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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교 덕분에 뒷걸음치는 아이의 현지 언어

feat. 손톱 물어뜯는 엄마

by 로마 김작가


다시 읽어봐.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인데?


몰아붙이는 나의 말에 아이가 긴장하고 굳어가는 것이 보인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는 급기야 허벅지를 긁기 시작한다.


(망할 놈의) 코로나로 인한 휴교 3개월째


아이의 이탈리아 말은 두리뭉실해지고 있다. 의미는 흐려지고 문장은 단순해지고 단어에 대한 기억은 후퇴하고 있다.


언어교육에 대한 나의 신념은 단호했다.


집에선 한글만 신경 쓴다.
이탈리아 말은 학교와 친구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통째로 집에서 보내게 될 줄은 차마 상상도 못 했다. (현상황을 예측한 이 어디 있었겠냐마는...) 온라인 수업이 진행 중이긴 하나, 아이 혼자서 해나가기엔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부대끼는 수업에 비할바가 아니다. 수업 시간만큼이나 쉬는 시간 간식을 먹고 점심을 먹는 시간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배움이 시간이었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역병이 창궐한 이 상황에도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이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친구들과의 이탈리아 말 수준의 갭이 얼마나 벌어지게 될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탈리아 초등학교는 6월 첫째 주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때문에 9월 개학이 기정 사실화된 상황이다. 이 말인즉슨 초등학교 1학년을 반년만 등교하고 곧장 2학년이 된다는 이야기다.

몇 개의 동사로 문장을 돌려막기를 하고 구사하는 단어는 구성이 참으로 빈약하기 그지없다. 마치 외국어 공부를 막 시작한 심화과정으로 들어가지 않은 초기 시절처럼 말이다.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쉽게 메워질 구멍이 반년 동안 너무 크게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코로나로 인한 이동제한 상황의 진정한 구원자 넷플릭스는 참으로 쉽게 언어 전환이 가능하여 아이는 한국말 버전이 없는 만화는 패스해버린다.


한국말이 언제나 우위에 있었지만 학교와 친구들 덕분에 두 언어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휴교와 함께 무게는 한국말로 확 쏠렸다.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이탈리아 말로 영상을 시청하고 책 읽기 일기 쓰기를 시키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몸을 꼬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아이의 이런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100%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언어가 있는데 명료하지 않은 언어를 한국인 엄마 아빠 동생만 있는 집 안에서 사용을 하라니. 만 6세가 잘도 납득을 하고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참으로 이렇게 까지 저를 신경 써 주시니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 할리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이 어미다. ‘그럴 리가 없는 걸 알면서 그러길 원하는’ 이율배반의 어미란 말이다. 내가 이렇게 애를 쓰는데 감히 네가 빠져나갈 궁리를 해? 어딜 졸리다는 말을 하는 거야? 어쩜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나의 노력에 이따구로 성의 없이 반응하고 있는 거야? 똑바로 앉으란 말이다! 똑. 바.로.

급기야 마음속으로 담아둔 그 말이 육성으로 나온다.

“너 그러다가 9월에 학교 가서 어떻게 할 건데?! 수업은 따라가겠어? 선생님 말 알아들을 수 있겠어? 친구들이 하는 말은 알아들어?! “

그리고 막장 드라마 공식 대사가 뒤따른다.


엄마가 너에게 안 좋은걸 시키겠어?
이게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건데!!


종일 게임하고 만화 보고 동생이랑 놀다가 겨우 몇 분 책 읽고 일기를 쓰는 건데 그것조차 싫어하는 티를 내는 것이 너무 밉고 꼴 보기 싫었다.

“그래? 그럼 엄마도 이제 안 해! 너 학교 가서 말 못 알아듣는다고 엄마에게 뭐라고 하지 마! 잘 들어. 엄마는 노력했어! 기억해!”

아이 눈에 눈물이 맺힌다

“엄마, 할게. 미안해.”

“몰라!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엄마 안 해! 안 할 거라고!”

(와.... 내가 한 말인데도 읽어보니 진짜 유치하다.)

남편이 다가온다.


“그만해. 다시 학교에 돌아가면 알아서 다 할 거야. 다 알고 있는데, 본능으로 언어를 쓰는 아이인데 이렇게 물어보니 답을 못하는 것뿐이야. 아이를 너무 몰아붙이잖아. 아이가 부족한 게 아니고 당신의 기준이 너무 높은 거야.”

“그래? 그런데 나에게는 그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알아? 믿는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핑계로 난 아무것도 안 할 거야로 들려. 애가 못 따라가서 학교에서 부르면 불려 가는 건 나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튜텨를 찾는 것도 내 몫이 되겠지. (이탈리아는 초등학교도 유급을 한다.) 결국 감당하고 수습하는 건 내가 될 거야. 그럼 당신이 말해줘.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내버려 둬야 하는지. 다 하지 말라고 하면 나도 안 하면 속편해.”

“그냥 말을 너무 막 해. 칭찬해줘. 화내지 말고. 한 번도 잘한다고 하질 않잖아.”

소리치고 싶었다. ‘ 아... 하고 있는 건 다 해 줬으면 하는데 말은 예쁘게 하라는 말이야 뭐야!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열반에 오르지 못한 한낯 중생일 뿐이라고.’ 하지만 말없이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침대에 얼굴을 묻고 생각했다. 아이를 해하는 일은 분명 아니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일을 꾸준히 한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일 뿐 실전에서 아이는 벌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만든 것이 나다.


아이의 일기


이탈리아 작가 Gianni Rodari 가 1962년에 쓴 <Giornale dei genitori : 부모들을 위한 신문>에서 소개한 [아이가 책 잃기를 싫어하게 만드는 9가지 방법 ]이 있다.


[9 modi per insegnare ai ragazzi a odiare la lettura]

1. Presentare il libro come un’alternativa alla TV
2. Presentare il libro come un’alternativa al fumetto
3. Dire ai bambini di oggi che i bambini di una volta leggevano di più
4. Ritenere che i bambini abbiano troppe distrazioni
5. Dare la colpa ai bambini se non amano la lettura
6. Trasformare il libro in uno strumento di tortura
7. Rifiutarsi di leggere al bambino
8. Non offrire una scelta sufficiente
9. Ordinare di leggere per insegnare ai ragazzi a odiare la lettura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 아이가 책 잃기를 싫어하게 만드는 9가지 방법 >


1. Tv의 대체로 책을 소개하기
2. 만화의 대체로 책을 소개하기

: “책 안 읽으면 tv 못 봐. 책 안 읽으면 만화 다 갖다 버릴 거야.”
3. 아이에게 우리가 어릴 땐 책을 더 많이 읽었다고 말하기

: 비교하기 심지어 과거와.
4. 아이가 너무 산만하다고 걱정하기
5. 아이가 독서를 싫어한다고 비난하기
6. 책을 훈육의 도구로 사용하기
7. 아이에게 책 읽어 주기를 거부하기
8. 충분한 선택권을 제공하지 않기

: “엄마가 고른 책, 오늘은 여기까지 읽어.”
9. 독서를 싫어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독서를 명령하기

: “읽으라고!”


소름!!!
위에 있는 거 이미 다 했고...


불현듯 떠오른 기억.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가방 안에는 언제나 그림들이 그려진 수십 장의 종이들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집에선 거의 그리지 않는다. 하루는 집에선 왜 안 그려? 하고 물으니 아이가 답했다.

“난 학교에서만 그려. 왜냐면 학교에선 내가 그리면 친구들이 다 몰려와서 좋아해 주거든.”

책을 읽으라고 명령하고 문장마다 이해하는지 물어보고 일기에 쓴 문장을 고치고 매 순간 아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때의 나의 눈빛과 말투는 어땠겠는가? 마치 아이가 실수하고 모르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처럼 노려보고 있었을 거다. 아이가 집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쯤 되면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인지 불안함을 없애기 위한 나를 위한 일인지 헷갈린다.


아이와 마주 앉았다.

“엄마는 사실 걱정돼. 9월에 다시 학교에 가면 넌 2학년이 되는데 선생님 말도 친구들 말도 잘 못 알아들을까 봐. 엄마가 생각하기엔 이탈리아 책 읽기와 일기 쓰기를 꾸준히 하면 이안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래서 지금은 힘들어도 계속하면 좋겠어. 그리고 이안이의 이탈리아 말이 늘면 책 읽기와 일기 쓰기가 즐거워질 거라고 믿어. 그때까지 한번 해보면 어때? 엄마도 화내지 않을게. “

“응 나도 알아. 엄마가 화내서 엄마가 싫은 건 아니었는데 사실 좀 슬펐어. 나도 계속하고 싶어. 멍청이가 안 되고 싶거든.”

그 말을 들으며 ‘엄마가 좋아할 것 같으니까 계속할게’는 답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음날 온라인 수학 수업, 아이들이 돌아가며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의 몸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보통 같으면 ‘똑바로 앉아 집중해’라고 눈을 흘겼을 텐데, 이번엔 대신 아이에게 종이 한 장을 슬쩍 밀어주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이안 심심하면 그림 그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화면에 보이지 않게 감추고 몰래 그림을 그렸다. 우린 눈을 마주치며 킥킥 웃었다. 고질라와 싸우는 티라노 이야기인데 아이는 영화의 예고편이라며 대사도 적었다. 나에게 읽어보라고 하고는 잘 이해를 못하자 다시 글을 수정하고 수정해 서서히 맞춤법이 그럴싸해졌다. 그 후로 종종 우린 작당하여 수업 중 몰래 그림을 그렸다.


[고질라가 나타났다] 이안 작품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 마스크를 쓰고 있는 피카츄 (온라인 수업 중 친구 집에 놓인 인형을 발견하고 그렸다.)


일기 아래에는 받아쓰기 칸을 만들었다. 아이가 말이 안되는 문장으로 일기를 써도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나도 같은 내용으로 문장을 만든다. 아이의 일기 쓰기가 끝나고 내 문장을 읽어주면 아이는 ‘아, 이렇게 말해도 되네.’ 하고 중얼거리며 받아쓴다.


일기에 새롭게 등장한 ‘받아쓰기 ‘칸

이탈리아 책은 여러 가지 짧은 단편이 있는 것으로 골랐다. 위에 언급했던 Gianni Rodari의 책이다. 두세 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내용들이 황당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 마치 아이들이 만들어낸 얼토 당토 않은 이야기 같다. 그래서 딱히 이런 이야기라고 규정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아이는 제멋대로 해석하고 하고 싶은 대로 이해한다. 나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캐물을 수 도 없다. 되려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이게 이런 말인가? 짜 맞춘다. 읽을 페이지는 아이가 직접 고른다. (대부분 짧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짧은 이야기 위주로 고른다.) 모르는 단어는 함께 사전을 찾고 대사가 있으면 역할을 나눠 읽는다.

Gianni Rodari의 알파벳에 관련된 이야기만 모아서 2016년에 재발행된 책이다.
어제 아이가 고른 이야기
위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피렌체에 가면 ‘ane’ 라는 개가 있는데, ( 이탈리아 말로 개는 ‘cane’다. 그러니 이 개의 이름은 ‘ㅐ’ 정도로 해석되겠다.) ‘cane’(개)에서 ‘c’가 빠진 ‘ane’(ㅐ)라는 이름의 개는 머리가 없다. 그래서 밥을 어떻게 먹냐면.....]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이런 식으로 밑도 끝도 없다. 그런데 이런 괴상한 이야기를 읽으면 아이는 요상한 이야기가 마구 떠오르나 보다.

“엄마, 도둑이 이도(동생 이름이다)의 ‘ㄷ’을 훔쳐서 ‘쥐’에게 줬다고, 그래서 ‘쥐’가 ‘뒤’가 되어서 쥐가 뒤로 다니는 거야.”

아... 그. 렇. 구. 나.



이탈리아 책을 읽을 때면 어떻게든 빨리 읽어버리려고 이해를 못해도 대충 읽고 말던 아이가 책을 읽다 색연필을 들고 단어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엄마, 봐봐. 이건 내가 잘 모르는 단어야. 다 읽고 함께 찾아보자.”

아이 가까이 얼굴을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이건 엄마도 몰라. 우리 같이 찾아보자.”

오늘은 책을 안 읽어 엄마가 화가 났다.라는 내용으로 가득했던 일기가 오늘은 행복했다. 는 내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정말 다행이다. 아이가 집에서는 영원히 그림을 그리지 않을 뻔했다.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지만 그렇다고 고민의 꼬리가 줄어든 건 아니다.


나만 이런 걱정을 하나? 불안함에 여전히 아이를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언어는 균형이 맞춰지는 걸까? 어떻게 하면 아이를 괴롭히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대체 만 6세, 한국 아이, 이탈리아 아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 걸까?


나의 기준은 어정쩡하여 갈피를 못 잡고 하염없이 흔들린다. 정말이지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밤이다.


written by iandos


*Gianni Rodari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자세히 만날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amaian/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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