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34
2012년 임신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일을 멈췄다. 당시 주로 하던 투어는 남부 투어였다. 남부 투어는 모임 시간이 오전 7시다. 집에서 6시가 넘어 나와 집에 돌아오면 보통 저녁 10시 전 후였다. 투어 내내 걷고 말을 한다. 임신과 병행은 불가능했다.
솔직히 말하면 일을 쉬게 된 것이 슬프지는 않았다. 가이드 7년 차,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을 쉬고 싶은 때였다. 두려웠던 건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잊히는 것이었다.
7년간의 가이드로서의 시간이 멈추고 나의 역할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매 순간 가슴을 간질이며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록 현장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쓰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유로 자전거나라 홈페이지에는 현지 통신원이라는 메뉴가 있다. 각국의 가이드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관심과 정보를 고객들에게 공유하는 페이지다. 이곳을 통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나만 경험할 수 있는 것, 그 누구도 알아내기 힘든 정보를 올려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육아였다.
일을 멈추게 한 것도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육아였다. 당시 회사 내 가이드를 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이탈리아 산부인과에서 애 낳기 , 이탈리아 유아용 약국제품, 이탈리아 소아과, 로마 어린이 박물관 , 이탈리아 유아도서, 어린이 책방으로 글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동료들은 이탈리아내에서 개인적으로 혹은 고객들이 겪는 병원, 육아용품 아픈 아이손님 등의 문제에 있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글은 단순한 정보에서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어나가는 일상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내친김에 블로그도 만들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글쓰기는 비정기적이었다. 그렇게 글쓰기가 게을러질 때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이를 키우며 맞이 하는 두려움이 현장에서 잊혀가는 두려움을 대신해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번 두려움은 굉장히 강력했다.
글은 즐겁고 행복할 때보다 두렵고 막막할 때면 더욱 간절해졌다. 글로 토해내면 감정은 덜어지고 마음의 파도는 잦아들었다. 글쓰기는 두려움 덕분에 끊임없이 충전되어 아슬아슬 방전을 면했다.
시간이 지나자 (글을 공개하는 이들의 마음이 그러하듯) 나의 글이 책으로 세상에 나오면 좋겠다는 욕심이 커져갔다. 나 같은 글은 나뿐인 것 같았다.
해외육아라고 하면 (심지어 여긴 이탈리아!!) 프랑스식 육아법으로 크는 아이 같은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같이 들리지만 이방인 부부가 아이를 키워나가는 현실은 결코 환상적이지 않았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적어도 내가 아는 범주에서)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국의 현실 육아 책은 많아도 해외의 현실 육아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거 경쟁력이 있겠어!! 기획서를 쓰고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답은 없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두려움은 나에게 계속 글을 써라고 밀어붙였고 무엇보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현실은 주부지만 새벽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에서 홀로 글을 마무리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난 재택근무를 하는 로마에 사는 작가였다.
(마감 날짜를 아무도 정해주지 않은 나만 알아주는) 마감을 하고 글을 업로드하면 반복되는 일상에 우울해진다던가 육아에 치이는 일상에 울화가 치민다던가 이루는 것 없이 흘러가는 하루에 답답하던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육아와 함께 생산적인 무언가를 병행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
4년이 지났다. 여전히 아무도 나의 책에 대한 열망에 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의뢰하지 않은 연재를 시작했다. 주 1회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다음 사이트에서 브런치 매거진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플랫폼인 브런치는 선별된 작가 중 요일을 지정해주고 매주 연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다음 메인에 노출시켰다. 지원자격은 브런치 구독자 1000명 이상 혹은 책낸자. 자격이 안되니 자체 수요 매거진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2017년 시작한 브런치의 첫 구독자는 4명이었다. 2018년 5월 18일, 글이 20편을 넘어갈 무렵이었다.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함께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출판사였다.
이날 이후 누군가 나에게 직업을 물으면 작가라고 대답한다.
공항 입국 신고서의 직업란에는 뻔뻔하게 작가라고 적는다.
수십 번도 더 읽은 이슬아의 [이야기가 빈약한 날의 글쓰기]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두려움 때문에 한 문장도 나아가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위에서 말했던 애니메이션을 본다.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이다. 이 이야기에는 아무도 안 시켰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중학생 여자애가 나온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발적으로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는 이들. 남의 책을 참고해가며 자기 문장을 쌓아가는 이들. 도대체 어째서 일까. 잘 설명을 못하겠는데 나 역시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더 많은 책을 만나게 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주인공은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 문장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런 가사다.
외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자고 꿈을 꾸었어
쓸쓸함을 억누르고 강한 자신을 지켜나가자
주인공의 노래가 너무 서툴고도 맑아서 난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웃는다. 그런데 웃는 동안 왜 마음이 조금 아픈 것인가. 그녀와 내가 비슷한 약함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외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자고 다짐하는구나. 이 사람도 글을 쓰면서 자신을 지켜나가는구나. 그녀의 모습을 몇 번이나 다시 보면서 나는 글쓰기가 나를 해치는 일보다는 살리는 일에 더 가깝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러고는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빈약한 이야기라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으면서 쓰기 시작한다. 계속 쓰면서 나아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내내, 애니메이션에 빠져지냈다. 하지만 그 시절 일본 영상물의 국내 판매는 금지되어 있었고 지하상가에서 불법 복제판을 구해야만 했다. 지하상가 한켠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귀를 기울이면>을 만났다. 남자 주인공이 이탈리아로 떠난 장면을 보며 언젠가 이탈리아에서 살겠다 마음먹었다. 이슬아의 글이 뇌리에 박힌 것은 그녀가 써 내려간 한 자 한 자가 내 마음 같았기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시작에 <귀를 기울이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소녀는 25년이 지나 이탈리아에서 살게 되었고, 글을 썼다. 그 글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이쯤 되면 두려움에 고마움을 전해야 할 시기를 한참을 놓쳤다 싶다.
끊임없이 쓰라고 몰아붙여주어 고맙다. 덕분에 잊히지 않았고, 몰아치는 역경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대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세상 곳곳의 수많은 이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
영원히 내 곁에 함께해주길 바란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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