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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Oct 23. 2017

엄마, 니하오가 무슨 뜻이야?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8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신이 났다.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재미있는 노래 네 개 배웠어.

-우와~~ 엄마 들어보고 싶어.

-하나는 이렇게 음와음와~

-인디언 노래야?

-맞아!! 인디언이라고 했어!! 엄마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하나는 치네지노 노래야. (cinesino : cinese는 이탈리아 말로 중국사람이다. 치네지노라고하면 중국 아이를 뜻한다.) 이건 노래하면서 이렇게 해. ( 손가락으로 눈을 길게 찢는 흉내를 낸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린다. 동양인을 비하할 때 하는 동작 아닌가?


-그걸 누가 가르쳐줬다고?

-카를라 선생님(유치원 담임 선생님), 나랑 안나 마리아에게만 하라고 했어. 진짜 재밌지? 난 너무 웃겨.


안나 마리아는 이탈리아 일본인 혼혈이다.


-진짜야? 정말 카를라 선생님이 가르쳐줬어?


너무 화가 났다. 굳이 반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둘에게만 이걸 하라고 한 의도가 뭐지? 심장이 벌렁거린다.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아침에 이안이를 데려다주며 선생님에게 물어보자 했다. 선생님은 웃으며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 중인데 중국 파트가 있어 두 아이가 그 부분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율동에 들어가는 동작인데 나중에 공개할게요 하신다. 웃으며 대답하는 선생님에게 혹시나 학교에서 누가 놀려서 그런가 싶어 걱정했다 얼버무리고 나왔다.


큰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제대로 안 한 듯 찜찜하다.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럼 이안이가 중국인 역할을 하는 거야? 한복 입고 오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이건 한국 전통복장이라고 절대 이 걸 입고 중국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야겠어! 무대에서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 안나 마리아 엄마를 만나봐야 하나? 그 엄마도 이 사실을 알까?


끊임없이 걱정과 질문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나에겐 페루 친구가 있다. 이름은 카르멘. 이안 이를 출산하고 따로 산후조리를 도와줄 이가 없어 사람을 찾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도와준 인연이 되어 벌써 4년이 넘게 도움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말을 잘해 출산 후 거동이 불편할 때 그녀는 조리를 도와주며 남는 시간에는 이탈리아어를 가르쳐주었다. 나의 이탈리아어의 8할은 그녀 덕분이다. 때로는 선생님이 되고 청소도우미가 되고 만들기를 잘해 이안이 에게는 멋진 공작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현명한 조언자가 되어준다.


지난 여름 이안이와 카르멘이 함께 그린 그림


-카르멘, 이 동작 알아? (눈을 찢어 보이며) 이거 안 좋은 의미잖아?  

-그건 누가 어디서 어떤 의도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사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이미 나의 지난 며칠간의 고민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안이가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를 하는 거 같은데 유치원에서 배웠데. 중국인 역할인 거 같은데, 난 기분이 좋지 않아.  

-그거 알아? 난 중국인 혼혈이야. 할아버지가 중국인이야. 츄스라고 중국 이름도 있어. 난 어릴 때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당하기도 했어. 그런데 내가 어릴 땐 페루에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 놀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런데 지금 봐. 이탈리아는 정말 많이 개방되었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 이 아이들은 금발이든 흑인이든 아시아 사람이든 아무런 느낌이 없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Nuova generazione, 완전 다른 세대인 거야 우리들보다 나아. 오히려 부모들이 아이들보다 못해. 어른들이 더 성장해야 해.  


-난 선생님에게 화내고 따지려 했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안이가 즐거워하잖아. 분명 전혀 기분 나쁜 느낌을 받지 않은 거야. 그리고 생각해보니 아이가 공연에서 그렇게 하면 다른 아이들도 왠지 그 동작을 놀리는 행동으로 느끼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 내가 그 공연을 보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공연을 보고 혹여 문제다 싶으면 그때 선생님께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넌 현명해. 우선 진정하지. 그리고 생각해. 그다음엔 기다려보지. 잘하고 있는 거야. 내가 아는 많은 엄마들이 화부터 내고 따지지.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아이에게 전이시키지 않는 거야. 너의 감정을 아이에게도 느끼게 하면 안 돼.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을 따라가잖아. 그 동작을 다른 아이들이 놀리며 이안이에게 했다면 화내야지 하지만 크리스마스 공연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나오는 내용인 거 같은데 이안이는 그중에 중국인 파트를 맡은 것뿐이잖아.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야. 유치원에서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면 믿고 지켜봐.

 

-그리고 난 남미 사람들 나라별로 구별할 수 있어. 하지만 아시아 사람들은 필리핀 사람은 조금 달라 보이지만 전혀 모르겠어. 다 똑같아 보여. 중국인이라고 물을 때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야. 정말 몰라서 그런 거지.    


이안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이탈리아 한국인 혼혈이다. 그 아빠는 아들에게 말한다.   


넌 한국인 반, 이탈리아인 반이야.
누가 너에게 중국인이야?라고 물으면 넌 이렇게 대답해 주면 돼.
난 한국인 이탈리아인이야, 라고.
그 사람은 몰라서 묻는 거니까.
넌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면 되는 거야.


생각한다. 유치원에서 인디언 옷을 입혀 이안이에게 공연을 시켰어도 화가 났을까? 얼굴을 검게 칠해 아프리카 사람이 되었어도 화가 났을까? 한편으론 유치원에서 중국인 친구에게 한국인 역할을 시켰다고 해서 불쾌해하는 엄마가 있다면 난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며칠간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손님들이 이탈리아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기분 나빠하며 말해 줄 때가 있어. 그러면 난 이야기해. 살아보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가 동양인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렇더라. 그것을 차별이라고 느꼈다면 혹시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행동했을 때 차별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민주가 기분이 나빴던 건 중국인에 대해 은연중에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지난 달이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났다.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는지 무리 중앙의 여성은 머리에는 월계관을 놓여있었고 가슴엔 한가득 장미꽃이 안겨 있었다. 사람들은 연신 즐거운 듯 대화하고 웃었다. 그 곁을 지나는데 이안이가 그들에게 말했다.


-아우구리!! (Auguri! 축하해요)


그들은 작은 꼬마의 축하에 난리가 났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장미꽃을 하나 빼서 이안이게 주었다.


-니하오~


옆에 서 있던 남성은 두 손을 합장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난 기분이 상했다. 애써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우린 한국인이에요.

-어머! 미안해요. 그런데 한국말 인사는 모르는데 어쩌지……


아이는 장미꽃에 그저 신이 났다.


-엄마!! 너무 예쁘지? 엄마 너무 좋지? 엄마 꽃 좋아하잖아.

-응, 너무 예쁘다. 집에 가면 병에 물 담아서 꽂아 두자.

-그런데 엄마?

-응?


니하오라고 하면 꽃을 주는 거야~?

아이는 꽃을 보았는데 난 가시를 보았다. 그들은 장미가 향기로워 선물했는데 장미에 가시가 있어 상처를 주려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차오 혹은 헬로라고 인사했다면 어땠을까? 니하오에 기분 나쁜 의도가 심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향기로운 장미를 선물 받았는데 가시 돋친 장미를 주었다고 없는 상처도 스스로 만들었다. 가시 돋친 장미를 선물했다 한들 내가 그것을 향기로운 장미로 받으면 나에겐 향기만 남는 것을.....


카르멘의 말이 옳았다. 아이들이 부모보다 낫다. 아이는 나에게 향기를 전해주는데 난 아이에게 가시를 돋게 하려 했다. 꽃을 들고 니하오~ 니하오~ 하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에게 다가간다.


-이안이 말로 차오가 뭐야? 안녕이지? 이안이 유치원에 친한 형 스티브 있잖아? 스티브 말로 차오가 니하오야. 차오, 헬로, 올라, 니하오 모두 안녕이라는 말이야.


 모두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거야.




p.s. 위 글을 쓰고 이곳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한국 엄마들과 이야기가 오갔다. 선생님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선생님 역시 그 표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무대에서 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하루 종일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한번 더 선생님께 내 생각을 이야기해보자 마음먹었다.

-선생님 그때 말씀드렸던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선생님께서 좋은 뜻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알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보통 이탈리아 사람들은 물론 다른 외국인들이 그 동작을 할 땐 이종 차별이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로 사용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그 동작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 공연 내용이 다르게 생겼지만 우린 모두 친구예요 그런 내용이라... 그렇게 느낄지는 몰랐어요. 아이들도 이안이도 물론 너무 즐거워하고요.

-네, 이해해요. 아이에게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이안이는 너무 좋아하니까 걱정 마세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것을 보고 제가 받은 감정을 혹시 다른 아시아 부모들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안이는 한국인, 안나마리아는 일본인이라 오히려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학교에 중국 아이들도 있는데 어쩌면 그 부모나 아이들은 더 크게 느낄지도 몰라요. 가능하시다면 중국 아이들이 있는 반 선생님들과 한번 이야기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 그렇게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공연 때 그 동작을 빼는 것으로 고려해볼게요. 벌써 아이들이 그 노래만 나오면 그 동작하는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이후에 아이들이 중국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며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 같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하는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 비루한 나의 이탈리아 말로 마음이 잘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안이의 유치원에 아시아 아이들이 많이 없고 이 나라 사람들이 아시아 사람들과 접할 일이 많지 않아 생긴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차별 역시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니 이들 입장에선 모를 수도 있겠지. 더불어 외국에서 살며 인종 차별에 예민하면서도 나 역시 차별을 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본다.


written by_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었던 글을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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