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아 -> 칼라브리아
이안이가 7살이 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게임기를 사 달라고 졸랐다. “8살 생일에 사줄게.”라고 답하면 알아듣는 듯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르기를 반복했다.
“이안, 잘 들어봐. 8살 전에 게임기를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정말? 그게 뭔데?”
“네가 돈을 벌어서 사는 거야.”
“내가? 난 어린이인데, 어떻게 돈을 벌어?”
“무슨 소리야? 어른 어린이 상관없어. 돈은 누구나 벌 수 있어. 돈을 버는 방법은 간단해. 누군가 필요한 것을 네가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팔면 되는 거야. 네가 가진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무엇일까? 아니면 네가 가진 무언가를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들거나.”
어린이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안이의 생각을 바꿔준 사건이 캠핑카 여행 이틀 차에 벌어졌다. 바야흐로 풀리아 주의 비에스테 마을에서 저녁 산책을 하던 중. 마을의 좁은 골목길의 계단에 앉아있는 한 소년을 보게 되었다. 소년 앞엔 작은 좌판이 있었고 그 위엔 소라 껍데기 말린 불가사리 등이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엔 가격이 적혀있었다. 아이의 글씨로 보였다. 사실 이 모습은 이탈리아의 바닷가 마을에선 흔히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모든 사람들이 여름을 즐긴다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에겐 휴가철이지만 누군가에겐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은 바닷가 사람들이 일 년 중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하는 계절이다. 자정 넘어까지 상점과 식당들이 불야성이다. 부모가 늦은 밤까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들의 장난감 혹은 해변에서 발견한 보물(?) 들을 판다. 아이들에게도 성수기인 샘이다. 우리가 만난 소년은 6살이라고 했다. 이 소년이 판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이안이가 크게 놀랐다.
아, 어린이도 돈을 벌 수 있구나.
며칠이 지나 우리 캠핑카는 Le castella (레 카스텔라)라는 또 다른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의 캠핑장 앞에 펼쳐진 해변은 소라게 천지였다. 엄지 손가락 길이 정도의 소라게들이 바위 곳곳에 기어 다니고 있었다. 형형색색. 기기묘묘. 무늬도 색도 참 다양했다. 동생과 잔뜩 흥분해서 소라게를 잡던 이안이의 눈이 반짝였다.
소라게를 팔 거야.
판매를 할 상품을 발견한 것이다. 이안이는 소라게 한 마리에 5유로의 가격을 붙였다. 한국 돈으로 6500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 싶었다.
“5유로는 너무 과해. 50센트만( 약 700원) 받아도 돼.”
하지만 아이의 생각은 확고했다. 해변과 캠핑장을 돌며 소라게를 팔기 시작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같은 캠핑장에서 머물고 있는 형제가 관심을 보였다. 이 가족은 이탈리아 북쪽의 작은 도시 베라가모에서 왔다고 했다. 자신들의 캠핑카를 몰고 그 북쪽에서 이탈리아 최남단까지 내려온 이야기를 하며 모카 포트로 커피를 내리는데 캠핑 고수의 아우라가 보였다. 소라게를 가지고 싶은 두 아이가 간절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얼마예요?”
“한 마리 5유로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아이에게 속삭였다.
“5유로는 너무 비싸다고!”
“엄마, 괜.찮.다.고!”
가격을 들은 이탈리아 엄마가 입을 열었다:
“이건 어때? 두 마리를 살게. 두 마리 2유로는 어때?”
“음…. 이건 어때요? 소라게 두 마리 3유로. 대신 이걸 서비스로 드릴게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이도가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1.5리터 물 통이었다. 그 안에는 바닷물에 담겨있었다. 맞다, 소라게를 키우려면 바닷물이 필요하지! 이탈리아 엄마가 소라게 두 마리를 받아 작은 그릇에 담자 이도가 조심스럽게 그 안에 바닷물을 부어주었다. 소라게들이 꼬물꼬물 얼굴을 내밀고 그릇 안을 탐색했다.
이안이가 동전이 놓인 자신을 손바닥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첫 판매 성공이었다. 자율 시장 경제의 현장을 보았다. 아이 스스로 상품을 선택해 가격을 정하고 구매자와 가격을 협상하고 판매까지 연결시켰다. 곧장 두 번째 판매로 이어졌다.
살레르노라는 나폴리 아래에 위치한 항구 도시에서 온 남매였다. 소라게를 구입한 남매와 이안이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남매 중 이안이 와 동갑인 여자아이와 이안이가 사라졌다.
두 아이를 찾은 것은 소라게를 잡았던 캠핑장 앞 해변이었다. 그곳에서 이안이는 더욱 적극적으로 소라게를 팔고 있었다. 한 커플이 소라게에 관심을 보였다. 남자가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인지 커플 중 여자가 소라게를 파는 이안이를 귀여워 죽겠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안이 곁에 방금 소라게를 산 남매 중 동생이 서 있었다. 함께 소라게 판매를 하고 있었다. 내친김에 동업까지 연결한 건가.
이안이가 커플에게 판매를 성공하자 주변에서 탄성이 들렸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 해변 어디에나 소라게가 천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무도 소라게를 사지 않은 것이다. 소라게를 팔다니 그들에게 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이없는 만큼 저 이방인 소년이 소라게를 정말 팔 수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하여 마을 주민들이 흥미진진하게 이 판매의 현장을 관람하고 있던 터였다. 이안이의 판매 성공 여부에 초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안이가 판매를 성공시키고 돈을 받자 한 아저씨가 환호하며 외쳤다.
“Ecco! (이것 봐!) 진짜 팔았어! 하하하하.”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당신 아들이에요? 진짜 멋져요! 쟤는 아마존보다 크게 될 거예요! 소라게를 정말로 팔다니!”
이안이는 그 이후도 판매를 계속했고 총 8유로의 수익을 냈다: 그 돈으로 다음날 마을 시장에서 동생과 자신의 물총을 샀다. 이후 아이는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자신의 성공담이자 무용담을 펼쳐 보였다. 한 도시에선 노 부부와 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남편분이 말했다.
“나도 얘 나이부터 무언가를 팔기 시작했어. 이건 정말 중요하고 멋진 일이야. 이안, 넌 이 것을 계속해 나가야 해. 알겠지? 명심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의 잡지에 글을 기고할 기회가 생겼다. 마침 잡지의 기획 주제가 소비였다. 아이에게 제안했다.
“네가 이번에 소라게를 팔았던 이야기를 기사로 써 보면 어때? 엄마 이야기 기억나? 돈을 벌려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팔면 된다. 그런데 그것이 꼭 눈에 보이는 상품일 이유는 없어. 이야기도 가능하지. 엄마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처럼. 하지만 돈을 받고 글을 쓴다면 대충 해선 안돼. 그것을 사서 읽는 사람들의 돈이 아깝지 않게 정성을 다해 써야 해. 어때? 해보고 싶어? “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지하게 기사를 썼다. 아이는 소라게를 팔아 8유로를 벌고 소라게를 판 이야기를 팔아 10만 원을 벌었다. 잡지사에선 총 세번의 기사를 의뢰했다.
이안이에게 꿈을 물으면 그 답은 한결같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웃긴 이야기로 책을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이미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작은 해변 마을의 소라게로부터 이야기가 돈이 되는 법을 깨우쳤다. 기사를 쓰며 이안이와 소라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가 말했다.
그런데 엄마,
난 소라게를 팔아서 돈을 번 게 아니야.
난 친구를 벌었어.
아이가 부자가 되는 법을 배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부자였다. 배워야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written by iandos
*칼라브리아 주, le castella (레 카스텔라)
캠핑장 : Camping Costa Splendente sul mare
*1박 21유로 *샤워장 화장실 개수대 모두 깨끗 / 따뜻한 물 아주 잘 나옴
*해변에서 3분(위치 아주 만족) *마을 5분 *메인해변 10분
[캠핑카타고 이탈리아 15박 16일] e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