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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Sep 13. 2022

직접 운전해서 로마 해변가기

2022년 여름, 버킷 리스트

대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면허를 땄다. 대학 재학 중에 두 번을 휴학을 했다. 궁금한 것이 많았고 온 세상을 다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 여행에는 돈이 필요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여행경비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부족한 경비 충당을 위해 휴학을 하고 돈을 벌고 떠나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를 대학시절 내내 반복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세상 중에서 가장 냉정하다는 사회로 나서려니 이력서 한 줄을 채울 자격증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줄줄이 이어지는 여행이 경력이 되려나? 2006년은 적어도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뭐라도 쓸 것이 필요해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 했다. 도로연수를 하며 나는 어쩌면 운전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이력서 한 줄을 겨우 채웠다. 그러나 이력은 써먹기도 전에 장롱으로 들어가 고이 잠들었다. 14년 동안.


바로 눈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를 잃었다. 나와 엄마의 거리는 불과 2미터 정도였다. 이후 운전은 나의 가장 압도적인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차마 극복할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다시 운전대를 잡을 마음을 먹은 것은 코로나가 세상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두 아이가 자라나며 삶의 반경은 매해 확장되어 대중교통 노선이 다양하지 않은 로마에서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고 버티기에 한계점이 왔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도 제한이 되자 운전은 더 이상 선택을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를 잃고 수년이 지나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공포와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로마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운전의 반경을 넓히는 일은 지지부진했다.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만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을 했다. 당연히 운전 실력은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다른 내가 되고 싶었다. 달라지고 싶었다.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 스스로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해내면 나 스스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 증명해내고 싶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뭐지? 그래, 바다로 가자. 직접 운전해서 바다에 도착할 수 있다면 나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어.


바다는 집에서 운전해서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선 순환도로에 올라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바다 끝 수평선 너머로 항해를 떠나는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9월 5일, 눈을 떴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아직 여름을 머금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여름은 흘러가버릴 터였다. 그래, 오늘이야. 여름방학의 마지막 주를 보내느라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깨워 곧장 차에 태웠다. 우리 바다에 가자. 시동을 켜고 네비를 찍고 액셀을 밟는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뒷좌석에서 둘째의 기도가 들렸다. 엄마가 저리도 못 미더울까 핀잔을 주는 대신 둘째를 따라 읊조린다.


아멘.


남편이 운전하는 동안 보조석에 앉아 수없이 오갔던 길이 마치 처음 나는 길처럼 생소하다. 보는 것과 하는  사이에는 낯선 길이 놓여있었다. 긴장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가 마음보다 앞선다.



오전에 도착한 바다는 맑고 빛나고 예뻤다. 여름방학의 막바지라 해변은 한적했고 조금 전 긴장이 무색하게 마음은 평온했다. 다음 주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은 새 학년이 시작된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새 마음을 시작하기에 참 적절한 풍경과 날이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여름방학을 비로소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실에 순환도로로 나가는 길을 지나쳤다. 그다음에도, 두 번을 놓치고 세 번째에야 겨우 제 길로 들어섰다. 때론 지도가 있어도 헤매고 뻔히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제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어제 운전 중에 무얼 잘못했나? 알고 보니 자동차의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 교환이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달려가 외쳤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어제 해변에서 그랬다면 정말 당황했을 텐데, 이렇게 안전하게 집에 돌아와 심지어 아빠고 쉬는 날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야. 너무 행운이지 않아?!”


아주 작은 성취였지만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이 밀려왔다. 역경이 있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히 문제가 생기겠지만 무너지지 않을 정도에서 비켜날 것이다.


지난날, 해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다에서 열심히 놀았던 둘째는 이내 골아떨어졌다. 잠들지 않은 첫째는 등 뒤에서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엄마 잘하고 있어.
엄마 운전 정말 잘해.
엄마 잘하고 있어.


그 말이 어깨를 감싸자 긴장했던 손이 느슨해지며 한결 편안하게 운전대를 돌릴 수 있었다. 그제야 차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라디오를 켰다.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와 흥얼거렸다. 마음이 잔잔해지자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잘하고 있어.
엄마 정말 잘해.


여름이 저문다.

새 마음이 떠 오른다.


+


https://youtu.be/pfk9Aa9F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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