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Dec 07. 2020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로마를 떠나는 사람들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발생한 격렬한 진동 때문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그때까지 내가 완전히 성취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_엘레나 페란테[나폴리 4부작 제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한길사, 2017




파올로 코녜티의 소설 여덟 개의 산 중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질문을 한다.


저기 강이 보이니?
강물을 흐르고 있는 시간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있는 이곳이 현재라면
미래는 어느 쪽에 있을까?


아들은 미래는 저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답한다. 아버지는 틀렸다고 응수하며 덧붙인다.


다행히도 말이지.

세월이 지나 아들은 물을 거슬러 오르는 송어들을 보며 이 날을 떠올린다. 위에서 내려오는 저 물이 미래라고 아버지에게 답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나를 거쳐 흘러가고 있는 저 물은 이미 과거다.

시련 일지 축복일지 선물일지 역경 일지 전혀 짐작할 수 있는 미래의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를 생각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라는 말이 이토록 섬뜩하게 다가 온 적이 없는 한 해였다.



여름이면 성수기고 겨울이 오면 비수기가 시작되고 봄은 성수기를 준비하고 가을이면 비수기를 기다리는 참으로 예측 가능한 계절을 살던 로마의 삶이었다. 계절과 계절 사이 작고 큰 사건들이 존재했지만 계절의 순리를 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까지 느리게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변함없는 이탈리아의 시간에 익숙해진 삶이었다.

코로나는 견고했던 이 계절을 뒤 흔들어 놓았다. 가만히 서 있기에도 버거울 만큼 뒤틀린 시간은 일상으로 침투해 불안으로 잠식했다.


지난 3월, 참 많은 사람들이 로마를 떠났다. 누군가는 인사를 고했고 누군가는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났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한국에 비해 이탈리아의 코로나 확진자 수치는 너무나 높았고 대응은 저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남은 이들의 이유는 가족이었다. 가족 모두가 비행기에 오르기엔 당장 목돈이 필요했고 설사 오른다 해도 끝을 기약하지 못한 채 다 함께 신세 질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이 로마에 남았다. 그리고 버텼다. 남은 자들도 떠난 자들도 여름까지만 버티면 될 거라 믿었다.


몇 달 뒤면 다시 돌아오겠지,
몇 달 뒤엔 다시 일할 수 있겠지.


그랬기에 떠날  있었고 그랬기에 버텨낼  있었다.  그러나 속절없이 9개월이 흘렀고 정신을 차려보니 2020년은 이미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 또다시 로마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떻게든 버티려 했던 가족들이었다. 누군가는 차를 팔았다. 누군가는 아빠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갔다더라. 여기저기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라도 남으려 했던 이들이 하나 둘 로마에 작별을 고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생명의 위협 때문이었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생계 때문이었다. 그들 중엔 20년을 넘게 이 곳에서 삶을 꾸렸던 가족도 있었다.


떠나는 자 머무는 자 모두 울었다. 타지에서 처음 삶을 시작할 때 상상했던 마지막은 이 모습은 아니었었다.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마무리였다. 서럽고 원망스럽고 갑작스러운 마지막에 모두가 울었다.

지인이 로마에서의 짐을 정리하며 아이의 장난감을 나눠주었다. 딸아이가 그 집에 놀러 갈 때 마다 가지고 싶어 하던 요술봉이었다.

요술봉을 받고 행복해하던 아이가 짐짓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이거  주는 거야? 이제는  좋아? ?”

딸아이는 장난감을 받은 것은 너무나 기쁘지만 이 엄청난 장난감을 선물했다는 것이 당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 이제.... 한국에 ... 그래서...”

목이 메었다.



누군가는 남았고,
누군가는 떠났다.




올해 초만 해도 우리가 이탈리아에 남은 것에 확신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그저 바로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 당장 우리가 해야만 하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저 산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물줄기를 예측하는 것은 어차피 무의미하다.


다만 떠난 자 머문 자 모두가 평온하길.
무너진 삶이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기를.
그때 머물 걸 그때 떠날 걸 이라는 의문이 우리의 계절에 존재하지 않기를.

각자의 삶에 건강한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때 강물에 사는 물고기에게 벌레, 나뭇가지, 나뭇잎 그리고 이외의 모든 것들은 산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고기는 앞으로 흘러내려올 것을 기대하며 위쪽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현재라고 한다면 과거는 나를 지나쳐 흘러간 물이다. 그 물은 아래 방향으로 흘러간다. 반면에 미래는 놀라움과 위험을 품은 채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운명이 어떻든 산에 그 운명은 우리 머리 위, 산에 있다고.

_파올로 코녜티 [여덟 개의 산] 현대문학, 2017


written by iandos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나에게 화를 옮기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