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길을 잃어야지만 만날 수 있어

풀리아, 가르가노 국립공원

by 로마 김작가



캠핑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해변이 있다. 풀리아의 한 국립공원에 위치한 해변이다. 가르가노라고 불리는 이 국립공원에는 구글링을 하면 제일 먼저 나오면 시그니처 해변이 있다. 사진 속 아쿠아 마린 색의 바다 한가운데엔 눈이 시리도록 흰 석회 절벽이 뜬금없이 서 있다. 마치 신이 절벽을 뚝 때어 바다에 던져 꽂아 버린 것 같다. 이 해변의 이름은 Baia delle Zagare.


사진출처 | turismovieste.it

Zagare는 이 지역에서 자라는 레몬과 오렌지 꽃을 지칭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곳을 위대한 창조자의 비현실적인 조각으로부터 향기가 나는 곳이라 불렀다.


캠핑카 여행을 떠나기 2주 전 우리 가족은 아말피의 레몬 농장을 방문했다. 그때 농장 주인인 살바토레가 레몬 꽃이 맺힌 가지를 아들의 코 가까이로 당겼다. 그리고 말했다.


이 레몬의 맛과 이 레몬꽃의 향을 기억해.
넌 반드시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올거야.


희고 자그마한 레몬 꽃에선 짙은 아카시아 꿀 내음났다. Zagare 해변에 다다르면 그곳에도 그 향기가 흐를까?


많은 여행지들이 실제보다 사진이 더 멋진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이탈리아 바다만큼은 아니다. 사진이 눈으로 보는 것만큼을 담아내지 못한다. 저 해변에 도착하면 사진 속 보다 더 경이로울 풍경을 직접 온몸으로 마주하게 될 거다. 이른 아침 캠핑장에서 빠져나왔다. 해변으로 닿는 유일한 방법은 국립공원 내의 산을 넘어가는 것이다. 그 산은 참으로 험준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굽이치는 길은 죄다 양방통행이었다. 구불구불 길이 급격하게 꺾일 때마다 남편은 수시로 경적을 울렸다. 혹여나 반대에서 오는 상대방 차에게 우리가 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구글 내비게이션에 기대어 길을 찾았지만 휴대폰 화면에서 가리키고 있는 길은 캠핑카가 진입하기엔 너무 좁거나 심하게 경사졌다. 차를 돌려 캠핑카가 지나갈 수 있는 찾아 헤매기를 반복했다. 마치 숲 속의 정령에게 홀린 듯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얼마나 헤맸을까? 우여곡절 끝에 겨우 숲길을 빠져나왔다.


숲을 빠져나와 한숨을 돌라는 것도 잠시, 까무러칠 것 같은 낭떠러지 절벽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캠핑카의 차체가 높아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아내의 손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위험천만한 도로에 난간도 없다니. 운전에 집중한 남편은 길이 꺾일 때마다 연신 경적을 울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곧 꿈에 그리던 해변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 멀리 절벽 아래 새하얀 석회 절벽이 반짝였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Zagare 해변

앞 선 모든 고생의 이유인 목적지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변으로 진입하는 길 입구에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남자 두 명이 보였다. 두 남자는 길로 들어서려는 우리의 캠핑카를 막아섰다. 코로나 때문인지 원래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입구의 남자들은 차량 진입은 해안 절벽 위 호텔 투숙객에게만 허용된다고 했다. 투숙객이 아나러면 도로 어딘가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고. 그제야 저 낭떠러지 길 어딘가 숲 속에 사람들이 차를 세워두고 마치 탐험을 떠나듯 걸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저 산 위로 돌아가 주차를 하던가, 이 좁은 길 어딘가 차를 세울 곳을 찾아야 한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두 아이를 데리고 해변까지 걸어 내려가야만 한다. 내려가면 반드시 올라와야 할 것이고.


깊이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

이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고생은? 우리가 저 험준한 산을 넘은 이유가 뭔데? 여행 중 가장 기대했던 곳인데. 여기를 또 언제 오겠어….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지금까지의 고생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나 힘겨웠다. 쉽게 마음을 돌리지 못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여기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해변에 내려가는 것은 무리야. 무엇보다 긴 시간 차를 길에 캠핑카를 세워두는 것도 불안하고. 우리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나의 무모함에 언제나 묵묵히 서포트해주는 남편이다. 그가 이렇게 말을 한다면 정말 아닌 거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다시 시동을 걸었다. 동시에 급격히 허기짐이 몰려왔다. 때마침 식당으로 향하는 간판이 보였다. 이 식당을 지나치면 언제 또 식당을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식당 표지판 옆에 캠핑카 주차가 가능한 곳이 있다는 안내판도 작게 붙여있었다.


그렇게 낡은 표지판이 가리키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어느 정도 지나자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주차장과 식당이 보였다. 그런데 캠핑카를 세우고 절벽 위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졌다.


그 바다색은, 그 해변의 자갈은, 순백의 석회 절벽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하기 힘들었다. 이 풍경이 너무나 익숙한 듯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마치 그곳만 팬데믹이 닿지 않은 듯 평화롭게 햇살을 누리고 있었다.


소설 변두리 로켓에서 우주 과학 개발 기구 연구원이었던 주인공은 로켓 발사 실패의 책임을 지고 그만둔 후, 로켓이 전부이던 삶에서 등을 돌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공장을 맡아 경영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생은 예상치 못한 로켓 부품 생산이라는 도전을 만들고 그가 처음 꿈꿨던 모습, 장소는 아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으로 로켓 발사의 꿈을 이룬다.


그에게 친구가 말한다.


“대학으로 돌아오면 다시 연구를 할 수 있어. 꿈은 어쩌려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 하지만 꿈은 연구실이 아니더라도 이룰 수 있어.”

-이케이도 준, 변두리 로켓 중에서


나는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순간에. 그런데 팬데믹 한 가운데의 삶은 원하는 것을 꿈꾸는 것 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의외의 순간, 의외의 장소에서 꿈과 교차하는 인연과 기회가 닿곤 했다. 그 순간은 어김없이 길을 잃고 헤매던 때였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길을 잃고 헤매던 순간이았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끝도 없이 좌절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우리 생엔 목적을 잃고 방향을 헤매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해변의 아름다움이 그러했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아는 것만큼만 이해하려 했던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길을 잃어야 한다고 바다가 반짝였다. 그래야만 더욱 넓게 담고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 속삭였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우리에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쳤다. 그 바람에선 레몬 꽃 향이 묻어났다.


이 향을 기억하는 우리는
반드시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올거야.



written by iandos





**풀리아 주, Gargano 국립공원 (가르가노 국립공원)

식당 정보| Trattoria da Lorenzo

: Contrada Mattinatella, 71030 Mattinata FG

+39 349 062 3395


https://goo.gl/maps/1oZAY2fSPRoC9x4GA


[캠핑카타고 이탈리아 15박 16일] e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