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 이곳, 야소 반호
내가 선 이곳, 야소 반호(가명)
2021년 2월.
지난 6년간의 케냐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
여기 야소시 반호읍에 살고 있다. 2007년 야소시 반호읍에 처음 와서는 2021년 지금까지 14년째 살고 있다. 처음 아파트를 분양받아 1년간은 전세를 주었고, 그 다음해인 2007년에 태어나서 처음 내 이름 석자로 된 내 집에 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반호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고는 반호산을 중심으로 작은 동산들과 밭들로 초록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런 점이 맘에 들어 살기 시작한 아파트지만 그래도 시골이었던 이곳을 좋아했다. 우리집 베란다에서 펼쳐지는 낮과 밤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황홀했고, 지친 삶의 활력이었다.
그리고 2015년 돌연 아프리카 케냐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워낙 초록을 사랑하고 환호했던 나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행복했다. 사람들 사이의 상처는 자연이 주는 위로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남겨져 있던 부모님들은 하루 하루 늙어가셨고, 이제는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셨다. 말벗이 필요했고, 병원에 같이 가줄 사람이 필요했고,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밤사이 안녕하셨어요? 인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한국.
야소 반호.
많이 달라져있었다.
우리집 베란다의 백만불짜리 자연경관은 사라지고,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들과 상가의 간판들로 가득 찼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누군가 고집스럽게 팔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단독주택 앞 작은 밭대기 만이 초록을 뽐내고 있었다. 마음이 무너진다.
이 곳 저 곳 객지생활을 하면서 마음 붙이며 산 곳이 없었는데, 이곳 야소 반호는 고향 같았다. 시골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세련됐고, 도시라고 하기엔 열악했던, 그래도 초록이 아름답게 감싸고 있던 내 고향 반호는...도시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팎으로 차들이 주차할 곳이 없어 무질서하게 세워져있고, 임대라고 쓰여져 있는 상가들이 줄줄이 생겨났고, 앞뒤로 빽빽이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공원부지라고 했던 곳은 원룸단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형식적이지 않나? 싶지만, 그래도 작은 천에 산책로가 있어 그나마 숨쉴만한 작은 구멍하나 만들어놓았다. 다행이랄까.
처음 반호역 앞으로 공원부지라고 책정해놓은 곳을 볼 때마다 꿈을 꾸었었다. ‘와...우리도 여느 해외처럼 공원을 중심으로 사람이 사는, 그런 여유를 부리며 살 수 있는, 자랑할 만한 멋진 마을이 되려나보다.’ 내심 기대했고, 상상했었다. 숲으로 우거진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노인 부부, 새댁, 연인 할 것 없이 여유롭게 손을 잡고 산책로를 거닐며,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반호를 꿈꿨더랬다.
만 6년 만에 돌아온 반호는 어설픈 도시화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공사 중으로, 많아진 차량으로 소음이 가득했다. 많이 아쉽고, 안타깝다. 내 고향 반호를 잃어가고 있어 서글펐다.
30-40대들이 살기 좋은 동네라 하여 학교도 많이 생기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도 많이 생기나,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뛰어놀만한 곳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공사 차량으로 자전거 타고 다니던 어린 소년이 다쳤다는 사고 소식들이 들려온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 사이 사이로 자전거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늘 조마조마했었는데, 자동차 사이로 튀어나오던 아이들이 늘 가슴 졸였는데, 결국은 일이 터졌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러는 사이,
저녁이 되고, 부엌 베란다 창사이로 붉은 빛이 들어온다. 현관 창문 사이로도 붉은 빛이 새어나온다. 붉은 빛을 따라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 선다. 선명하게 붉은 빛이 눈이 시리도록 비쳐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 붉은 빛을 쫓는다. 혹여 라도 금새 어둠이 올까 있는 힘껏 달려가 본다. 아니나 다를까. 붉은 빛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어둠이 찾아왔다. 참으로 빠르게.
‘엇, 언제 내가 여기까지 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놀이터.
몽유병 환자처럼 붉은 빛을 쫓아 선 곳.
그곳에서 다시 내가 사랑하는 고향. 반호가 들어온다.
‘아직은 살만해.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놀은 처음이야.’
황홀감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것 때문에 내가 이곳을 사랑했잖아.’
다행히 저녁노을을 사라지게 할 것은 없지 않은가.
제아무리 아파트가 높다 하여도...
그 붉은 빛은 선명하게 하늘을 뒤덮는다.
하늘을 물들인 붉은 빛은 살아 있다. 아직 이곳 반호에. 나의 고향에.
매일 저녁 붉은 노을을 기다리며 내가 선 이곳. 반호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한다.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나무가 우거진 숲속 공간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들이 지저귀고, 아이들의 함박웃음들이 공사차량과 자동차들의 소음에 더 이상 묻혀 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마을이 되기를...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마을이 되기를...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산책하는 마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