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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그레이스 Aug 19. 2021

디트리히 본회퍼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17)

열한 번째 메시지주님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    

 

고린도전서 13장 8-12절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주하는 모든 노력들, 심사숙고하고 노심초사하며 살아가는 삶, 모든 근심과 두려움, 마음에 품었던 소원이나 희망 가운데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를 자문하는 시간이 아마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는다면, 바로 이러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염려, 소원과 희망 가운데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즉 사랑이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생각이나 소망은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 없는 생각이나 지식, 언어는 모두 사라질 것이지만, 사랑만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둘 것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그만둘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나 짧고 소중하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습니까? 연말이나 생일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를 돌아보거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때에, 우리의 염려와 수고, 생각과 말은 모두 오래전에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고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까? 그 모든 것들 가운데 행여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로 어쩌다가 우연히 행했을지도 모르는 사랑의 행위, 사랑의 생각, 타인을 위해 품었던 소망뿐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지식과 인식, 사고와 말은 우선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나온 생각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다른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영원할까요? 사람은 사랑 안에서만 자신을 비울 수 있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이외의 존재, 즉 하나님이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행하는 주체가 우리 자신인 반면, 오직 사랑 안에서만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통해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말, 우리의 인식인 반면, 사랑 안에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기인한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자 하나님의 뜻이므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길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언제나 사랑의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은 마치 몽유병자가 그러하듯 확신 있게 이 세상의 모든 어두움과 수수께끼 한가운데를 통과하여 사랑의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은 인간 세상의 지옥 같은 곤경 속으로도,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영광 속으로도 들어갑니다. 사랑은 친구에게 가듯 원수에게도 가며, 자신은 버림받을지라도 결코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죄와 수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의 뒤를 묵묵히 따릅니다. 사랑은 눈먼 사람처럼 어디든 함께하며, 언제까지라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발길 닿는 곳마다 거룩하게 합니다. 사랑은 도처에서 불완전한 일을 발견하고, 또한 도처에서 완전한 일에 대해 증거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생각과 인식의 세계로 들어오려고 애씁니다. 인식은 사랑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식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상대하며,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인식은 세상과 인간,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이해하며 설명하려 합니다. 무언가를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본래 인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원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사고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나 직업이 아니더라도 인식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그와 동시에 인식의 한계도 알게 됩니다. 인식의 한계란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이며, 타인의 길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인생길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또한 수시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자신의 인식으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시도해 왔고, 또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여 시도하는 모든 해결책은 때가 되면 사라질 부분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많이 사고하며 많은 지식을 얻게 된 사람이 이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체험할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큰소리치던 자연과학자들이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이러한 한계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는 모든 지혜의 시작과 끝에 대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그가 아는 지식의 종착역이었으며, 마지막 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러한 확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으며, 이보다 훨씬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다는 것과 완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불완전한 것은 막을 내리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완전한 것이란 바로 사랑을 말합니다. 인식과 사랑의 관계는 불완전함과 완전함의 관계와 같습니다.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이 완전함에 이르고자 하는 동경이 크면 클수록, 그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온전한 인식은 온전한 사랑입니다. 이 말이 아주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매우 참되고 통찰력 있는 바울의 문장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인식이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까? 인식이란 모든 사사로운 판단을 배제하고, 사실에 기초하여 아주 객관적인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닙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떤 객체를 왜곡 없이 보려면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 대상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우리가 그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결코 그 대상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 대상을 미워한다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을 온전히 알 수 있을 뿐입니다우리는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됩니다     


소위 인간에 대해 정통하다는 사람이, 실상은 인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인간의 나쁜 면을 잘 알고 조심스럽게 대처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않던 사람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가 얼마나 나쁜 동기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수많은 이유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면,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계속 고민할 것이며, 그가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를 알고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수많은 이유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던 전자보다, 후자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진정한 앎은 하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앎은 여전히 허영심과 명예욕이기심에 싸여 있는 불완전한 사랑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에는 완전함에 대한 동경즉 언젠가는 부분적인 것이 폐하고 완전한 진리와 인식사랑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동경이 깃들어 있습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부분적인 것이 온전한 것으로 되는 일은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분적인 것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온전함 자체가 우리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뜻 안에서 절대적인 주권적 권세로 오는 것이며, 그때에는 부분적인 일이 폐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본 후에는,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본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듯, 그때에는 불완전한 일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식 단계를 어린 시절에 비유하고, 사랑의 완전함은 성숙한 장년기에 비유하는 것은 놀라운 그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사랑 없는 인식은 유치한 것에 불과합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슬그머니 세상의 주인이 되려는 유치한 시도입니다. 사랑 없는 지식의 오만함은 장성한 사람이라면 웃어넘길 만한 자기 자랑을 떠벌리는 어리석은 소년의 모습과 같습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는 이와 정반대로 어린아이의 일이 지식 있는 사랑이며, 사랑 없는 냉정한 지식이 도리어 성숙한 상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숙한 통찰력과 참된 인식을 가진 장성한 사람의 몫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길은 장성한 사람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모든 종류의 몽상이나 광신과는 분명한 경계를 긋습니다.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의 진리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인식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그림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마치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받아들여질 뿐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볼 수 있을 뿐입니다그리고 이렇게 쓰인 하나님의 생각은 읽기 어렵습니다대문자는 소문자로소문자는 대문자로 보입니다옳게 보이는 것이 틀렸으며틀리게 보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절망스럽기만 한 상황이 도리어 약속이며희망으로 가득한 것이 도리어 심판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이며죽음은 생명을 의미합니다우리는 하나님의 글씨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오직 에수님의 삶과 말씀죽으심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서 어두운 말씀을 들여다봅니다.” 십자가의 어두운 말씀을 하나님의 거꾸로 쓰인 문자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는 소망을 가집니다. ‘그때에는’, 다시 말해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세상의 거울은 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를 감쌀 것입니다. 


‘그때에는’, 즉 우리가 생을 마감하게 될 마지막 죽음의 시간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질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보게 될 순간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믿을 뿐 아니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사랑 안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게 될 시간이 꼭 올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그때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것이 정답입니다.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한 것을 알고 체험하게 될 것을 소망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내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나의 눈을 찾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마음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분적인 것들 속에서 온전하신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지 않았다면, 내가 결코 그분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를 인식하고얼굴을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그때에는 서로를 알고서로에 대한 사랑을 알며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그때에는 서로가 함께 살아가며인식 속에서 하나가 되고축복된 사랑의 비밀 속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그러면 우리는 땅에 꿇어앉아 우리의 존재 따위는 잊어버리고오직 하나님만 구하게 될 것입니다이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완성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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