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당신은 뛰어들 수 있나요?

풀리아, 로카 벡키아

by 로마 김작가



바야흐로 2006년, 우리 부부가 아직 가족이 아닌 연인이기만 하던 시절. 그리고 둘 다 현역 가이드이던 시절. 늦은 저녁 투어를 마치고 렌트해둔 차를 타고 이탈리아 남부를 향해 달렸다.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에 스머프 집 모양의 가옥 구조를 가진 마을을 보기 위함이었다. 내비게이션은 물론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던 잡스가 아이폰을 아직 세상에 선보이기 전, 종이 지도에 의지해 길을 찾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풀리아는 대부분 국도로 이어져있어 도로 지도와 국도 지도를 번갈아보며 더듬더듬 길을 찾아 나갔다.


풀리아 주에 진입했을 땐 이미 해가 떠오른 뒤였다. 뱃속이 아릴 정도의 허기짐이 몰려왔다. 눈앞에 보이는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그 도시로 접어들었다.


풀리아 세라믹 가게

그전까지 내가 생각한 이탈리아 남부는 나폴리였고 아말피였다. 원색에 가까운 진하고 화려한 색의 남쪽이었다. 그러나 생애 첫 풀리아는 전혀 다른 남쪽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된 시간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러나 견고한 순백색의 대리석이 깔린 바닥, 흰 석회로 도색된 건물, 빛에 바랜 듯 아련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톤의 세라믹 그릇들. 깨끗하고 아름답고 세련됐다.


2006년 필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

그리고 바다. 협곡 사이로 작은 해변이 보였다. 해변 앞으로 마치 부채를 펼친 듯 아드리아 해가 펼쳐졌다.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지 않은 것은 우리 둘 뿐이었다. 물론 아시아인도 우리 둘 뿐이었다. 누구라도 감탄할 풍경이었지만 감탄하고 있는 것도 우리 둘 뿐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이들이게 이 경이로운 풍경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때 아주 이상한 장면을 표착했다.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 절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억 겹의 시간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해변 동굴인 듯했다. 그 구멍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는 사람은 있는데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이솝 우화의 한 장면처럼.


궁금하면 무조건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우리는 무작정 그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 끝에서 보았던 광경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마치 여름이란 계절을 생애 처음 만난 느낌이었다.


2006년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구멍의 시작은 해변이었지만 그 끝은 망망대해의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구멍 밖으로 깎아지는 해안 절벽이 이어져있었고 그 절벽 위에서 청년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으로 태양에 반짝이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깊지만, 깊이를 알 수 있을 만큼 투명한 바다 위에 둥둥 청년들이 떠있었다.


눈부셨다.


여름은 저렇게 뛰어들어 느껴야 하는구나.

여름은 저렇게 반짝여야 하는구나.


foto by LOMO LC-A


그러나 우린 수영복도 바다에 뛰어들 용기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날의 바다는 더욱 아름답고 강하게 각인되었다.





7년이 흘렀다. 연인은 부부가 되었고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돌이 막 지난 아들과 7년 전 그날처럼 새벽을 달려 풀리아로 향했다. 세상은 변했고 내비게이션은 저금 더 편하게 길을 찾도록 도왔다. (그러나 인터넷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그들은 낯선 표지판으로 무작적 접어들지 않는다. 계획을 하고 그들이 보고 싶은 풍경의 지명의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grotta della poesia (원래 계획했던 바다)

계획한 바다는 바위 해변에 자연적으로 뚫린 구멍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천연 수영장, grotta della poesia이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정확하지 않아 (그 당시엔 구글 맵이 아니라 톰톰이라는 자동차에 탈 부착한 내비게이션이었다.) 근처의 전혀 다른 해변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 해변을 사람들은 천연 대중목욕탕, spiaggia di Pascariello이라고 불렀다. 해변에 도착하니 왜 이곳을 목욕탕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2014년의 남편과 아들

이곳의 구멍은 세 곳이었는데 세 군데 모두 깊이가 달랐다. 가장 깊은 곳은 어른의 키보다 깊었고 중간 깊이는 어린이가 설 수 있을 정도, 마지막 가장 얕은 곳은 무릎 정도였는데 물이 얕아 태양에 의해 적당히 데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자리를 온탕이라고 했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았지만 구멍 안의 바다는 고요했다. 막 돌이 지난 아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최적의 장소였다. 가장 깊은 구멍에서 소년소녀들이 다이빙을 했다.


7년 전 그날처럼 여름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용기가 없었다.

여름에 뛰어들기에는 말이다.

그 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며 남편이 말했던 것 같다.


“언젠가 가족이 함께 캠핑카를 타고 남부 일주를 하고 싶어.”





다시 7년이 흘렀다. 가족은 세명에서 네 명이 되었고,

코로나가 터졌고, 우린 캠핑카에 타고 달리고 있다. 우린 아이들에게 오래전 그 천연 목욕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곳은 동네 주민들만의 공간이었다. 마치 7년 전 해변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이 해변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느낌이 왔다.


바로 오늘이 여름에 뛰어들 날이라고.


발이 닿지 않는다는 것, 안전하게 발을 내딛기까지 얼마만큼의 깊이가 존재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언제나 두려웠다.


두려워서 불안했고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막혔다.

그런데 이번 여름엔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뛰어들고 싶었다.


더 이상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우선 뛰어들면 어떻게든 몸이 뜰 거라는 강한 믿음이 몰려왔다.


뛰었다.



물속으로 몸이 끝도 없이 빨려 들어가다 마치 누가 밀어 올린 것처럼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다시는 가라앉지 않았다.


힘을 빼자 몸 전체가 떠올랐다. 나는 어느새 바다에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귀가 물속에 잠겼다. 이내 고요해졌다. 눈앞에 하늘만 있었다. 14년 전 그날처럼, 여름이라는 계절을 처음 만난 기분이 들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에서 처음 만난 여름을 느꼈다.


바다가 깊을수록 수면 위에 떠있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었다.

그것을 뛰어들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날을 시작으로
나는 매일 더 깊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written by iandos





*풀리아 주, Spiaggia di Pascariello (파스칼리엘로 해변)

Località Roca Vecchia, 73026 Melendugno LE, 이탈리아


https://goo.gl/maps/WZmG2CWisugcRQv47


[캠핑카타고 이탈리아 15박 16일] ep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