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교사가 되면 아이와 멀어진다.
시작은 또 썩을 코로나 때문이다. 3월 중순 휴교를 하고 하고 몇 달이 지나자 아이의 이탈리아 말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아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언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불편한 상황 속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여기서 불편한 상황은 그 언어를 쓰지 않으면 내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난 이것을 그 언어를 하지 않는다면 삶이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는 환경이라고 부른다.
외국에서 살면 당연히 그 나라 말이 늘겠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다. 한국말만 하면서 한국사람만 만나면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단 삶이 어느 수준 이상을 나아갈 수 없을 뿐이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뿐이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경험과 잡을 수 있는 기회도 한정된다.
아이에게 있어서 불편한 환경은 학교다. 현지 언어를 하지 못하면 삶이 나아가지 못하는 현장 말이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친구와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는 어느 정도 도달이 가능하나 업무적 대화나 작문이 가능한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강도의 공부가 수반되어야만 했다. 어쩌면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겠다.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 과정이 학교라는 환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학교를 못 간다고.
그게 어느새 반년이다.
이탈리아 말이 완벽하지 못한 한국 엄마는 애가 탄다.
아이들은 본능적이다. 그만큼 언어 습득이 빠르지만 무엇보다 환경이 중요하다.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면 자신에게 부대끼지 않는 언어만 사용한다. 엄마가 아무리 아이 앞에서 한국말만 쓴다 해도 이탈리아 말을 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한국말을 곧잘 하던 아이들이 이탈리아 말만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한국말을 알아듣고 있는데도 이탈리아 말만 쓰기도 한다. 한국말을 하기 위해 한번 더 뇌를 움직여야 하는데 것이 불편한 거다.
지금도 이탈리아 친구들도 만나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이 이상의 어휘나 문장을 만날 기회가 학교를 다닐 때에 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3월 휴교가 시작된 시점부터 아이와 매일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한국말 이탈리아 말로 두 가지 언어로 쓰는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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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년이 지나자 어느덧 두 권의 일기장이 채워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기에 특이점이 왔다.
일기가 쓰기 위해 쓰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매일 저녁 일기를 쓰기는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건은 목요일에 일어났다.
이중언어의 균형적 발전을 표방한 일기 쓰기에는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온라인 수업 숙제에 일주일이 나왔는데 아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요일을 이해 못했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월요일엔 학교를 가고 수요일엔 오후 수업까지 하고 토요일엔 한글학교 일요일엔 성당 얼마나 설명하기 쉬운가!!
그런데 매일이 일일일일일요일인데 애가 월화수목금토일 개념이 생기겠느냐고!!!
심지 목요일! 목요일!! 목요일이라...(나에게 목요일은 슬기로운 의사생활하던 날?!) 아이에게 설명하기에 아... 목요일 특징 없다.
그래도 한국말은 월화수목금토일 외우기라도 쉽지 이태리 말로는 아무리 해도 아이 입에 붙질 않았다. 그래서 일기를 쓰면 요일을 이해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어제도 놀고 오늘도 놀고 내일도 노는데 요일이 당최 무슨 소용인가. 그래도 반년을 일기를 썼는데! 목요일 앞에서 또 아이가 이태리 말로 뭐였더라 하고 있는 거다.
결국 내 머릿속 폭주 버튼이 눌러졌다.
파국이다.
“몇 번을 말해? 왜 몰라? 어제 수요일 오늘 뭐야?!! 일기를 매일 쓰는데 집중을 안 하는 거야? 너 하고 싶은 건 이거 해줘 저거 해줘 매일 이야기하면서 아니 목요일은 왜 몰라?! 너 이러고 학교 다시 가면 따라가겠어?(어머 어머님 왜 여기서 이 이야기가??) “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일기장만 쳐다본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아빠는 폭주한 엄마에게서 아들을 구출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다.
혼자 남아 폭주 버튼을 누른 것이 목요일인지 일기를 쓰기 싫어 뭉그적거리는 행위였는지 그냥 그 날 기분이 안 좋았는데 아이에게 푼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그러다 떠올랐다. 며칠 전 보았던 유튜브 강의에 이수지 그림책 작가가 나왔다. 거기서 이런 말이 나왔다.
독서가 교육이 되면 시들해집니다. 부모가 교사가 되면 아이와 멀어집니다. 교육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멋진 교사인가요.
아이가 일기 쓰기가 싫어진 이유를 알았다.
일기의 목적이 교육이라는 것을 알아챈 거다.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낸 이유를 찾았다. 난 교육을 하려 했다
아이를 찾았다. 방에서 아빠 품에 안겨 함께 요일을 외우고 있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말했다. 미션이야 내일 아침에 아빠가 아무 요일을 물어볼 거야. 네가 맞추면 내일은 하루 종일 유튜브 보기. 어때? 좋아! 엄마 나 봐봐 나 이제 잘 알아! 목요일은, 금요일은,
_대단하다. 이안이 기분 좋겠다.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우리 이제 일기 쓰기 하지 말자. 대신 시 쓰기 어때?
_시 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데?
_시는 이안이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거야. 이안이가 정한 걸로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거야. 그리고 이번엔 엄마도 같이 쓸게. 다 쓰고 바꿔서 읽는 거야.
_정말?!!! 너무 좋아. 사실 나 혼자서만 일기 쓰는 거 너무 서운했거든.( 외롭고 쓸쓸했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럼 엄마도 이탈리아 말 한국말로 다 쓰는 거야? 정말?
그리고 글씨 틀려도 돼.
시는 일부러 틀리게도 쓰거든.
시는 뭐든지 다 괜찮다는 뜻이야.
공부가 고독한 일인데 그걸 혼자만 하니 아이는 외로웠다. 공부가 따뜻한 일이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일기도 시도 우리가 하는 말도 공부가 되면 안 되지 않은가? 우린 이 날부터 매일 밤 함께 시를 쓴다.
제목은 아이가 정한다. 다 쓰고 서로의 노트를 바꿔 소리 내어 읽는다. 아이는 내가 흘려 쓴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이탈리아 작문은 지적도 한다. 난 반복해서 틀리는 맞춤법이 아닌 이상 따로 이야기 않는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오빠가 일기를 쓰는 시간이면 놀아달라고 때를 쓰던 아이가 스스로 곁에 와서 앉았다.
나도 쓸 거야. 시.
(씨를 쓴다고 쓰고 그린다고 읽는다)
아이에게 우리가 즐거워 보인 거다.
우린 식탁에 앉아 함께 무지개로 시를 썼다.
며칠 전엔 아이가 목요일로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맞다. 그 목요일이다.
8월 13일 목요일
제목: 목요일
오늘은 목요일
이탈리아 말로는 지오배디
좀 외우기 힘들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가족이 있으니까요.
아이의 시 속의 엄마와 아빠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힘들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앞으로 나아가기 버거울 때 힘이 되는 존재다. 포기하지 않도록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의 가족은 얼마나 멋진가!
우린 오늘 밤도 시를 쓴다.
아이와 부모가 마주 앉아 쓰고 싶은 대로 틀려도 되는 시를 쓴다.
written by iandos
<어린이 집에서부터 시를 배우는 나라, 낙서도 시가 되는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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