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우연이 아니라, 미래의 인연이었다.

칼라브리아, 아르코마뇨

by 로마 김작가

풀리아 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칼라브리아 주로 넘어가기 전 날, 낯선 이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리처럼 캠핑카로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커플이었다. 캠핑카 여행을 하는 동안 블로그를 통해 우리의 일정을 기록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가족들이 잠들고 우리가 만난 해변 식당 캠핑장 등의 짧은 정보들을 복기하는 시간은 하루하루의 여행을 오래 기억하고픈 나만의 의식이었다. 그들이 연락이 왔던 그날은 마침 그들과 우리가 머무는 지역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칼라브리아의 작은 마을의 지명은 생소했고 애초의 우리 일정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우리의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경로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답을 보냈다. 우리가 그곳으로 가겠다고.


우연으로 출발된 인연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의 길 가운데였다. 현정과 빈센트, 이 커플은 7개월째 캠핑카 여행 중이었다. 영국에서 밴을 구입해 직접 개조를 했다. 남자 친구인 빈센트는 미국인, 나에게 연락을 주었던 현정 씨는 한국인, 둘은 팬데믹 속에서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다 런던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오랜 기간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 적어도 비용이 지출되는 캠핑장보다 길에서 머물렀다. 우린 한적한 길 한쪽에 테이블을 펼쳤다. 몇 개월째 한식을 먹지 못한 그들을 위해 오뚜기 잡채밥에 깻잎 통조림을 대접했다. 그들은 그 마을의 특산물인 튀긴 이탈리아 고추를 준비했다.


곧 천 명을 눈 앞에 두고 있어요! 많은 구독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영상의 완성도가 어마어마 합니다!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셀프 제작 난 절대 못한다. 캠핑카는 빌려 타는 걸로…


불과 몇 분 전까지 전혀 모르던 사이의 우리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이방인으로 그리고 유튜브를 시작한 동지로 한 순간에 이어졌다. 그렇게 잠깐의 점심을 함께하고 이내 헤어졌다. 각자의 여정이 있었기에. 식사에 대한 답례로 빈센트는 우리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는 전문 사진작가다. 그들 역시 여행을 하며 유튜브로 기록을 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일정을 실시간 공유했다. 그리고 여행지에 머무는 또 다른 여행객의 사진 촬영 의뢰와 제품 협찬을 받아 수익을 만들어냈다. 진정한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눈앞에서 마주한 것이다. 앞으로도 그들은 계속 밴 라이프와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이어갈 거라고 했다.


아마도 우리가 팬데믹의 삶을 겪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을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가지고 그저 낭만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 발을 고정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나아가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가야만 하는 삶이 얼마나 큰 용기와 불안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를. 그들의 품에 한 가득 한식 재료를 안겨주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우린 여행 중의 우연으로 스쳐 지나게 될 줄 알았다.


며칠 후, 우린 칼라브리아 주의 arcomagno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들과 조우했다. 이미 그곳의 일정을 마무리했어야 했을 그들이 그 장소에 반한 나머지 일정을 연장했던 것이다. 이번엔 해변가 한쪽에 테이블을 펼쳤다. 해 질 녘의 낯선 바닷가, 며칠을 머물며 이미 익숙해진 그들이 우릴 대접했다. 귀하디 귀한 냉면을 파도에 마주치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자갈 소리를 들으며 먹었다.


다음 날 그들의 안내를 받아 이 마을을 방문한 목적인 arcomagno해변으로 향했다. 작은 산을 넘어 숨겨진 해변을 지나 거대한 돌들을 넘고 목까지 차오르는 바다를 건너고 또 작은 산을 하나 넘자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변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아치 아래 숨겨진 해변이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마주한 가장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햇살이 아치 아래로 스며들자 바다가 마치 황금처럼 빛났다. 이곳을 맨 정신으로 마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탈리아는 미쳤어!


우린 내친김에 보트를 빌렸다. 이번엔 해변이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서 아치를 보기 위해서였다. 작은 보트를 타고 마을 근처의 작은 섬으로도 향했다. 디노 섬이라니 정말 오래전 공룡이 잠들 형상 같았다. 섬으로 향하는 우리의 작은 보트 아래에 거대한 해파리가 스쳐 지났다. 이거야 말로 정말 환상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


작은 바다 동굴로 들어섰다. 우린 바다로 뛰어들었다. 우리 발아래의 깊이는 가늠할 수도 없었다. 고개를 물 안으로 넣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끝에서 끝도 없이 물고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주변으로 수 십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헤엄쳤다. 이안과 이도도 끊임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copyright © Vincent Printy
copyright © Vincent Printy


육지로 돌아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하와이에서 자란 빈센트는 바다를 사랑했다. 그는 해변과 바다의 경계에 누웠다. 그의 몸 위로 파도가 완전히 감쌌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안이가 그의 곁에 누웠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안이를 조금씩 조금씩 바다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인했다. 그리고 어느새 이안는 얼굴만 겨우 보일만큼 바다 안으로 들어섰다. 큰 파도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빈첸조가 이안이가 뭐라고 속삭이자 이안이는 큰 숨을 들이마시고 파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파도를 마주했다. 더 큰 파도가 밀려오자 아이의 얼굴에 흥분과 설렘이 가득한 미소가 퍼졌다.


물을 바다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바다에서 뛰어내리고 파도에 뛰어든다.


두렵지만 즐겁다는 것을 알아버린 소년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우린 두 번째 만남을 뒤로하고 또 각자의 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의 여행은 계속되고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던 어느 날, 그들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사진 작업을 그들에게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원하는 사진의 콘셉트가 있었는데 그들의 작업이 딱 그 느낌에 부합했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생각했다. 신기하네, 우연한 만남이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니.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구나.
미래의 인연이었구나.

그래,

우리의 캠핑카 여행은
미래로 떠나는 여정이었구나.


미래가 두렵지만 즐거울 거라는 신호였구나.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이미 과거된 캠핑카 여행 중에 우리가 미리 만났던 미래를 떠올려보았다.


copyright © Vincent Printy



written by iandos






*해변 정보

Spiaggia dell'Arcomagno (아르코마뇨)

SP1, 87020 San Nicola Arcella CS, 이탈리아


<구글 좌표>

https://goo.gl/maps/ZkyzKRaqmZduPLLd7


[캠핑카타고 이탈리아 15박 16일] EP8.

밴 커플과의 만남의 순간 feat. 후식은 이디야 커피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