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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그레이스 Dec 07. 2020

디트리히 본회퍼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10)

다섯 번째 메시지: 신앙을 올바로 고백할 수 있을까?(1)    

  

마태복음 16장 13-18절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단순히 우리 자신의 문제라면, 차라리 지금 주어진 결단의 자리를 피하는 편을 택할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자신의 문제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 투쟁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자신의 문제라면, 반드시 우리 주장을 관철시킬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맞서 교만하게 자기주장을 펼쳐야 하는 끔찍한 위험을 자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문제에 불과하다면, 차라리 오늘 이곳을 떠나 조용한 시골로 물러나고 이러한 싸움 따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로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과 함께 우리 자신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결단을 요구받고 있으며, 우리가 현재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결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완고하고 독선적으로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하며, 교만하게 말하고 행한다는 혐의를 받는 것까지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짐을 벗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하며, 심지어 단절마저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의미를 결코 은닉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대한 경악할 만한 소문으로 인해 온 세상이 술렁거리고 비탄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교회가 무너지고 붕괴되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영원한 교회에 대한 약속을 듣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 모든 시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계속 지어 가실 반석 교회에 대한 약속을 듣게 됩니다. 반석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반석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실로 진지하게 교회를 찾고 있다면, 교회를 잃고 고독하게 흩어져서 버림받은 상태로 교회를 찾아 헤맨다면 이곳으로 오십시오! 우리는 다시 거룩한 말씀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영원한 교회를 찾아 함께 길을 떠나기 원합니다. 들을 귀가 있는 분은 들으십시오!(4:9)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신 곳은 고독하고 적막한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제자들과 은거하시면서, 처음으로 그분의 영원한 교회에 대해 유언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시기는 눈에 보이는 사역이 최 정점에 이르고 많은 무리가 뒤따르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정통 신앙을 자랑하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 “호산나”로 환호하던 자들이 성금요일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던 곳에서 멀리 떠나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교회의 비밀과 미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교회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무리들 속에 세워질 수 없으며, 예수님을 좇도록 부름 받은 소수의 제자들을 기초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또한 백성들 삶의 중심인 성전이 있는 도시 예루살렘을 적합한 장소로 여기지 않으시고, 눈에 보이는 복음 전파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는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을 때를 교회에 대해 이야기를 가장 적절한 시기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고난에 대해 예고하기 직전에 주님의 교회에 대해 약속해 주셨습니다. 즉 작은 무리의 교회, 조용한 변두리에 자리한 교회, 죽음을 목전에 둔 교회, 이런 교회에 대해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제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려 왔던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 대답은 모두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를 나름대로 계속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러는 위대한 인간, 더러는 이상주의자라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천재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고귀한 영웅이요 위대한 지도자라고 합니다.” 이러한 견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진지한 의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러한 견해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는 이제 제자들에게 직접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스도와 대면한 자리에서 ‘어쩌면’이나, ‘더러는’이라는 대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어떤 견해나 의견을 나열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침묵하거나, 베드로처럼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인간적인 견해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베드로의 대답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시야가 열립니다. 베드로의 대답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고, 영원한 것이 말해지며, 비밀이 드러납니다. 더 이상 인간적 견해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의 것, 즉 신적 계시와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영웅적인 본성이 베드로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가 흔들리지 않는 굳센 성품을 가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결코 변하지 않는 충성스러운 성품을 가졌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저 고백하는 사람일 뿐,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으며, 이제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는 베드로를 주님은 반석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스도는 이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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