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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Oct 01. 2019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부끄럽게 느끼게 해서는 안돼

이제 네가 말을 해야 해

교실 앞에서 여자아이가 울고 있다. 이안이 반 친구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달래고 있었다. 정신없는 등교시간이었다. 며칠째 오빠와 같은 교실에 들어가겠다고 우는 둘째를 겨우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학교를 벗어나는데 울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일본인이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물으니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했다.

매년 이안이와 함께 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름학교에 참여했던 안나를  올여름에는 보지 못했다. 이탈리아 시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마을의 여름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아주 작은 곳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양인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아이는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한다. 악의적인 인종 차별이었다. 일본인 엄마, 이탈리아 아빠, 아이는 이제껏 한 번도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없었다. 아이를 괴롭힌 건 나이가 더 많은 언니들이었고 그날 이후 자신보다 큰 아이들 앞에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1층 유치원에서 2층 초등학교로 올라간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 전 학년이 한 복도를 공유한다. 아이는 매일 다시 유치원으로 내려가고 싶다고 운다. 우리가 실수했어. 우리가 잘못했어. 그녀는 자책했다. 안나는 유치원 내내 반의 리더였고 남자 여자애들 모두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부모였기에 안나는 가장 일찍 학교에 도착해 가장 늦게 집에 돌아가는 아이였다. 하지만 안나의 부모가 올 때까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매일 오후 안나의 부모가 도착할 때까지 같이  기다려줘야 한다는 아이들 덕분에 졸지에 우리도 수다를 떨며 해 질 녘 교문 앞을 서성였다.  


그 아이가 여름이 지나고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외모는 우리가 가진 일부분이지만 우리를 드러내는 가장 크고 쉬운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우리를 특이하게 만들기도 한다. 겉모습이 우리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음에도 누군가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23조 항,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을 특별히 배려할 권리*

우리 반에는 안젤라도 있다. 휠체어를 타고 있고 유쾌하고 모든 과목을 다 잘한다. 특히 이탈리아어에서는 최고다. 안젤라의 글은 웃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어떨 땐 심지어 울 것 같은 심정이 될 정도로 마음을 움직인다. 한 번은 이 세 가지 모두가 글에 담겨있어서 안젤라가 글을 읽는 동안 생각하다 울다 웃고 말았다. 선생님은 언제나 안젤라가 모두의 앞에서 큰 소리로 글을 읽게 한다. 모두 숨을 죽이고 듣는다. 안젤라가 글을 읽으면 극장에 있는 것만 같다.
선생님은 올바른 단어 사용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안젤라가 그 면에 있어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능력의 제한 (handicappato)  또는 가능성이 없는(disabi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탈리아에선 이 두 단어는 장애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안젤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만약 네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 해도 (예를 들어 걷는 것) 그 반면에 잘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뜻이야. (예를 들어 글쓰기, 그림, 노래 또는 악기 연주) 그리고 다른 능력이라는 말 앞엔 꼭 “사람”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해. 우리가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 오늘 선생님은 다른 한 가지를 덧붙였다. 할 수 없는 하나를 가지고 그 사람을 정의해서는 안돼.
“안젤라에게 걸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불러서는 안 돼. 대신 안젤라에게 작가라고 부를 수 있겠지. 그 누구도 보첼리(*안드레아 보첼리) 에게 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아.  우린 그를 가수라고 불러. 그렇지?”
그리고 선생님은 안젤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안젤라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미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종이 울렸다.
선생님, 맞아요. 말은 너무 중요해요. 우리가 올바른 말을 사용하면 크고 훌륭한 것을 해낼 수 있어요. 그러나 잘못 사용한다면 큰 해를 끼치고 말 거예요.

Antonio Ferrara [Diritti al coure] LA RANE, 2016

*한국에선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번역하며 이 23 조항을 <장애아동의 권리>라고 옮겼다. 하지만 원문에선 장애가 아닌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적어 놓았기에 원문을 따랐다.
*안토니오 페라라 [마음의 권리]  :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페라라의 초등학생을 위한 얇은 책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총 54조 항 ) 중에서 20조 항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풀어나간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2학년의 레오다. (한국 번역본이 없어서 직접 번역한 글이라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점 이해해 주세요.)

초등학교 입학식 이후, 늦은 오후 담임 선생님과 부모들의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공식적인 첫 학부모와 선생님의 만남이었다. 첫인상 대로 이안이의 담임은 냉정하고 단호해 보였다. 말 많은 이탈리아 부모들에게 전혀 휘둘리지 않는 심지 굵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담임이 수업 진행에 대한 설명을 하던 도중 오리엔탈이란 단어가 나왔는데 아주 순식간에 눈을 찢는 재스처가 지나갔다. 그녀는 중앙 교탁에 기대어 서 있었고 난 대각선 끝에 있었으니 그것이 눈을 찢는 것이었는지 눈을 밑으로 당긴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선 메롱 하듯 눈을 밑으로 당기면 집중해서 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찢는 것처럼 보였고 찰나에 시간이 멈추고 식은땀이 났다. 2년 전 아이가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를 하던 중 겪었던 인종차별사건이 떠 올랐다. 마침 부모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고 난 뒤에 앉아있던 제니퍼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지난 사건 때 나와 함께 항의해준 캐나다 엄마다.)


*예전 글 참고 :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10화

: 절대 쓰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https://brunch.co.kr/@mamaian/11


“제니, 나 선생님이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눈을 찢는 것을 보았어. 아마 넌 늦게 도착해서 못 봤을 거야. 이 시간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말해보려 해. 공개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아. 내가 예민한 걸까? 2년 전 일이 떠올라서...”
“민주, 아니야. 이야기해. 말해야지. 나도 개인적으로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하나, 말해주고 싶은 건 그녀는 (여타의 이탈리아 사람들과) 다른 거 같아. 합리적이고 열려있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인 것 같아. 분명 너를 이해해 주고 받아들일 거야.”

부모들 모두 돌아가고 혼자 교실에 남았다. 제니퍼는 교실을 나서며 나에게 눈빛으로 힘을 보냈다. 2년 전, 아이가 인종차별을 겪었을 땐 밤새워 울고 제대로 싸. 우. 기. 위해 대본을 쓰고 연습했었다. 하지만 그 사이 난 더 강해졌고 당당해졌고 용기도 생겼다. 아니, 좀 능글능글해졌다.


이탈리아는 초등학교 5년간 담임도 반 친구들도 동일하다. 무엇보다 담임이 중요하다. 미심쩍어도 말을 해야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있으면 말을 한다. 침묵은 인정, 불만 없음을 뜻한다. 언제인가 방송에서 싸이가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뿐이라고.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좀 전에 말씀하시던 도중에 오리엔탈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그때 눈을 찢는 재스처를 하는 것을 보았어요.”

말을 마치고 담임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대답을 듣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이안이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일관되게 냉정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미세하게 손도 떨렸다. 아니라고 네가 잘 못 본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사람들 특유의 변명도 없었다. (난 이탈리아를 사랑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들이 인정과 사과에는 인색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 그 말로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정말 그랬니?
나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
맙소사 내가..... 미안해....
그랬을 리가....
정말 정말 미안해.


그녀는 (그 행동을 했고 안 했고를 떠나)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만으로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했다. 그녀는 인정하고 부끄러워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제가 잘 못 봤을지도 몰라요. 예전 유치원에서 이안이가 같은 동작으로 사건이 있었고 유치원 담임과 해결이 되지 않아 교장에게 말해서야 동작이 고쳐졌어요. 그 사건으로 제가 예민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반에는 중국인 엄마, 한국인 엄마, 일본인 엄마가 모두 있어요. 우리를 존중해 주길 바라요. 아이들과 아이들의 친구들이 이 문제로 상처 받고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라요.”

그녀는 나의 손을 아주 꼭, 강하게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누웠다.

“이안, 엄마와 이야기 좀 할래? 얼굴이 검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얼굴이 검다는 이유로 놀려도 돼? 그러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떨까?”
“슬프지.....맞다! 오늘 로렌조가 내 코를 누르며 놀렸어”
“기분이 어땠어?”
“조금 안 좋았는데.... 그래도 웃었어. 친구들이 눈이 작다고도 그러는데..... 나도 눈이 동그라면 좋겠어”
“이안, 이안의 눈은 엄마 아빠의 눈과 똑같아. 싫어?”
“아니 예뻐.”
“이도를 봐. 어때?”
“너무 귀엽지.”
“이도 눈이 이렇게 커지면 어때?!”
(이도 이안이 둘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아마도 아이는 이탈리아에서의 유년시절을 보내며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이런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는 매 순간 내가 나설 수는 없을 거다.

"이안, 그거 알아? 이안이는 학교에서 동양 아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앞으로 누가 눈이 작다고 코가 작다고 다르게 생겼다고 놀리면 이안이가 그렇게 하는 건 잘 못된 거라고, 나쁜 거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줘. 알아, 이안이 반에 스카이도 있지. 하지만 스카이는 부끄러움이 많고 이안이가 이탈리아 말을 더 잘하잖아. 우린 모두 다르게 생겼어. 우리 모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을 선물 받은 거야.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자신이 가진 모습을 부끄러워하거나 잘 못 된 거라고 느끼게 해서는 안돼. 이안, 앞으로 누가 그러면, 그게 선생님이고 형이고 누나라도 그건 나쁜 거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 부끄러워하고 무서워하고 작고 말을 못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이도를 위해서. "
"응, 그럴게. 그런데, 기억을 못 하면 어쩌지?"


괜찮아. 엄마가 계속 이야기해 줄게.

아이들이 잠들고 휴대폰을 보니 제니퍼의 문자가 와 있었다.

“이야기는 잘했어?”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어. 어쩌면 내가 잘 못 봤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야기하길 잘했어. 그녀는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만으로 부끄러워했고 미안해했어. 네 말이 맞아. 그녀는 괜찮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같아. 우리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과 초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 것 같아. 언제나 나에게 용기를 주어 고마워. 잘 자.”


“넌 그 누구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야. 그래, 그녀는 매우 합리적으로 보여. 확실한 건 다음부터 더 주의를 기울일 거고 동료 교사들과  다른 아이들의 행동에도 주의를 줄 거라는 거야. 넌 항상 모든 것에 대해 나의 지지를 받을 거라는 걸 알아줘. 이들은 '다 문화'라는 선의의 의지를 갖고 있지만, 악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갈 길은 여전히 먼 것 같아. 너와 너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변화를 보게 될 거야.”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주 1회 원고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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