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뭐든 해도 된다는 거야

프롤로그

by 로마 김작가


여름이란 우리가 계획하는 능력을 넘어서는 예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 같아요. 나는 세세하게 다 계획해두지 않고 여름의 황금 같은 지평선이 내게 가져다줄 것을 기다리고 싶어요.

_ 이탈리아의 바닷가 마을 페르모의 체테라 카타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서


이탈리아 고속도로를 달리다 캠핑카를 만날 때면 남편은 어김없이 말했다.


언젠가 가족 다 함께 캠핑카를 타고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하는 게 꿈이야.



캠핑이라면 ‘불편’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의 반응은 매번 시큰둥했다. “캠핑 여행을 하려면 아이들이 그래도 어느 정도 커야겠지.”라는 자기 암시로 미루고 미루다 막상 첫 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장기간의 여행은 여름 방학이 아니면 불가능해졌다. 그런데 어쩌나. 남편의 업은 여름 방학기간 내내 정신없이 바쁜 가이드였다. 진부한 문장이지만 이만한 표현도 없으니 적어본다.


우린 돈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말로만 꿈이라 되뇌며 실현의 의지도 서서히 사라졌다. 시간도 없고 의지도 없으니 잘 될 턱에 있나. 입버릇처럼 말하던 “ 언젠가 가족 다 함께…” 라던 꿈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조차 내뱉어지지 않는 속마음이 되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 남편 자신에게 조차.


그렇게 또 바쁜 여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당연히 또 여름이 올 줄 알았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계절이 여름보다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계절의 이름은 코로나였다. 코로나는 남편의 생업을 중단시켰고 덕분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우리를 부른 지 10년 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진부한 문장 한 번 더 써본다. 이번에도 이만한 표현이 없으니,


염병, 시간이 생기니 돈이 없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2020년 3월부터 이탈리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은 몸부림쳤다. 그런데 살려고 하니 또 살아졌다. 생계형 유튜버가 되었고 넉넉하진 않지만 오늘 하루 살아갈 돈이 벌어졌다. 그리고 팬데믹의 일 년을 버텨내며 진이 다 빠져버린 2021년 3월의 어느 날, 뜬금없이 남편의 꿈이 떠올랐다.


언젠가 가족 다 함께 캠핑카를 타고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하는 게 꿈이야.






그날 저녁 남편에게 말했다.


캠핑카를 타자.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바로 떠나자.


부부는 지난 일 년간 코로나를 겪으며 알아버리고 말았다.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 오늘의 가능한 여행이 내일은 불가능해지는, 하루아침에도 당연했던 세상의 규칙이 뒤집어지는 것이 이젠 일상이야. “언젠가는,” 이란 말은 이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아. 불확실이 디폴트가 되어 버린 세상에 무모하다는 이유로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어. 위험도 안정도 예측할 수 없다면 앞으로 우리의 일상은 매일이 모험이 되겠지. 그 모험의 한 자락에 캠핑카의 풍경이 담긴다면 멋지지 않겠어?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캠핑카 비용은? 여행을 떠나서 쓸 돈은? 돈 개념이 없는 남편도 돈에 전전긍긍하던 아내도 그 순간만큼은 같은 생각을 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돼. 당장 오늘은 없어도 내일의 돈이 어떻게든 생겼잖아. 이것은 코로나가 만들어낸 기적인가?! 돈 앞에 우리 부부가 의견 일치를 보다니!


캠핑카 여행이 너무 고생스러우면 어떡하지? 이 질문에도 우리의 답은 같았다. 고생하면 그것대로 대박 영상이 나오겠지. 잊지 말자. 우린 현재 생계형 유튜버라는 것을. 좋아도 안 좋아도 결국 우리에겐 다 멋진 여행이 될 수밖에 없어.


이건 승률 100%의 모험이야.


며칠 뒤, 덜컥 15박 16일 캠핑카를 예약했다. 불확실의 시대에 이만큼 어울리는 비이성적이고 즉흥적인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예약 완료 버튼을 누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캠핑카 여행 코스


내일은 아들의 마지막 등교날이다.

이 말은 이틀 후면 여름 방학이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캠핑카 이탈리아 남부 횡단 여행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얘들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 줄 아니?

뭐든 해도 된다는 거야.

자, 우리 여행을 떠나자.

이건 승률 100%의 모험이야.


짐은…..어떻게든 되겠지…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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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ndiecampers.com/


-> 4월에 예약을 했고 당시 20% 할인 프로모션이 있었습니다.


*[캠핑카타고 이탈리아 남부 15박 16일]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