며, 용서를 구할 때 당신은 내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내 의지와 저항을 꺾고 내 마음을 정복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도록 나를 매혹시키시고 나 자신을 당신께 온전히 드리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나를 설득하셨고, 나는 당신의 설득에 넘어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에게 하듯 당신은 나를 움켜잡으셨고, 이제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나를 마치 노획물처럼 끌고 가십니다. 살갗이 까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당신의 승리 행진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승리의 마차에 단단히 묶고 질질 끌고 가십니다.      

당신의 사랑이 이토록 아픈 줄 알았겠습니까? 당신의 은혜가 이토록 혹독한 줄 알았겠습니까? 당신은 내게 너무 강해지셨고, 나는 당신에게 너무 약해졌습니다. 당신이 내게 승리하신 순간, 나는 깨어졌고 나의 의지는 무너졌습니다. 나는 힘없이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고, 뒤돌아설 수 없었으며, 내 인생길은 정해졌습니다. 내 결심이 아니었고, 오직 당신이 결정하신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성공과 시패 따위와는 무관하게 당신에게 단단히 붙들어 매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왜 이토록 우리 가까이 계십니까?“     


지금 고국 교회는 수천 명의 교인들과 목사들이 진리를 증거 한다는 이유로 압제와 박해의 위험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의로 압제와 박해의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길로 인도받았을 뿐입니다. 자주 그들의 소원과는 달리, 살과 피로 이루어진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면서 그들은 이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너무 강해지셔서, 하나님께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뒤로는 이미 자물쇠가 채워졌고, 하나님의 말씀과 부르심,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마침내 평화와 안녕, 고요가 찾아오기를 얼마나 자주 바랐겠습니까? 그들이 진실을 알리며 위험을 경고하고 항의해야 할 일이 더 이상은 없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바랐겠습니까? 그러나 강력한 손에 이끌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하나님, 당신은 왜 이토록 우리 가까이 계십니까?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끊임없이 내재하는 번민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인생에 모셔들이고 하나님의 설복에 넘어간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신 후에 그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시며, 좋은 시절이든 나쁜 시절이든 항상 동행하시며, 마치 그림자처럼 그를 추적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는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결국 그 사람의 힘을 능가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내게는 너무 힘겹고, 내 영혼의 평화와 내 행복을 깨뜨리는구나.’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며, 무슨 일이 닥치든 하나님과 함께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가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도 자신이 모셔들이고 설복당한 하나님으로부터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이 하나님의 손안에 든 희생제물이라는 사실을 더욱 변명하게 인식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 하나님의 임재와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로를 받고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로를 받고 도움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강력한 주인으로 모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너져 절망하는 성도가 비로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은 많은 두려움과 절망, 환난이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와 동시에 좋은 시절이든 나쁜 시절이든 결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떠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살 때나 죄 가운데서 살 때나, 핍박과 조롱을 받을 때나 죽음을 맞이할 때나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인생 여정에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하고 죽을 몸, 죄된 삶을 통해 영광스럽게 된다면, 우리의 약함이 신성한 능력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생명이나 행복, 평화 그리고 약함이나 죄가 우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로잡힌 자는 우아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슬에 매여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 세상과 사람들 앞에 승리자로 등장하시는 분을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가 매여 있는 사슬과 낡고 해어진 옷, 우리 몸에 남은 상처 자국들은 진리와 사랑이신 은혜의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송입니다. 진리와 의의 개선 행렬, 하나님과 복음의 개선 행렬이 이 세상을 통해 전진할 때, 우리는 매인 자요 갇힌 자로서 개선 행진을 하는 마차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우리를 그분의 개선 마차에 동여매시고, 우리가 매인 채로 질질 끌려가더라도,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게 하신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권유하셨고, 우리에게 너무 강하게 되셨으며, 우리를 결코 놓아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슬이나 무거운 짐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죄나 고난, 혹은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단단히 붙잡고 계십니다. “주님, 우리를 항상 새롭게 권유하시고 우리에게 강해지셔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만 믿으며 주님의 승리를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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