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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Sep 06. 2017

이탈리아는 네게 어떤 의미니?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1

2015년 여름,

당시 어린이 집은 집에서 고작 5분 남짓 걸리지만 그 5분도 견디기 힘들 만큼 뜨겁던 한 낮 2시경.
어린이 집에서 아들을 픽업해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함께 걷던 아들 반 친구 엄마와 난 아이들에게 폴라포 하나씩 물려주기로 했다. 한사코 괜찮다는데도 굳이 자신이 사겠다며 돈을 낸 그 엄마의 손에는 세 개의 폴라포가 들려 있었다. 난 안 먹겠다 했으니, 하나씩 아이들 주고 가다가 본인이 먹으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녀는 남은 하나를 가게 밖에 주저앉아 있는 할머니께 건넨다.


 한여름에도 몇 겹이나 옷을 입고 동네 폐지라는 폐지는 다 끌고 다니는 할머니는  조금만 가까이 가도 지린내가 났다. 어린이 집을 오고 가며 나 역시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할머니.


 “항상 시원한 걸 사드리고 싶었는데 막상 그러려면 보이질 않아서……”


그렇게 무심히 폴라포 하나를 건네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그 엄마를 보면서 첫 아이를 로마에서 키우며 전전긍긍하던 난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2016년 이탈리아의 한 기사 내용이다.  


[ ‘굶주린 자가 음식을 훔친 건 죄 아냐’,  이탈리아 법원 역사적인 판결을 내리다 ]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살던 우크라이나 국적의 남성이 4.07유로(약 5,300원) 어치의 치즈와 소시지를 훔치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첫 판결에서 징역 6개월에 100유로 벌금을 선고받았지만  이탈리아 대법원에서는 하급심의 판결을 완전히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번복되지 않는 최종 판결이었다.

 

피고가 가게에서 상품을 점유한 상황과 조건을 살펴볼 때,
그가 급박하고 필수적인 영양상의 욕구에 의해서 이를 취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긴급사태에 해당한다.


이탈리아 사설은 이 발언을 인용하여 ‘생존의 욕구는 소유에 우선한다’ 고 발표한다 .

21세기 장발장에게 이탈리아는 과거와 다른 판결을 내렸다.  



이탈리아에서 단 하루를 머문다면 유적만큼이나 우리 눈에 띄는 것이 집시다.  구걸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소매치기의 모습으로  어쩌면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상당히 거슬리는 잉여의 존재들로 여겨질 법도 하다. 아침 아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기 위해 집을 나서면 집 앞 큰 쓰레기 수거함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시들이 고개를 들이 밀고 있다. 한 손에는 쇠 옷걸이로 만든 긴 꼬챙이를 들고 한참을 들쑤시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유모차에 한 가득 무언가를 싣고 스쳐 지나간다.


이 모습은 이탈리아 어느 곳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처음 로마에 와서 의아했던 것은 집시들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그 누구도 이들에게 욕지거리는 물론 눈을 흘기는 사람들 조차 없었다. 이들이 싫고 화나지 않는 것일까?  


10년을 넘게 이 곳에서 살다 보니 그저 일상의 한 풍경이 되었는데 위의 기사를 접하고  '집시를 바라보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생존에 의한 행동이라고 이해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행위가 내 물건을 탐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생계를 위함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탈리아 경기가 지속적으로 나빠지면서 최근 윌세 문제로 집주인들이 골머릴 앓고 있다.  세입자들의 월세가 밀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만약 세입자 중에 유아나 노인이 있으면 그들이 제 발로 나가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내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째 돈을 받지 못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나가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비합리적이고 상상 이상으로 느려 터진 시스템이다. 하지만 때때로 만나게 되는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이들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달 애 둘을 데리고 친구 아이들과 함께 남편 없이 수영장에 갔다 아들 샤워를 시키는 도중에 미끄러 지고 말았다. (아니, 날았다는 것이 더 맞겠다.)  비키니를 입은 채 수영장 한 구석 샤워장에 말 그대로 널브러져 버렸다. 이 날 난 10년 간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완벽하리 만큼 신속한 일처리를 만난다. 수영장 내의 구급대원이 머리에 얼음팩을 대주고 팔다리가 움직이는지 기절했는지 확인 후 연신 날 안정시켜주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고 목 보호대를 하고 전신을 고정한 채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날 데려갔다.  


전신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다. 꼬리뼈 함몰에 뒤통수는 찢어졌으나 꿰멜정도는 아니었다. 한 달간 조심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꼭 먹을 필요는 없는데 혹시나 힘들면 사서 먹으라며 진통제 처방전을 낸민다.  

이 모든 것은 30분 안에 다 이루어졌다.


 비키니를 입고 실려오느라 소지품 하나 챙기지 못한 난 당연히 제시할 신분증 따위도 없었다. 입원은 물론 퇴원 수속 조차 없었다. 내 이름도 국적도 묻지 않았다. 이제 여름 시작인데 이래서 바다로 놀러나 갈 수 있겠냐는 나의 철없는 걱정에 의사는 뭐가 문제냐 튜브 가지고 다니면서 거기 앉아서 놀면 된다 걱정마라 하고 사뭇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내가 낸 비용은 없었다.  

(이탈리아 응급실은 외국인을 포함 모두 무료 적용입니다. 단, 진료는 응급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미(?)할 경우 하루 종일 기다릴 각오를 해야만 합니다.)  


실려오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친구가 손에 쥐어준 원피스를 입고서 병원을 나서는 날 간호사가 부른다.  


"이거 당신 거예요 가져가세요.”  


내 거라니? 처음 보는 것들이다.  

구급 요원들이 덮어준 줄 알았던 천들은 이름 모를 이들의 비치타월이었다. 난 고마운 마음을 영원히 전할 수 없는 이들의 비치타월을 한 아름 안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탈리아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면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것이 떠올라 분통이 터지기도 하고  한국에서 당연하게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 대가 없이 누리게 될 때는 고마움을 떠나 의아해지기도 한다.


21세기에 인터넷 설치는 한 달의 기다림을 각오해야 하고 휴대폰 번호 변경에도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교통파업에 기차 연착은 하루 일과의 하나로 끼워 넣어도 될 정도다. 그런데 응급 상황에선 내가 아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니었다.  

심지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탈리아 지인의 남편이 암이 발견되고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 년 만에 친구 아이 세례식에서 부부의 얼굴을 보았다. 투병 중 임을 알 수 없을 만큼 건강해진 남편과 여유로운 부인의 모습을 보며 친구가 이야기해준다. 나라에서 치료비는 물론 간병인 비용까지 모두 제공해 준 데다 쉬는 동안 회사에서 월급도 나왔다고……그리고 한마디 덫붙인다.


참…. 이탈리아가 말도 안 되고 불합리한 게 많은데......  
그래도 말이야 사람이 절대 죽게는 내버려 두지는 않는 것 같아. 그지?    


몇 번을 읽고 또 읽은 [사랑하는 안드레아]라는 책이 있다.  

엄마와 18살의 아들이 3년간 주고받은 편지다.

엄마는 룽잉타이 대만의 대표적 지성.

그녀와 독일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안드레아.
둘은 편지를 영어로 주고받는다. 엄마는 독일 말을 할 수 있으나 쓰는 것이 편하지 않았고, 아들은 중국말을 할 수 있으나 쓸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 둘의 편지는 몇 번을 읽어도 매번 내가 아들과 주고받는 대화로 여겨질 정도로 몰입해서 읽게 된다.  


독일에서 태어나 유럽식 교육을 받은 아들에게 대만의 격변기를 보낸 철저한 아시아 마인드의 엄마가 묻는다.


“엄마세대는 국가로부터 너무 많은 기만을 당해왔어. 그래서일까? 마음속에 너무 큰 불신과 너무 많은 경시와 너무 많은 반대가 늘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소위 국가라는 것에 대해서, 소위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야. 그러니 열여덟 살의 안드레아, 엄마에게 알려주지 않겠니? 넌 독일 팀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니? 독일은 네게 어떤 의미니? 독일의 역사, 토지, 풍경, 교회당, 학교는 네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니? 넌 마르틴 루터, 괴테, 니체, 베토벤이 자랑스럽니? 히틀러의 수치가 너의 수치니? 너와 너의 열여덟 살 친구들은 이미 ‘독일’이라는 개념을 자유롭게 껴안았니?"

룽잉타이, [사랑하는 안드레아] , 양철북 , 2007   


아들이 이탈리아에서 자란다 해도 모국어는 분명 한국어이겠지만, 어쩌면 쓰고 말하고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이탈리아 말이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묻게 되겠지.


이안, 이도, 엄마에게 알려주지 않겠니?
이탈리아는 네게 어떤 의미니?
한국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니?    


두 나라를 공유하며 자라는 것은 때로는 행운으로 때로는 혼란이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욕심은 그 두 나라의 좋은 점들만 가득 담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탈리아에서 가난을 이해하고 어려움을 감싸 안으며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예전에 한 밀라노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 엄마의 블로그에서 읽은 글처럼 '작정하고 각오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 ' 이 되길 바라본다.



여름휴가 절정 시즌인 로마의 도로는 한산하기 그지없지만 오늘도 여전히 로마의 도로에는 쉼 없이 응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written by_iandos


*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 이 글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었던 글을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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