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기묘한 해변

풀리아, 카피톨로

by 로마 김작가

2020년 여름에도 우린 풀리아에 머물렀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고 지역 봉쇄가 오랜 시간 지속되다 상황이 진정되면서 갓 지역 이동이 가능해졌던 7월이었다. 그날은 풀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가족이 함께 마을 산책을 하고 젤라토 가게에 들렸다. 남편과 내일 바로 로마로 올라갈지 아니면 해변 한 곳을 더 들릴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풀리아에서 로마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7시간이 넘게 걸리니 오전에 해변에 들려 아이들이 실컷 놀게 하고 이동시간엔 재우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어디 해변을 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젤라토 가게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저기요, 혹시 여기 가까이 아이들과 함께 가면 좋은 해변을 추천해 줄 수 있을까요?”

“'카피톨로' 로 가세요. 아이들과 함께하기엔 완벽한 곳이에요.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카피톨로? 전혀 들어본 적 없는 해변. 다음 날 아침, 우린 그 청년의 말 한마디에 해변을 찾아 나섰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밭을 지나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래사장 없고 날카롭고 거친 펴면의 바위 절벽만이 눈이 보였다. 아이들이 놀기엔 위험해 보이는데 왜 이런 곳을 추천했을까? 바로 그 순간, 우리 눈앞에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해변이 펼쳐졌다.



아.. 이곳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그곳은 수천 년 전,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채석장이었다. 건축의 재료로 사용하게 위해 해변 절벽의 돌을 깎아 고대 로마인들은 로마 각지로 이 돌들을 옮겨갔을 거다. 규격에 맞춰 돌들이 잘려나가고 남겨진 절벽은 마치 고대 잉카제국의 버려진 신전 같기도, 사막에서 잊힌 피라미드의 잔재처럼 보이기도 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쓸모가 없어진 채석장에 파도가 치고 해풍이 불어 부서지고 마모되었다. 해변의 기묘한 풍경보다 환상적이었던 것은 사람들이었다. 원색의 파라솔은 마치 자신의 영역에 꽂은 깃발 같았다. 채석장의 벽들은 해변의 공간을 나눠 놓았고 그 공간들 마다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홀로 태닝 중인 이탈리아 멋쟁이, 단잠에 빠진 할아버지, 벽 안에 고인 바닷물에서 노는 아이, 통화에 빠진 아저씨 수대 삼매경의 청춘들. 코로나 시대의 완벽한 비대면 해변이었다. 고대 로마인과 파도와 시간의 합작품은 환상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현시켰다. 채석장 벽과 벽 사이의 틈으로 파도가 굽이쳐 들어왔다. 그 앞에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까르르 웃으며 파도와 놀았다. 다른 쪽에선 벽 아래 구멍이 뚫려 파도가 치면 마치 온천수가 쏟아 오르듯 용솟음쳤다. 자연 워터 파크였다.



이번에 캠핑카 여행을 계획하며 필수적으로 넣은 코스가 여기였다. 올리브 농장에서 차로 이동하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해변 건너에 바로 캠핑장이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땐 캠핑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 역시 사람은 관심이 생겨야지만 보이는 구나. 다음에 다시 캠핑카 여행으로 풀리아에 올 날을 기약하며 저 캠핑장 찜. 이안이와 이도도 이 해변과 사랑에 빠졌다. 당시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고대 채석장은 완벽한 안전망이 되었다. 그 안에의 바다는 고요했고 잔잔했고 평온했다. 의문이 생겼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유니크한 해변이 어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아니, 왜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여행객은 우리뿐인 것 같았다.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익숙해 보였다. 대부분 이 지역 사람들인 것 같았다. 비단 이곳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장소들이 꼭꼭 숨겨져 그 지역 사람들만 알고 지내고 있었다.


왜 더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을까?
더 유명해지면 좋지 않을까?


그때 내 눈에 임산부 한 명이 들어왔다. 편안하게 누워 하늘을 향해 불룩한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집에서 싸온 파스타를 손주들의 입에 넣어주고 있는 할머니도 보였다. 어느 누구 이곳이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어 보였다. 이들에게 특별한 곳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지금 그대로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이어주는 것일까? 내가 어릴 적 누렸던 모습 그대로 추억을 만들어가도록 지켜주는 것일까? 나만 알고 싶은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모습 그대로 소중한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일까?


때로는 그대로 두는 것이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곳으로 안내해준 젤라토 가게 청년에게 이 고마운 마음을 어찌 전할까 싶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 해변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우리 가족이 만나게 될 이 해변이 언제나 이 모습을 유지해주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곳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저 높은 파도와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뿐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written by iandos





*풀리아 주, Calette del Capitolo (카피톨로 해변)

Google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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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타고 이탈리아 15박 16일] e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