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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Oct 12. 2017

이탈리아 사람들은 시를 배워 로맨틱한가?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6

아들을 재우다 졸았다.  

졸다 눈을 뜨니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조용히 나의 눈을 쓰다듬는다.  

진짜 뽀뽀해 줄게.  

나의 눈에 입 맞춘다.

내가 왜 뽀뽀한 줄 알아?

하고 물어 왜냐고 되물으니  

엄마 눈이 너무 예뻐서

하고 잠이 든다.  


얼굴은 전형적인 한국 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로마에서 태어났다고 너도 이탈리아 남자들처럼 로맨틱한 거냐?  이탈리아 사람들의 낭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지난 토요일, 유치원에서는 festa dei nonni 행사가 있었다.  10월 2일, 세계 노인의 날이다. 이 곳에서는 festa dei nonni 라고 하는데 nonni 는 조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함께 부르는 복수형이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날 이라니 뭔가 더 사랑스러운 날처럼 느껴진다.  


한국도 그렇지만 대다수가 맞벌이 부부인 이탈리아에서도 조부모의 존재는 크다. 아들의 유치원 반의 아이들 수는 20명 정도인데 난 유일하게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엄마다. 9월 개학을 하고 원장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래서 이안이 어머니는 언제 다시 일을 시작하세요?’ 라고 묻는데 적잖이 당황했다.

  

전업주부일 수도 있다는 가정은 전혀 고려치 않은 듯 자연스러운 질문에, 내년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복귀할 거 같다면 얼버무리고 나왔다. 이렇게 모두가 맞벌이의 상황이다 보니 주변에도 조부모가 가까이 사느냐 아니냐가 육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날 행사는 어버이의 날 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들이 집에서 전혀 내색을 안 해 몰랐는데 이 날 준비를 위해 아이들은 시를 외웠다고 한다. 행사가 시작하고 유치원 아이들이 모여 함께 시를 읊는다.  


 ~ I nonni ci danno tutto l’amore  

Usano sempre parole del cuore.  

Sembra così, ma non son tutti uguali  

I nostri nonni son proprio speciali.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나 마음을 담은 말들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사랑을 전해줍니다.  

모두가 똑같아 보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진정으로 특별해요.   

 

아들은 전혀 외우지 못했지만 제일 앞 가운데 자리를 잡고 어째 입은 비슷비슷하게 맞춘다. 마치 성당에서 처음 기도문을 외우지 못해 겨우겨우 입모양만 흉내 낸 기억이 나서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특별한 날이면 언제나 시를 선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좋다.    

지난 5월 festa della mamma(엄마의 날/ 이탈리아는 엄마의 날, 아빠의 날이 따로 있다.) 에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선물에도 어김없이 시가 있었다.


Mamma


La casa senza mamma
È un fuoco senza fiamma,
Un prato senza viole,
Un cileo senza sole.
Dove la mamma c’è
Il bimbo è un piccoli re,
La bimba una reginella
E la casa è molto più bella.
 
엄마가 없는 집은
불꽃이 없는 불
팬지 꽃이 없는 풀밭
해가 없는 하늘입니다.
엄마가 있는 곳에서
아이들은 작은 왕이고 여왕이며
집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 >에서 핀란드 교육을 담은 편에서 미국의 교육 상황을 들으며 선생님들이 핀란드의 교육관에 대해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중에 감독이 어떤 말을 하자 한 선생님이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하는 순간이 있는데


미국의 학교에는 시론을 가르치는 수업이 없어졌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이탈리아에선 어학원을 다닐 때도 시를 적는 수업이 있었다. 시에는 비록 그 순간이 참담하고 참혹하다 할지라도 희망과 빛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윤동주의 시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 노래한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생후 14개월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학교에서 항상 시를 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행복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더불어 언젠가 아들이 나에게 직접 시를 지어 들려주는 상상을 하면 가슴 깊은 곳 어딘가 찌릿해져 온다.
 
집 앞 골목길, 아들과 유치원을 오고 가는 길에는 많은 낙서들이 있다. 낙서에서 조차 낭만이 흐른다.

Ti difenderò da incubi e tristezza
 E ti abbraccerò per darti forza sempre
 Auguri vita +18
 
 악몽과 슬픔으로부터 널 지켜줄게
 너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항상 널 안아줄게
 18살, 너의 생을 축복해


Non ti prometto che sarà una fiaba.
Ma ci sarò qualunque cosa accada!
 F. ♡
 
한 편의 동화 같을 거라고 너에게 약속할 순 없어,
하지만 어떠한 일이 펼쳐진다 해도 내가 곁에 있을게.
사랑해 F


Io credo in te...
Tu non sei sola,
Sei solamente unica
 
난 널 믿어
넌 혼자가 아니야,
넌 하나뿐이 특별한 사람이야  


한 번은 남편이 이탈리아 남부의 한 식당에서 손님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환상적인 장소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다. 손님이 주문한 식사가 나왔고 요리를 내려놓으며 웨이터가 말한다.


이 파라다이스에서의 순간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시를 알아서 이렇게 로맨틱 한가…..  


세상은 각박해지고 말은 거칠어지며 표현은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해버린 지금 이 시대에 시가 무슨 소용이냐고 누군가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가 우리 곁에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두 아이는 두 개의 언어를 가지고 자란다. 단순히 이탈리아 말을 잘 한다 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정서를 가지고 이 나라 말을 한다. 한국 가정에서 자라며 한국의 정서를 가지고 한국말을 한다. 때로는 두 정서가 뒤섞여 버릴지도 모르겠다.


두 개의 나라의 정서가 공존하며 두 언어를 쓰게 된다는 것은 분명 혼란스러운 일이겠지만 굉장히 큰 축복이기도 하다. 때론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을 나래를 펼치다 보면 이제 겨우 4살의 아들과 생후 9개월을 갓 넘긴 딸을 보며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를 '부끄러움을 가르쳐드립니다' 를 이탈리아어로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닿는다. 아이들이 나에게 이탈리아 시를 알려주고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의 시를 읽어주는 풍경도 그려본다.


그렇게 무한히 그 어느 날을 그려가다 보면 두 아이를 키우며 나 또한 아이들에게 큰 선물을 받고 있구나 깨닫는다. 아이들을 이 곳에서 키우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일들을 아이들을 통해서 느끼고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훗 날 아이들에게 너희들을 통해 나의 세계가 너무나 풍요로워졌음에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그리고 시를 노래하듯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말을 전하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잠이 든 두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기도해 본다.

Come un pittore 화가처럼
 

Ciao, semplicemente ciao
Difficile trovar palore molto serie
Tenterò di disegnare
Come un pittore
Farò in modo di arrivare dritto al cuore
Con la forza del colore


 안녕, 그냥 안녕
 심각한 말을 찾기가 어려워
 그림을 그려 볼게
 화가처럼,
 마음에 닿도록
 색깔의 힘을 빌려
 

Per le tempesta non ho il colore
Con quel che resta, disegno un fiore
Ora che è estate, ora che è amore


 폭풍을 위한 색은 없어
 남은 색으로는 꽃을 그릴 거야
 이제 여름이야. 이제 사랑이야 
 
Azzuro come te,
come il cielo e il mare
E giallo come luce del sole,
rosso come le cose che mi fai...
provare



 파란색이야
 하늘처럼, 바다처럼, 너처럼
 햇빛 같은 노란색이야
 네가 나에게 경험하게 해 준 것과 같은 빨간색이야 
 

(이탈리아 락밴드 Modà의 2011년 곡 ‘come un pittore’의 가사 중에서)  


written by_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었던 글을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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