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7
이탈리아에도 많지는 않지만 조깅을 하는 사람은 있다. 이탈리아 조깅족은 미국이나 독일의 조깅족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중략)
첫째, 멋을 많이 부린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달리기에 편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은 먼저 옷부터 멋지게 갖춰 입는다. 이런 현상은 남녀노소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지 궁리하고 돈도 들인다. 그렇게 차린 모습이 보기 좋기는 하다. 거기에 실력까지 따라주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렌티노 상하의에 미소니 타월을 걸치고 뛰니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다. 이탈리아 조깅족의 두 번째 특징은 혼자서 달리는 사람이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대게 몇 명이 어울려 함께 달린다. 혼자 뭔가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지 국민성이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지, 아니면 혼자서는 떠들 수 없으니 그것을 못 참는 건지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처음 한동안은 이런 현상이 신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달리기는 고독한 스포츠다,라고 잘난 체할 생각도 없고 여러 사람과 함께 달린다고 문제 될 것도 없지만, 어쨌든 혼자 달리는 사람이 극히 적다. (중략)
한 사람이 근처 수풀 속에 들어가 서서 소변을 보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서 제자리 뛰기를 하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할 수도 없고 본인들이 즐거워하므로 상관할 일 아니지 않으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굳이 소변보는 사람까지 기다릴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야 어린애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탈리아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도 절대로 이기고 돌아오지 못하리란 생각이 절로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 [더 스크랩] 도서출판 비채, 2014
글을 읽으며 로마 카라칼라 욕장 앞길로 우르르 모여 조깅을 하는 이탈리아 남자들이 눈앞에 그려져 웃어버렸다. 조깅할 때조차 멋을 부리는 민족성이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할 것 같지만 한국 정서와는 왠지 모르게 닮아있어 공감이 간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그 정도가 최고조에 다다른 이탈리아 남자들을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있다. 전 세계 모든 멋쟁이들을 피렌체로 모여들게 하는 피티 워모다.
: 매년 1월 과 6월 피렌체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의 남성복 박람회
전 세계 멋쟁이들이 모여 세계의 브랜드들의 다음 시즌의 옷들을 소개하고
바이어들은 상품을 오더 하는 치열한 비즈니스의 장
이탈리아 남자들
언제나 사랑을 받아왔고
애송이들에게 인기가 모여도 눈 하나 꿈쩍 않는
관심을 사기 위해 선전하기에 전전긍긍 않는
그럴 필요가 없을 만큼 어디에서든 빛이 나고 멋져 보이는 남자들
작은 키에도, 짧은 다리에도, 튀어나온 배에도 당당한!
민머리조차 패션 아이템이 되는 그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세팅되고 계획되었지만, 그 모든 것이 일상인 듯 자연스러운 패션의 기운을 발산하는 남자들, 바로 그 이탈리아 남자들이 때거지로 등장해 매년 세계를 선도할 트렌드를 선보이는 곳,
피티워모가 열리는 시즌의 피렌체다.
이탈리아에 발을 내딛는 모든 여성들 심지어 남성들조차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되는 것은 거지도 장동건이라는 이탈리아의 남자들이다. 그러나 로마 중앙역에 도착해 만나는 거지들의 보는 순간 느껴진다. 그냥 딱!!!! 거지라는 것을! 기대를 저버리게 만드는 상황에 대상도 딱히 모르는 누군가에 치미는 분노
누가 그랬어!! 이탈리아 남자 멋지다고!!!
이탈리아에서의 시간이 오래될수록 이탈리아의 진짜 멋쟁이들은 젊은이도 중년도 아닌 노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젊을 때 멋진 것보다 나이 들어 멋진 것이 훨씬 폼 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멋 속에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 가가 보인다.
어쩌면 이탈리아 남자들이 멋진 건 잘 차려입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멋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그 삶을 진정 즐길 때 나올 수 있는 멋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사는 듯한 그들을 보면 떠오르는 알바자 리노의 유명한 말,
STYLE IS NOT FASION,
IT'S SOMETHING INSIDE WE HAVE
(스타일은 유행이 아니고, 우리 가슴속에 있는 어떤 것이다)
피티워모 시즌이 되면 하루 시간을 내어 피렌체에 간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이상하게도 멋진 옷차림들 보다 인상에 남는 것이 있다. 진짜 멋진 남자들은 모두들 나이가 지긋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들로 무장하지 않았음에도... 무심히 걷어올린 바지에 운동화를 신어도 빛이 나는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그들의 나이에서 나오는 멋이다.
공자왈
- 나는 열다섯에 배우려는 동기를 가졌고, 서른 살에 제자리를 찾았으며, 마흔 살에 가지 못하는 길과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헷갈리지 않았고, 쉰 살에 하늘의 명령을 깨달았으며, 예순 살에 어떤 소리에서도 합리적인 요소를 찾았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가더라도 기준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들의 멋은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른다 해도 기준을 넘지 않는 멋진 진짜 나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멋인가….
가장 이상적인 미를 추구했던 그리스 예술 속에 언제나 아름다움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들이다. 자신을 제대로 꾸밀 줄 아는 남자는 치장한 여인보다 아름답다.
2014년 1월,
이안이가 뱃속에서 까지 합하면 세 번째 세상에 태어나서는 첫 번째로 함께 피티워모로 향했다. 출발 이틀 전부터 콧물을 흘리던 아이를 무정한 엄마 아빠는 이른 새벽부터 깨워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피티워모 행사장은 유모차는 반입이 불가했고 어쩔 수 없이 이안이를 안고서 입장을 하러 걸어가던 그 순간, 모두가 이안이에게 외친다.
YOU ARE THE NO.1!!
연예인병은 유전이었던 것인가!! 이안이의 코에 흐르기를 멈추지 않던 콧물이 멈췄다. 이 부자는... 진정... 관심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행사장 안에 들어서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우리에게 쏟아지는 시선들 모두들 이름을 물어보고 심지어 함께 사진 찍기를 부탁한다. 그러던 중 카메라를 든 일행이 피티워모 필름을 촬영 중인데 너무나 귀여워 참을 수가 없다며 촬영을 요청했다.
이탈리아 남자가 가장 섹시해 보이는 순간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하고 유모차를 밀며 문을 나설 때 무심한 듯 문을 잡아 주고 있을 때다. 감사의 인사를 하면 웃으며 대답한다.
(축하해요. 아이가 너무 예뻐요.)
멋의 완성은 매너다.
엄마들이 아이들이 서울대를 가기 바라며 서울대 정문에서 사진을 찍고, 하버드나 아이비리그에 가서 견학을 하는 이야기 그곳에 간다고 그 아이들이 그 학교에 모두 진학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기운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피티워모에선 나도 그런 마음이 되어버린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패션피플들이 모두 모인 이 행사에서 그 모든 패피들을 패션 애송이도 만들어버린 닉 우스터와의 만남
우리 아들 패션 킹으로 만들어 주세요!!
최고의 자리에서 여유와 부드러운 잰틀함을 보여주던 리노 레누치와의 만남
마지막으로 행사장을 나가기 직전 너무나 사랑하는 패션 포토그래퍼 The Sartorialist 스캇 슈만과의 운명적인 만남, 임신 중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던 일이 그의 블로그 방문이었다.
이 멋진 남자들의 기운을 듬뿍듬뿍 받기를!!
이안이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엄마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 이 아이가 자라고 이 곳에서 누리는 삶이 너무나 부럽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동양 아이로 이 아이가 이 곳에서 겪게 될 너무나 많은 어려움들 역시 기다리고 있겠지만 우리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될까? 다만, 이 아이가 이 곳에서의 어려움보다 즐거움에 더욱 큰 가치를 두고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부부의 이탈리아어가 완벽하지 않지만 이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나쁜 말은 듣지 못하고 좋은 말만 하고 들으며 이 아이에게 전해주기 위함이라 스스로 위로한다. 아이들의 삶이 부럽지 않도록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아이가 본받고 싶은 모습으로 비치도록 많이 보고 느끼고 걸으리라 다짐해본다.
어느 날 문득 미래를 상상하며 그려보는 행복한 이미지들이 있다. 나에게 이 날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차마 상상도 할 생각도 못한 순간이었다.
매일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고 외국이기에 겪어야 할 힘듦보다 타지이기에 누리는 새로움을 온몸으로 경험하자. 그러다보면 기대치 못한 어느 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순간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겠지.
그리고 이탈리아의 삶에서 무엇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힘은 ' 눈 작고 코 작은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탈리아 모든 이들의 너무나 사랑스러운 시선들!!'
written by_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었던 글을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