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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의 불완전한 2%를 메우는 법(하)

두 언어가 삶의 동력이 된다

by 로마 김작가

만 6세의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탈리아의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5년이다. 총 13년, 한국보다 1년 더 길다. 대신 입학이 1년 빠르다. 작년 2019년 9월, 13년의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로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신학기 준비물부터 버퍼링이 걸렸다. 이탈리아 엄마에겐 익숙한 준비물들이 한국 엄마에게는 참 생경했다. 학교에서 보내준 공문을 가져가 문방구 아저씨에게 건네고 적힌 그대로 주세요 하고 받아 나왔다. 한국도 육아 휴직을 초1 맘이 되면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나 거기나 힘들긴 매 한 가지다 싶어 좀 위로가 된다. 여하튼 반년이 지나자 감이 좀 잡히기 시작했다.

한숨 돌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의 세상도 변해있었다. 애가 말을 못 할 땐 아이를 이해하기 힘들어 어서 말 좀 해라 싶었는데 막상 말을 하니 아이가 학교에서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부터 상황들이 급격히 다채로워졌다. 아이러니한 건 말은 잘하게 되었는데 조잘조잘 엄마에게 시시콜콜 옮겨주던 말의 방향을 아이가 친구로 바꿔버리면서 엄마에게 오는 정보가 자꾸만 부실해졌다.


구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머리를 굴려 창의적인 질문을 만들어내 자연스럽게 답을 유도해내야 하는 거다.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어? 그러면 그냥 뭐 배웠다고 말해주는 게 뭐가 그리도 어렵냐 말이다! ) 이는 이탈리아 초등학생의 삶을 살아 본 적 없어 그 속마음을 알 길이 없는 엄마의 상상력 수치만 오르게 한다.



이탈리아의 초등학생의 삶을 알고 싶어 한국어로 번역된 이탈리아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15년을 살아도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읽을 생각은 안 했다. E_book의 시대, 이탈리아에서 한국 책 읽기가 힘들 것도 없다. 심지어 yes24 해외배송을 주문하면 3일 만에 로마 집 앞에 책이 도착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이탈리아 책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았다. 동화책은 꽤 있었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또는 이 나이가 주인공인 책은 찾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 엄마로 이탈리아 학부형으로 고민이 생기면 이탈리아 서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이탈리아 청소년을 만나고 이탈리아 초등학교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다문화 아이들을 인터뷰한 책도 있었다.


[Io vengo da corale di voce straniere] Daniele Aristarco, 2019, Einaudi Ragazzi

Zoe라는 아이의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엄마는 칠레 사람이다. 소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 사람은 아니다. 이 소녀는 언제나 자신에 대해 아주 길고 세세하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이다.


Io so che, a volte, è meglio fermarsi ad ascoltare, almeno di tanto in tanto. E allora, ascoltatemi: io vengo dall’Italia e mi sento italiana. Ma questo non conta. A tutti gli effeti, sono straniera.

나도 안다 때론 듣기 위해서 멈추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적어도 가끔은 말이다. 그러면 이제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난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나를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중요하지 있다. 모든 면에서 난 외국인인걸.


초등학교 입학 무렵 아이가 자신의 얼굴 왜 분홍색이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유치원을 다닐 무렵엔 왜 여기는 자신의 나라인데 자기 말(한국말)을 쓰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언젠가 이 인터뷰 책에 아이가 공감하고 자신의 의문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에 위로받을 수 있을까?


[Dirritti al cuore] Antonio Ferrara , 2019, Le rane


8살 이탈리아 소년, Leo 가 주인공인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Leo는 학교에서 어느 나라에는 아이들이 학교가 아니라 일을 하러 가야만 하는 곳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Ho pensato che i grandi dovrebbero cambiare, queste cose. E poi ho pensato una cosa strana. Ho pensato che forse la maestra ci leggeva quelle cose perché, se non riescono loro, i grandi, a cambiare il mondo, quando io e i miei compagni diventiamo grandi toccherà a noi, provarci.

난 어른들 반드시 이것을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읽어준 이유가 어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나와 내 친구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건 우리의 몫이라는 될 거란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i bambini non dovrebbero lavorare!>> ha detto a un certo punto la maestra chiudendo il libro e alzando un pochino la voce. << Alla vostra età i bambini dovrebbero fare solo due cose importani! Chi sa dirmi quali sono?>>
<<mangiare e dormire!>> ha risposto Pietro, tutto contento.
<<Ma no, Pietro!>> ha detto la maestra, e tutti ci siamo messi a ridere.

” 아이들은 일을 해선 안돼.” 책을 덮으며 선생님이 말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조금 커지며 물었다. “너희 또래의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단 두 가지의 중요한 권리가 있어! 아는 사람?”
“먹고 자기요!”
피에트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휴, 피에트로 야”
선생님의 말에 모두 웃었다.

<<Be’ , certo che in effeti tutti i bambini hanno diritto anche di mangiare e dormire>> ha detto la maestra. << Hai ragione, Pietro. Ma io volevo parlare di altre due cose importanti che tutti i bambini avrebbero diritto di fare....>>
<<Studiare e giocare!>> ho detto io.
<<Bravo Leo!>> ha detto la maestra sorridendo.
<<Bravo, hai capito tutto>>.

“흠, 분명히 모든 아이들은 먹고 잘 권리가 있지. 너도 맞아. 피에트로.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모든 아이들이 가져야만 하는 중요한 두 가지 권리인데...”
“공부하기와 놀기요!”
내가 말했다.
“ 맞아 레오!!”
선생님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멋지구나. 넌 모두 이해했구나.”


이렇게 난 이탈리아 초등학교 교실을 살짝 들여다본다.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하면 어쩌냐 는 말을 듣고 자라서 공부는 의무고 놀기는 의무 태만인 줄 알았지. 아니면 놀기는 공부라는 의무를 끝낸 후 받는 달콤한 상인 줄 알었지. 공부도 놀기도 유년시절 우리의 권리였다. 어른이 되어서야 이탈리아어로 적힌 책을 통해 알았네.


아이가 8살이 되면
이 책을 꺼내 주어야겠다.


최근 본 유튜브 강의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youtube [독서 습관 키우는 방법] 중에서
읽기는 후천적 훈련이며 책 읽는 뇌는 만들어집니다. 많이 들은 아이가 더 잘 읽으며 읽기의 시작은 아이와 맞는 수준 혹은 더 낮은 수준의 책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책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고 재미있고 만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평생 독자로 만들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의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살다 보면 어려운 순간이 많고 누구 한 사람 나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순간도 만납니다. 그럴 때 책 읽는 습관이 있었던 아이들, 어릴 때 책을 즐겁게 읽었던 아이들은 희한하게 책으로 다시 옵니다. 그 안에서 자기가 위안을 받건 방법을 찾건 그것을 동력 삼아서 또다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중언어의 삶 속에서, 한국인 이탈리아인의 경계를 오가며 자라는 한 개인으로, 이 아이가 고민이 생기고 위로받고 싶을 때 해답을 얻고 싶을 때 분명 책은 친구이자 멘토이자 선배이자 부모가 되어 줄 것이다. 이중언어 모두 읽고 씀에 부족함이 없도록 두 언어 모두의 독서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한 노력은 아이의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훗 날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힘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이국 땅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책 속에서 그 답을 찾았듯이.


마지막은 나의 육아 바이블 룽잉타이의 [사랑하는 안드레아]의 일부이다. 나의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타이완에서 태어난 엄마 룽잉타이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란 아들, 안드레아 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둔 책이다. 수 없이 읽었지만 글을 쓰면 다시 읽어보았다. 18세의 미래의 아이들과의 대화를 그려보며....


[사랑하는 안드레아] 룽잉타이 / 안드레아, 2015, 양철북


(중략) 제 가장 친한 친구 셋을 예로 들어볼까요? 무니르는 독일인과 튀니지인의 혼혈이에요. 프레디는 독일인과 브라질인의 혼형이에요. 다윗은 유대인이에요. 어머니는 독일인, 아버지는 이스라엘인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독일인과 타이완인의 혼혈이고요. 우리 패거리 넷이 거리를 걸어 다니면 그야말로 ‘혼혈당’ 이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때문에 곧 자유 논쟁이 일어나곤 해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혼혈아’는 ‘혼혈아’와 잘 어울리고 또 마음도 잘 통하죠. 예를 들면, 축구장에서 그냥 되는대로 축구를 하려고 하면요, 서로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경기 인원만 채워지면 곧장 팀을 나눠 경기를 하거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독일 팀과 국제 팀으로 나뉘어요. 인종주의와는 아무 상관없어요. 다들 그러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 오히려 우리는 서로 다른 인종 문제를 가지고 농담까지 하는 걸요.

(중략) 조만간 저는 홍콩으로 가야 해요. 그곳은 여기와는 많이 다른 세계겠죠.

(중략) 서운하고 섭섭해요. 엄마는 그러겠죠.
“안드레아, 인생이 바로 그런 거야.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렇게 섭섭할 것도 없단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섭섭하고 아쉬워요.
그래서 저는 이 베란다에 앉아 우리가 함께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어요. 앞으로 걸어가야겠죠. 하지만 제가 어디서 왔는지는 잊지 않을 거예요.

안드레아가


(중략)”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
이 질문에 그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지금 같은 추세에서 ‘누구나 반드시 한 국가에 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서서히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와 언어만 남고 국가는 없을 수도 있고, 여권상의 국가가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그런 국가 아닐 수도 있어. 충성을 바치고 싶은 국가에선 오히려 국적을 주지 않으려고도 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소위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개념은 없을지도 몰라.

국가의 의미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든, 국가가 있든 없든, 흥하든 망하든, 커지든 작아지든 안드레아, 마을은 변하지 않는단다. 마을의 땅과 그 추억은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기 전에 네 마음속에 마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게 엄마는 정말 기뻐.

엄마가


엄마가 너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 열아홉 살의 네가 엄마의 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더더욱. 네가 그리워, 아들. 타이베이의 새벽 세시, 창밖 가로등의 은은한 불빛들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며 겨울밤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구나. 다 큰 자식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일방적일 수밖에 없어. 젊은의 생기가 넘치는 자식은 자기 인생의 비전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기도 바쁘니까.

엄마는 그저 뒤에서 점점 작아지는 아이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저 지평선이 얼마나 멀고 긴지 가만히 지켜볼 뿐이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까.

엄마가


앞서 걷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본다. 내가 답해 줄 수 없는 생의 수많은 고민들과 부모가 의지가 될 수 없는 미래의 갖가지 역경을 만나게 될 거다.


그때 자신이 태어난 나라, 부모가 태어난 나라의 두 언어로 쓰인 세상의 책들이 빛이 되어주길.


어쩌면 두 언어의 성장을 응원하는 일은 아이보다도 숨 가쁘게 달려가기 바쁜 아이의 그림자를 그저 뒤에서 바라볼 날을 맞이 해야만 하는 엄마가 지금부터 아이에게서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서야 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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