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 했던 일상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6월 1일, 코로나 19로 인해 폐쇄되었던 바티칸 박물관이 재개장을 하는 첫날이었다. 이탈리아의 모든 박물관은 현재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예약제로만 운영된다. 우린 마지막 시간으로 예약을 하고 가족 모두 바티칸으로 향했다. 코로나 19가 가족이 모두 함께 바티칸을 관람할 수 있는 선물을 주었다.
예약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서서 로마 시내로 향했다. 로마는 centro storico, 즉, 유적이 밀집된 역사지구 쪽으로는 일반 차량은 진입이 불가능하다. 교통체증을 방지하고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현재는 모든 차량의 진입을 허가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나 탑승 가능인원이 줄었고 무엇보다 대중교통 이용을 아직은 권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의 중심지로 미끄러지듯 가족 모두가 탄 차가 들어섰다. 차량 제한을 풀었음에도 도로는 한산했다.
이번 사태 이후 가장 변화한 로마의 풍경이 있다.
로마에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거다. 날씨도 너무 좋고 여전히 휴교 중이기에 가족단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 이전의 로마였다면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연일 관광객으로 미어터지고 교통은 혼잡해 가족 모두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그러나 요즘의 로마는 마치 자전거로 가족 여행하기 최적을 도시처럼 보일 지경이다. 로마의 매일을 살아가던 우리가 포기했던, 차마 꿈꾸지 못했던 일상이다.
며칠 전 지인이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집에서 로마 센터까지 자전거를 타기를 성공했노라 소식을 전했다.
애 데리고 로마 시내에 가면 개고생이다.
우리들의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세계의 도심에 등장한 야생동물들 이야기만 들었지, 세상에 코로나가 휩쓸고 간 로마에는 로마인이 등장했다!!
현재 이탈리아는 자전거 및 전동 킥보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5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 14곳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성인에겐 최대 500유로(한화로 70만 원)까지 지원해주는 정책이 5월 4일부터 시행되었다. 이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적용된다.
이탈리아도 대도시에는 미세먼지 및 대기오염이 심각한 문제인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두 달이 넘는 외출제한을 끝내고 거리로 나서자 이전에 없던 길이 생겨있었다. 로마의 거리 곳곳에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동안 고요해진 로마의 도로에 노란색 자전거 도로와 새것이 심하게 티나는 자전거 신호등도 등장했다.
긴 칩거 끝에 거리로 나선 로마 사람들이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분명 낯선 모습이데 이상하리만큼 이 도시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모두가 한번 쯤 꿈꾸었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로마의 거리를 말이다. 그나저나 지난 두 달간 모든 것이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어디가에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이탈리아 사람들이 관광객 없이 이탈리아를 온전히 누리는 최초의 시대가 아닐까?
그래서일까?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들은 우리를 짓누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흐른다.
로마 시내 곳곳을 아이들과 누비며 단 한번도 부대낌을 느끼지 못했다.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아이들과 함께 진입도 힘겨웠던 카페, 젤라테리아 어디에서도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애들이 뛰어다녔다. 우리는 좋았지만 한산한 중심지를 보면서 마음이 아린 것도 사실이다.
솔직하게 이 정도까지 고요할지는 몰랐다.
격리가 해제되면서 거주지가 밀집된 곳은 꽤 북적이기 때문에 중심지도 어느 수준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로마에서 확진자가 가장 적은 것이 로마 중심지라더니 실감이 났다. 카페에서 계산하며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떡해....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을 줄은 몰랐어. 줄 없이 이렇게 주문을 하는 게 여기에서 가능하기나 했어? 다들 어떻게 사니....”
그녀가 마스크 너머로 미소 지으며 되려 나를 위로했다.
Piano piano (천천히 천천히)
이탈리아의 느림이 지금이야 말로 빛을 발한다. 억지로 무리하게 정상을 되찾아야만 한다고 조바심 내지 않는다.
큰 변화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멈추어야지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
이탈리아는 오랜 시간 변화하지 않았다. 변화를 싫어해서 라기보다 느리고 기다리는 것이 모두가 너무 익숙했다. 변화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두 달 넘게 모든 외출과 이동이 제한되자 이들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는 집에만 전화를 걸어 피자를 주문하던 사람들이 배달앱에 접속했다. 한순간에 피자뿐 아니라 초밥 심지어 젤라토까지 주문이 가능해졌다. 고요한 로마의 거리에 음식을 배달하는 자전거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관공서 및 박물관까지 모두 예약제로 바뀌면서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음식 주문은 물론 일부 사람들만 이용하던 슈퍼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과 주문이 대중화되었다.
격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자 로마는 자전거 출퇴근과 온라인 문화가 당연한 도시가 되어있었다. 물론 해결해야만 하는 수많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심각한 수준으로 힘겨운 경제적 상황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기로 한다. 이 만큼의 일상도 기적임을 안다.
초반 대응의 실패로 너무나 큰 붕괴와 희생을 겪어야만 했지만 그랬기에 더 조심하며 지금을 지켜내려 한다.
우린 6월 3일 거주지 외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해짐과 동시에 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로 달려왔다.( 이 글도 아말피에서 쓰고 있다.) 예년 같으면 발 디딜 곳 없이 복잡할 도시를 마을 사람들만이 채우고 있다.
후진 남부라고 북쪽에선 손가락질 했지만 로마보다 더 철저히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확진자는 북쪽의 1/90 수준이다.) 식당은 물론 해변 입장 전에도 열체크를 하고 있다. 모든 메뉴판이 QR코드로 준비되어 있다. ( 식당 영업이 재개되면서 이탈리아는 종이 메뉴판을 금하고 있다.)
QR코드를 찍으면 메뉴판이 뜨는 단순한 기술에 뭘 그리 놀라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아말피는 배 운행이 재개되지 않았고 굽이치는 해안길을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란 타이틀을 빼면 고립된 깡시골일 뿐이다. 현재 우리를 제외한 관광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만일 하나의 감염 방지를 위해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거다. 그것도 IT 바보 천치 이탈리아에서 말이다. 심지어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이.
애쓰고 있는 거다.
눈물겹게.
비극이 다시없도록.
이는 관광 재개를 위한 의지일 수도 있지만 북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립되고 의료적으로 낙후되어있기에 스스로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함이 더 클 거다.
6월 3일 어제 기준,
나폴리와 아말피가 속해있는 캄파냐 주의 신규 확진자는 1명이었다.
끔찍하게 코로나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곪아 터지듯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방치하고 외면했던 이탈리아의 수많은 문제들이 수면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지금이야 말로 이탈리아는 제대로 변화할 수 있는 극적인 기회를 맞이한거다.
새로운 일상을 대면해야만 하는 6월을 마주하기 두려웠다.
현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처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이 웃으니 우리도 웃는다.
아말피에서 만난 친구는 Andrà tutto bene, Tutto passerà. (모두 다 괜찮아 질거야. 다 지나가.) 라고 말하며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울지 말라는 나의 목소리도 떨렸다.
이 멋진 계절에 전세 낸 듯 누리는 아말피가 행복한데 슬펐다.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아이들에게 한가득 레몬사탕을 안겨주고 넘치도록 요구르트를 담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우리의 방문이 작은 응원이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현재 벌이가 전혀 없으니 단 1유로도 아쉬운 상황이지만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방문을 마치 작은 희망처럼 여겨주는 이들 덕에 되려 우리가 행복해졌다.
비엔비를 운영하는 친구는 어차피 예약이 하나도 없으니 언제든 와서 숙소에서 쉬어가라고 말했다. 이 마을이 북적이는 날이 남편의 일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임을 알기에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우리 가족을 응원하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우린 비록 두 손을 마주 잡을 수는 없지만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다해 마음을 껴안았다.
코로나 후 첫 개장날 들어선 바티칸은 고요했다. 우린 전세기를 타지 않은 덕에 바티칸을 전세 냈다며 웃었다.
관람객에게 휩쓸리고 떠밀리던 복도 한가운데 아이가 앉았다. 아이는 그렇게 한참을 주저앉아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를 겪은 후 아이가 만난 바티칸 박물관은 마음에 드는 조각 앞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도 되는, 가슴을 울리는 그림 앞에서 주저앉아도 되는 곳이다.
신이라 불린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들 중 아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작품은 진짜 신의 예술 작품이었다. 무지개를 흰 종이에 담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의 마음에도 무지개가 떠올랐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에 이탈리아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채워졌다.
우린 힘겹게 만난 이 기적 같은 순간을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제대로 즐겨주겠다고 다짐했다.
written by iandos
*텅빈 바티칸에서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는 이안이를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