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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ug 29. 2017

엄마를 쓴다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2006년 해 질 녘, 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엄마는 일을 마치고 만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엄마가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난 네가 나중에 지금을 뒤돌아 봤을 때,
그때 참 힘들었다 하고 말하게 된다면 좋겠다.

그 당시 일상은 불행했다.  

IMF 이후 모든 것이 무너졌다.  

부모님 모두 신용불량이 되었다. 아빠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빠는 군대를 갔다.

평생 일 한번 해 본 적 없는 엄마는 산후조리사가 되었다. 난 하루도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가난은 감정에서의 여유를 뺏어갔고 일상에서 여백이 없는 삶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당시 난 항상 날이 서 있었고 엄마는 그런 나에게 언제나 미안해했다.  


매일이 지치고 막막하던 시간들이었지만 엄마는 항상 무언가를 공부했고 쉬는 날이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천장 모서리 곰팡이가 껴있던 내 방에서 로마인 이야기를 읽던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다고.  

시간이 지나 문득 떠오른 이 날의 기억은 운명의 시작인 듯 진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항상 꿈꾸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엄마가 많이도 지쳐 보이던 그 날 저녁,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비정상회담을 보는데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유세윤에게 누군가 결혼에 대해 물었다. 그는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기억에서 잊힌 유년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아들을 통해 되살아 나면서 삶이 완벽해지는 느낌을 받는 다고 했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면 육아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굉장히 큰 감동과 행복을 주는 삶의 과정이 될 것 같다. 특히 남자라면 육아가 참여나 도움의 개념이 아니라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로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큰 공감을 했었는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아이를 통해 내가 완성되는 느낌과 함께 엄마가 되어가며 내가 모르는 나의 엄마에 대한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을 느낀다.


엄마와 대화를 멈추고(마지막일 거라고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던 ) 엄마의 등을 보며 걷고 있던 눈 앞으로 트럭이 지나갔다.   

마지막이었다.  


당시 고된 일로 살이 많이 빠졌던 엄마는 다리가 가늘어졌다며 이젠 바지 말고 치마를 입고 다녀야지 라며 웃었다. 엄마는 항상 굵은 다리가 콤플렉스였다.  삼배수의를 입고 누워있던 엄마의 치맛단을 꼭 쥐고 서럽게 맴돌던 그 말.


엄마를 보내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취직을 하고 이탈리아, 로마로 오게 되었다. 5년을 생각했던 로마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10년을 넘었다. 이탈리아에서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20대에서 30대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주변에서 친정엄마가 있었더라면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왔을 텐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몰라서일까 부재가 서럽지는 않았다.


엄마가 떠오른 건  필요할 날 보다 더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한 가족들과 수영장을 갔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엄마들은 수다가 한창이었는데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대구의 낡은 아파트 매일 함께 놀던 아이들 둘러앉아 콩나물을 다듬으며 이야기하던 엄마들. 아련한 여름날 모두 함께 버스를 타고 수영장을 갔었다. 그 날 수영장의 풍경과 지금 나의 풍경이 오버랩이 되며 남편들 험담에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눈물이 차 올랐다. 그 날의 엄마가 지금 나의 나이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문득문득 엄마와 성인으로의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는 것이 북받칠때가 있다. 20대 전의 난 엄마가 한 사람으로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친구가 더 중요했고 고민도 즐거움도 그들과 나누는 것으로 충분했고 더 좋았다. 언젠가부터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 엄마가 나의 나이에 느꼈을 감정들에 대해  너무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외할머니, 엄마는 자주 그곳에 가서 외할머니와 오래 이야기를 했다. 주로 엄마가 말했다. 눅눅한 장판 냄새 어두운 시장의 분위기 오빠와 나는 몇 분도 참지 못하고 나가자고 난리를 쳤다. 엄마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가 엄마 무릎에 누워 들어 볼 수 있다면…….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아이를 키우며 만나는 일들과 감정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보니 불과 1,2년 전의 첫 아이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내가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일 수도 있겠다. 훗 날 아이들이 나에 대해 궁금해지는 날 혹여 내가 들려주지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득, 이 것은 아이를 위한 나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에 아들과 딸을 키우며 난 엄마를 써 나가고 있다. 그렇게 만나는 엄마는 그립고 슬프고 반갑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 된다.

나를 통해 엄마를 만난다.


내가 만나는 순간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를 엄마가 나와 함께 즐기고 있다 생각하면 매일이 소중하다. 엄마는 나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살며 여행하고 있다.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아이들이 잠든 저녁,  

붉게 물든 로마의 하늘을 바라보다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알아? 그땐 참 힘들었는데 말이야….


로마의 여름밤이다. 엄마와 내가 맞이하고 싶었던 딱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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