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더 테레사의 말이다.
처음 카카오톡을 시작하고, 프로필에 15년째 바꾸지 않고 꿋꿋이, 감히 쓰고 있다.
마더 테레사의 삶을 책으로, 영화로 보면서 그의 말은 진심으로 다가왔다.
내 삶에 많은 도전을 주었다.
바람 잘 날 없었던 가정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늘 가슴속으로 되뇌였던 말.
사랑하면 되는데, 사랑만하면 될텐데...
싸움이 잦은 부모님을 보면서, 모이기만 하면 싸우는 친척들을 보면서, 별일도 아닌 것에 시비를 걸고 넘어지는 이웃들을 보면서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그들은 사랑이 없었다. 사랑만 있으면 별 일 아니 였을, 그냥 다 웃으며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하나 양보하고, 져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나도 내 부모님처럼, 내 친척들처럼, 내 이웃들처럼 싸우며 삶을 살고 있더라.
사랑이 없어서일까?
애증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마더 테레사가 한 말이니, 그의 삶에서 사랑이 무엇일까? 찾아보자면, 그가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은 철저한 자기희생이었고, 불의한 자들과의 싸움이었고, 한 생명이라도 얻고자 사람들과, 조직과 시스템과의 끝없는 투쟁이었다.
그는 끝까지, 목숨을 다하는 그날까지 치열한 싸움을 싸워냈다.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나는 꿋꿋이, 감히 이 표어를 가슴에 안고 15년째 쓰고 있으나, 내 삶을 돌이켜 보건데, 참으로 부끄럽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이 표어를 내 삶에서 내려놓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랑이란, 피투성이가 되어도 한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해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얻어진 한 생명이 아닌가. 부모님들의 치열한 경쟁과 삶의 전투에서 싸워내셨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주변의 여러 선생님들과 멘토들의 헌신과 기도와 조언이 있기에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치열한 싸움을 통해 얻어진 생명이기에 고귀하고 소중하다.
이러한 사랑은 나에게서 흘러나오지 않는다. 절대 자기사랑에서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의 크기를 키워야한다. 자기사랑은 나와 내 가족 외에는 사랑하기 어렵다. 아니 때론 내 가족도, 내 자신 조차도 사랑하기 버거워한다. 그래서 수많은 정신병을 낳는다. 내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야한다. 사랑은 우주와 같다. 무한하다. 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고,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사람만이 우주와 같은 무한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
요즘 노랫말에는 ‘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참으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과거사,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여기까지 우리가 온 것,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지키고, 한 생명을 얻고자 했던 옛 조상들의 노력을 볼 때, 우리는 절대 네 자신부터 사랑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부터 사랑했다면, 정말 이 나라를, 백성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사랑은 안에서 밖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전체를 보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한다. 사랑이 안에서 밖으로 흘러간다면, 우리는 숲속에 나무만 보고 있는 것일 뿐.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없다. 사랑이 밖에서 안으로 흘러오기에,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 또 다른 생명을 낳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자식보다, 남의 자식을 더 생각한다면,
내 가족보다, 이웃을 좀 더 생각한다면,
남의 자식과 이웃은 내 자식을 내 가족을 돌봐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사랑에 갇혀서 나부터, 내 자식부터, 내 가족부터 하다 보니, 개인주의, 이기주의 라는 말이 나온다. 자살률이 증가하고, 우울증이 일상이 되었다.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과정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은 쉽게 가시지만, 나를 사랑해서 얻는 다른 사람으로 부터의 상처는 잘 아물지 않는다. 남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시작부터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가 없고, 대가가 없기에 상처가 적지만, 나를 사랑해서 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가 크고, 대가를 바라기에 상처도 클 수 밖에 없다.
합리적인 사고와 편리주의는 자기사랑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네 것은 네가, 내 것은 내가. 서로 피해주지 않기 위해서,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시스템과 법들은 더더욱 사람들을 자기사랑에 푹 빠지도록 만들어놓았다.
품앗이, 콩 한쪽도 나누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 줄 안다. 옛 조상들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말들이다. 지금은 참으로 보기 드문 말들이 되었다. 이십년 전만해도 시골에 가서 ○○○씨네 손녀딸이라고 하면, 다들 누군지 아시고,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먹을 것도 챙겨주시곤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할아버지 집도 사라졌고, 알아봐주시던 이웃집도 사라져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고향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웃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나눴던 부모님 세대의 공동체 문화는 쇠퇴해가고, ‘나를 사랑하자’는 문구로 철저하게 개인주의와 합리주의, 사생활 보호, 편의주의를 추구하는 다음세대들이 조금 걱정스럽다. 이들에게 내어주는 사랑, 온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랑은 구닥다리, 꼰대들의 말뿐일까 두렵다.
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싸운다.
사랑하기 위해.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려고 내 자신과 부던히 싸운다.
LOVE Never Fails.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