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아, 브란카티 올리브 농장
캠핑여행 4일 차엔 숙소를 예약했다. 전 일정을 캠핑카에서 보내기엔 아이들에게 무리가 있을 거라는 판단에 여행 전 미리 숙소를 잡았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매년 여름 머무는 브란카티 올리브 농장이었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단, 세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 3천 살의 올리브 나무다. 그중 이탈리아에 있는 3천 살의 올리브 나무를 지켜나가는 곳이 브란카티 농장이다. 이 농장과의 인연은 남편이 남부 투어를 하면서 맺어졌다. 나의 첫 방문은 둘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다.
불룩한 배를 한번 쓰다듬고 3천 살의 나무를 쓰다듬으면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올리브 나무는 마치 사람 같았다. 갓 태어난 올리브 나뭇가지는 윤기가 흐를 만큼 매끈매끈했고 3천 살의 올리브 나무 기둥은 셀 수 없는 주름으로 갈라져있었다. 나무를 퉁퉁하고 두드리면 속이 비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비어 내야지만 그 유구한 삶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일까. 가지와 가지가 서로에게 엉켜 꼬이면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의 특성 때문에 나무의 한가운데는 아이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떨어져 뿌리를 내리면 그곳에서 다시 올리브 나무가 자라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수많은 가지들의 나이가 서로 달랐다. 하지만 누가 더 오랜 삶을 살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름이 세월을 말해주었다.
가지엔 겨우 보일락 말락 한 크기의 작은 열매들이 열려있었다. 올리브 수확철은 10월이다. 그런데 모든 가지마다 열매가 맺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말해주었다.
"올리브 가지들은 돌아가며 열매가 맺혀. 올해 올리브 열매를 맺은 가지는 이듬해엔 쉬어. 안식년을 가지는 거지. 그렇게 매년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는 거야. 매 순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은 아냐. 2천 년을 넘게 살아낸 올리브 나무들의 지혜인 거야."
올리브 나무 사이의 공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3천 년의 세월이 관통되었다. 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얼굴에 닿았다. 행복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알 수 없는 벅참이 밀려와 울었다.
그 이후 매년 우리의 여름에는 농장의 풍경이 담겼다. 농장의 가장 나이 많은 올리브 나무는 3천 살이지만 대다수의 나무들이 2천 살을 넘겼다. 이곳의 올리브 나무들을 여느 도시에서 보던 나무와 그 모습이 달랐다. 올리브 나무의 크기가 아담하고 좁게 붙어 재배되는 다른 지역의 올리브 나무들과 달리 이곳의 나무들은 웅장하고 풍성했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들은 성인의 키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60 piedi 이 간격을 그렇게 불렀다. 60 발자국이라는 뜻이다.
이 간격은 고대 로마인들의 올리브 경작 방식이다. 이 거리를 유지하면 면적 당 올리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수가 적어져 생산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올리브 나무는 건강하고 풍성하게 자란다. 농장 안에는 키우는 말이 있다. 그 말들이 올리브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그 모래 먼지가 병충해를 막아주는 살균의 역할을 한다. 올리브 경작 시즌이 되면 사람들이 일일이 열매를 따고 일일이 손으로 담아 10분 거리의 방앗간으로 이동했다. 단 하루 만에 올리브 재배와 추출이 이뤄져야만 한다. 올리브 유의 가장 중요한 성분이 담긴 곳은 껍질도 과육도 씨도 아님 껍질과 과육 사이의 경계 부분이다. 그 부분을 얼마나 신성하게 상처가 없이 이동시켜 올리브 유를 추출하느냐가 품질과 말을 좌우한다. 풀리아의 햇살과 붉은 땅 그리고 사람들의 땀과 정성이 만들어낸 올리브 유는 짙고 강하고 매콤한 풀향이 났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맵고 강한 올리브 유는 사람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란카티 농장의 사람들은 7대째 농장과 올리브 유를 지켜나가고 있다. 심지어 고대 로마의 방식 그대로.
현재의 농장 주인인 코라도 아저씨는 언제나 우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세상엔 수많은 삶의 방식이 있듯 올리브를 재배에도 수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세련된 브랜딩, 기계화 자동화된 방식 등. 그중 아저씨가 지켜나가는 방식이 가장 힘겨워 보였다.무엇이 옳고 그르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더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들을 이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방식을 지켜나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뿌리가 궁금했다.
“젊은 시절부터 이 일을 하고 싶었어?”
“난 언제나 좋았어. 올리브 외의 삶을 살던 기간도 있었어. 그런데 그 삶의 방법은 날 지치게 했어. 그래서 농부의 삶을 살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 그래, 맞아. 난 언제나 이 일이 좋았어. 올리브도 동물들도. “
“ 할아버지, 아버지가 고맙고 자랑스러웠을 것 같아. 오랜 세월 곁에서 지켜봐 온 가족만큼 그 마음을 이해하고 이어갈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렵잖아.”
“이제 대중들이 이 가치에 대해 알기 시작했어. 멋진 일이야. 강한 풀 향과 맵고 쓴 말을 이해해. 사람들이 문화 수준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 이 전엔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했어. 그런데 이제 적어도 사람들이 선택을 할 가능성이 생긴 거야.”
“한국에 이런 말이 있어.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 그래서 내가 이 올리브 유를 소개했을 때 사람들은 맵고 쓴 맛에 낯설어했지만 익숙하지 않음과 별개로 건강한 맛이라고 느꼈어.”
“우리 오스투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 l’olio amaro tienilo caro. ‘쓴 맛의 올리브 유는 소중히 간직해라.’ 쓴 맛의 올리브 유는 귀하고 풍미도 좋다는 뜻이야.”
“예전에 아말피의 레몬 농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의 사람들도 대를 이어 전통 방식으로 레몬을 재배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모습이 정말이지 너무나 힘겨워 보였어. 한국도 예전엔 그런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했었지만 다음 세대들은 그렇게 일하길 원치 않아. 너무 힘들잖아. 설사 현대적인 방식으로 ( 더 편하게) 바뀐다 해도 원치 않을 것 같아. 그런데 레몬 농장도 그렇고 너네도 심지어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
“우린 수 백 년 전, 수 천년 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방식을 지켜나가고 있어. 정말 고되지. 매일 노동해야 해. 수 작업으로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앞으로 점점 더 지켜가기 힘들어질 거야. 현대적인 방법이 물론 존재하지. 스페인에선 50센티미터 간격으로 올리브 나무를 심고 기계들이 올리브를 따고 가지를 자르지. 사람의 노동이 불필요해. 기계로 충분하지.
그것을 세련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아름다움은 없잖아.
무엇보다 올리브 맛도 아름답지 않아.
아름다움 이라니. 그는 자신이 느끼기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가 올리브 나무를 가꾸는 아름다움이 그가 삶을 가꾸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방식으로 맺어진 열매의 맛도 당연히 아름답다. 누군가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겠지만 나의 눈에도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코로나를 겪으며 안정되고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버렸다. 어떻게 보면 삶의 주도적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할 수 있겠지만 어떤 방식이 맞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SNS 안에선 탁월하고 세련되고 영민하고 신속하게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적응과 도전이라는 이름 아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둘렸다. 어느 순간 반드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원치 않은 파도에 휩쓸려 엉뚱한 장소로 떠밀려 갈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걸까? 답은 고사하고 질문의 시작도 찾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코라도 아저씨의 말을 듣자 가슴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내 눈에 아름다운 방식으로 맺게 될 열매는 아름다울 것이다. 무엇이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가.
질문의 시작을 찾았다.
헤맸던 이유는 애당초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첫 질문을 찾았으니 그다음 질문도 이어지겠지. 그 질문 끝에 답을 찾게 되면 나도 아저씨와 같은 우아한 미소를 언제나 띨 수 있을까?
written by iandos
*풀리아 주, Ostuni (오스투니)
:올리브 농장 Masseria Brancati
+39 330 822 910
https://goo.gl/maps/53CCcYPj5kXx6Hsc6
[캠핑카타고 이탈리아 15박 16일] e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