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과 그림이 콘텐츠가 되다
아이의 말과 그림이 좋다. 빛이 나는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말은 행여 날아갈까 기록했고 그림은 잃어버릴까 담아두었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액자에 넣어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아이는 학교에서 오후에 숙제를 빨리 끝내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아주 대단한 보물을 보여주듯 눈을 반짝이며 그림을 꺼냈다.
‘이건 테디랑 같이 그린 포켓몬스터야.’ ‘이건 누구랑 그렸고.’ ‘이건 뭘 그린 거고.’ 아이가 그림을 귀한 보물처럼 여기니 나도 소중히 그림을 모았다.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왜 일찍 데리러 왔냐고 막무가내였다. 심취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마무리를 못한 거다. 집에서 그리면 되잖아? 아니야 그림은 학교에서 그리는 거란 말이야!!! 그런가? 학교가 그림 그리는 곳인가?????
아이가 학교가 그림을 그리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유치원부터다. 점심 전까지 유치원 정규수업은 끝이 나고 오후까지 남는 아이들은 정원에서 놀거나 각자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학교에선 준 종이가 전단지였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니 참 이탈리아 답다.)
그렇게 아이는 3살부터 자신의 시간에는 학교에서 그림을 그린 거다. 아마 오후의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영감이 샘솟는 시간이었나 보다.
아이는 여름의 절정에 7살이 되었다. 말은 유창 해지다 못해 능글해졌고 그림은 명확해졌다. 아이가 글씨를 쓰면 마치 거울로 보듯 거꾸로 썼는데 이젠 그런 특이한 글씨는 보기 힘들다. 그림은 스케치도 없었고 색은 화려했는데 이젠 귀찮다며 한 색으로 칠해버릴 때가 많다.
나이마다의 말과 색이 모두 반짝이지만 3살, 4살, 5살의 그림이, 우리가 나눈 대화가 아주 그립도록 반짝거렸던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가 터지고 이탈리아 정부의 명령으로 전 국민이 집에 격리되어야 하던 3월부터 5월까지 기록했던 브런치 북 [이탈리아 봉쇄 일지]로 투고를 시작했다. 수많은 거절과 무응답 끝에 한 출판사와 인연이 닿았다.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메일을 보내고 받은 출판사 대표의 답메일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안을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선 작가님의 <로마에 살면 어떨 것 같아?>를 주문했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물성을 지닌 책으로 느껴보고 싶어서요.
전율을 느꼈다.
글을 물성이 지닌 책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라니....
당시 투고와 별개로 1년 전에 브런치 북으로 만들었던 [모자문답집] 의 개인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한국행이 무산되면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메일을 읽자 가슴이 뜨거워져 마음을 다시 펼쳤다.
아이와 나눈 대화, 아이가 그린 그림을 물성을 가진 책으로 두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미래는 불확실하고 외출마저 제한되고 사랑하는 이를 안을 수 없는 현실에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내가 주도하는 세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선생님, 친구들과의 만남, 야외에서 이루어져야 할 경험 조차 온라인 상에서만 가능한 아이에게 스크린 밖에서 어루만질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는 짜릿함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너의 상상은 모두 현실이 될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책은 온라인으로만 판매가 가능하니 디지털 세계에서 책을 알리는 공부가 필요했다.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이 아닌 나를 모르는 대중에게까지 노출하기 위해선 배워야만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모르고 있었을 뿐, 이 가상의 세상 속에는 이미 엄청난 시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은 시대라는 이야기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콘텐츠가 있다면 이것을 소비하는 콘텐츠로 전환시킬 시장이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자본도 필요 없고 상상을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고민과 공부, 꾸준함이 있다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다.
기존에 앞서 나가던 몇명이 장악하던 이 세상은 코로나로 인해 모두에게 열렸다. 무언가를 소비하고 판매하기 위해선 무조건 온라인 세상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시작은 단순하게 책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면 점점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안과 감동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면 더 다양한 대중에게 닿게 하겠다는 욕심을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츠 자산운용가 존 리는 아이에게 주식을 사주라는데 현재 우린 형편도 안되니 대신 아이에게 “자신의 콘텐츠를 상품화하는 경험과 더불어 경제적 가치를 창조하는 기쁨”을 선물하는 거야 다짐했다.
하루는 아이가 물었다.
_난 언제 휴대폰을 가질 수 있어?
_중학생이 되면 그때 생일 선물로 사줄게.
그런데 네가 그전에 가지고 싶다면 방법이 있어. 엄마가 너랑 나눈 대화랑 그림으로 책이랑 티셔츠를 만든 것 알지? 그걸 만든 건 엄마지만 이안이의 말이고 디자인이니 돈을 벌면 그 10프로를 이안이 돈으로 적립할게. 그걸 어떻게 쓸지는 너의 마음이야. 뭐, 휴대폰을 사기 위해 모을 수도 있지.
_지금 얼마가 있어?
_음... 12유로?
_그럼 요괴 워치 메달 두 개 살 수 있어!!
_그렇네, 바로 메달을 사도 되고 아님 더 모아서 다른 걸 사도 돼. 오래 모아서 휴대폰이나 닌텐도를 살 때 보태도 되고.
_흠.... 우선은 놔둘게.
_그런데 이건 엄마가 만들었으니 엄마다 더 많은 돈을 가지지만 네가 스스로 만들면 더 많은 돈이 생길 수도 있지.
_그런데 난 아이인데 돈을 벌 수 있어?
_당연하지. 아이도 돈을 벌 수 있어.
며칠 뒤, 거리에서.
_엄마, 시선을 끌기 위해서 모두가 노래를 하네. 그럼 나도 노래를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모자 두고 노래를 하면 돈을 줄 것 같은데. 아나아아아아ㅏ 이렇게 노래하면.
_그런데 돈을 받으려면 제대로 불러야지. 사람들이 돈을 낸다는 것은 그것에 만족을 했다는 뜻거든.
(아이들이 춤을 춘다.)
_이안 즐거웠어? 그렇다면 자, 여기 동전. 네가 즐거웠고 좋았다면 돈을 내야지.
_그런데 나 저번에 S생일 때 노래 부를 때 다들 즐거워했는데 왜 나에게 돈을 안 줬지?
_네가 돈을 내야 한다고 말을 안 했잖아. 네가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몰라. 음... 예를 들면.. 앞에 모자를 놓고 grazie(고맙습니다.)라고 적어서 같이 두면 사람들이 이건 돈을 내고 보는 공연이구나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듣고 좋다면 돈을 낼지도 모르지.
_그렇구나.
또 며칠 뒤,
아이는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자 묻는다.
_그런데 왜 계속 옷 입은 거 찍어?
_이렇게 찍어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티셔츠를 살 수도 있거든.
_옷을 팔려면 ‘옷 사주세요’ 해야 하는 거 아냐?
_그것보다 이안이가 입은 게 멋져 보이면 더 사고 싶지 않을까? 이안이도 다른 친구가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보면 가지고 싶어 하잖아.
_그런데 이 사진을 어디서 누구에게 보여줘?
_유튜브에도 올리고 엄마 일하는 인터넷에도 올려서 보여줄 거야. 누가 볼지는 엄마도 몰라.
_흠.... 그렇구나.
책으로 티셔츠로 말과 그림을 현실화시킨 나도 흥분이 되는데 아이는 그 이상으로 신났다. 무엇보다 아이의 친구들이 너무 신기한 거다. ‘너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가 있고, 네 책도 있다고?!‘ 아이는 만나는 사람마다 묻지도 않는데 이야기한다.
그거 알아요?
제가 그린 그림으로 엄마가 책도 만들고 티셔츠도 만들었어요.
그거 팔아요!
살 수 있어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일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짜릿한 법이다.
솔직하게 책과 티셔츠로 만들어내는 수입은 아주 미비하다. 어쩌면 아이 말대로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콘텐츠는 글과 그림이고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잘 만들어서 잘 알리는 공부를 하는 기회로 기쁘게 최선을 다해 즐겨보려 한다.
심지어 가상의 세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모든 감각으로 느끼는 생생한 질감의 세상을 놓치지 않은 채 우린 무한히 상상하고 꿈꾼다.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written by iandos
p.s.
모두의 관심과 사랑의 힘으로 발간 보름이 지난 어제, #모자문답집에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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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며 1인 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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