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물속으로 얼굴을 넣어주는 아이들
2021년 여름, 코로나로 멈추었던 이안이의 수영 수업이 다시 재개되었다. 유난히 물을 좋아하는 이도도 함께 등록을 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코로나의 여파로 재정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두 아이를 동시에 수업 등록을 하기엔 부담이었다. 오빠가 하는 건 뭐든지 하고 싶은 4살, 심지어 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수영은 5살이 되어야지만 배울 수 있다고 어르고 달랬다. 그리고 지난 12월, 드디어 5살이 된 이도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영 수업으로 향했다 설렘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수영장에 들어섰던 아이가 수영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땐 푹 숙인 고개가 심상치 않았다. 나를 보자 이내 눈물이 흘렀다. 이유를 물어도 풀이 죽은 채 묵묵부답이던 아이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엄마… 난 이제 안 갈래… 수영…
나는...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어…
나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
낯선 수영장, (이도보다 반년을 앞서 시작한 ) 낯선 아이들, 낯선 선생님, 코로 입으로 들어오는 물,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기는 깊이의 물, 가라앉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경직되어 자꾸만 물속으로 들어가는 몸, 요령 없이 발버둥 치는 다리, 어쩌면 아이에겐 생사가 오가는 긴장의 순간이었을까? 아이가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은 수영 선생님인데 그마저 물속에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자꾸만 들어가는 물 때문에 말도 잘 나오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말을 해도 알아듣지도 알아듣게 말을 할 수도 없는 아이에게 수영 수업은 막막한 공포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야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지만, 그 당시엔 아이가 때를 써서 큰맘 먹고 등록을 했는데 하루 만에 가지 않겠다고 하니 속상한 마음이 앞서 '네가 배우고 싶다고 했잖아. 이미 돈도 다 냈단 말이야. 무조건 가야 해!'라고 매정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첫째, 이 안이가 수영을 처음 시작하던 때도 쉽지 않았다. 이안은 이탈리아 말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없었다. 단,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이가 기기 시작할 무렵 한국에 간 적이 있는데 아이를 방에 두면 방문이 활짝 열려있어도 그 방에서 밖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다. 문지방을 넘는 것이 무서워 방 안만 맴돌던 아이였다. 다친다, 무섭다는 말이면 만사 오케이로 말을 듣는 아이. 대신 귀에 피가 나도록 말을 하는 아이. 마치 말을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 말하고 또 말했다. 윽박지르다 결국엔 애원을 해야 한 30초 정도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 말만큼 겁이 겁나 많은 아이. 문지방도 못 넘는 아이를 수영장 물에 넣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이 가는가? 아이는 수업 내내 울다 울다 끝내 졸도했다.
둘째, 이도는 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문지방 따위 우습지도 않았다. 2살 즈음 이미 아기 침대 펜스를 넘어 탈출했고 세상부터 한 다리를 올려 귀에 붙이고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리 달렸다. 호수 한가운데서 우선 뛰고 보던 아이가 말은 참 늦었다. 세 살이 넘어가도 엄마, 아빠 이외의 단어는 내뱉지 않았다. 이도의 비교대상은 당연히 이안이었고, 엄마 눈엔 한쪽 다리를 들고 킥보드를 타는 아이보다 말을 잘하는 아이가 더 영특해 보여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애간장이 탔다. 언어치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점에 코로나가 세상을 집어삼켰고 락다운 반복되면서 아이는 4살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말문이 터졌다.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느는 아이.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말에 노출될 일이 적다 보니 2년의 이탈리아 말 공백이 생겼다. 한국말이 폭발하던 시점에 균형 있게 이탈리아 말도 같이 노출되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으로 여러 가지로 원망스러운 코로나였다.
이도는 5살이 되었지만 눈치코치로 이탈리아 말을 알아들어도 마음처럼 의사전달이 되지 않으니 익숙한 학교를 제외하고 홀로 온전히 이탈리아 말만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자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이탈리아 말을 유창하게 하고 어느 상황에서도 잘 적응해야만 하는 것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수년을 살고 있는 나조차 이탈리아 말이 유창하지 않고 여전히 이탈리아 말만 해야만 하는 낯선 장소에서 마냥 편하지 않는데 말이다. 4살에 말을 하기 시작해서 겨우 1년이 지난 아이에게 언어적으로 예열될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그 당시엔 수영 수업을 마치고 풀이 죽은 아이에게 매정한 말을 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야. 결국은 아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해.
몇 번의 수업을 참여한 뒤, 이도는 수영 수업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 그러나 스스로 극복할 문제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아이의 극복은 시간이 해결해준 것도 온전히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엄마가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받아들인 아이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들어간 어느 수업 날이었다. 물을 무서워않는 이도지만 유독 수영 수업에선 물속으로 얼굴을 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치 눈으로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그때였다. 함께 수업을 받던 아이 중 하나가 이도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보란 듯이 잠수를 했다. 이도와 실력 차이가 거의 없는 그 아이는 수면 위로 얼굴을 들자 코에 잔뜩 물이 들어갔는지 우스꽝스럽게 괴로워했다. 이도가 웃었다. 곧장 다른 아이도 이도와 눈을 마주치고 잠수를 했다. 선생님의 미소도 한몫했다. 시종일관 이도와 키를 맞추어 눈을 마주치고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도가 잠수를 했다. 내친김에 잠수한 채로 물장구를 치며 선생님이 기다리는 곳까지 나아갔다. 수면으로 올라온 아이는 정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를 찾아 불안한 눈으로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수업을 끝나고 나올 때의 아이의 표정을 이미 본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대견할 때 나오는 눈부신 웃음을 짓는 모습을.
이도는 이날 수업 수업을 마치고 혼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며칠 후엔 나를 보더니 수영중에 하트를 만들어 날리는 여유도 생겼다. 몇 주후엔 자신보다 반년을 미리 시작한 친구들의 실력을 훌쩍 뛰어넘어 반에서 가장 다이빙을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의 적응은 스스로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스스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강하게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적응한 이가 함께 물에 들어가 주고 좀 더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자 더욱 쉽게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혼자 부딪히고 깨달아 스스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배워서 성장할 수도 있고 나의 문제를 미리 겪은 또는 내 문제의 분야의 해결에 전문가인 이를 옆자리에 두고 성장할 수도 있었다. 성장에는 하나의 모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고, 여름이 오고 9월이 되었다. 이도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9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만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만 6세가 넘지 않아도 12월 생까지는 의무적으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이도는 5살 반에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입학과 함께 언어치료를 받기로 했다. 이탈리아 말을 할 때 몇 가지 발음에서의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말의 경우 음절 하나하나 또박또박 같은 크기로 발음이 되는 반면 이탈리아 말은 악센트와 함께 음절 하나하나 데시벨이 다른다. 예를 들면 스텔라(stella)라는 별이라는 뜻의 단어를 보면, 우린 스. 텔. 라.라고 읽지만 이탈리아 발음으로는 '스'는 상대적으로 작게 '텔라' 에는 좀 더 힘이 주어진다. 디멘티카토(dimenticato) 라는 잊다는 동사의 경우에도 우린 디. 멘. 티. 카. 토라고 읽지만 이탈리아 발음으로는 디'멘티카도' 가 된다. 여기서 이도의 오류가 발생했다. 이도는 스텔라는 ‘텔라’ 디멘티카토 는 ‘멘티카토’라고 발음을 했다. 스 와 디를 붙여 발음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면 그 발음을 자체 생략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성장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교정이 되는 것인지 치료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전문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과 만나서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아주 사소한 팁을 주자 이내 이도의 발음이 달라졌다. 아무리 '텔라'를 '스텔라'라고 발음하라고 이야기해도 고쳐지지 않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해봐라고 하자 순식간에 드라마틱하게 교정되었다. 나는 물에 뜨려면 '다리를 움직여야지!'라고 말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물에서 뜨려면 몸에 힘을 빼고 다리를 펴고 이렇게 움직여보면 어때?라고 정확한 지시를 해준 샘이었다. 검사를 진행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아이의 이탈리아 말에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도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많은 아이들도 겪는 오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였기에 감사하게도 이탈리아는 'logopedia'라고 하는 언어 치료가 발달해 있었기에 의사 선생님을 추천받고 정보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교정이 진행되는 5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는 진지하게 집중했고 스스로 변화되는 기분에 몇 번이나 눈이 반짝였다. 즉시 느껴지는 성장의 기쁨이라니 굉장하지 않은가! 2주에 한번 치료를 해도 괜찮지만 습득이 빠르니 올해는 1주에 한번 치료를 해보는 걸로 결정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안에게 물었다.
“이도가 이탈리아 말을 잘하게 될까? 학교에서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엄마, 못하는 게 당연하지. 못하니까 학교를 다니는 거야. 배우려고 학교에 다니는 거라고. 다 알면 학교를 왜 다녀? 그리고 다 알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선생님이 ‘1이라는 숫자와 또 1이라는 숫자가 만나면 2가 됩니다.”라고 가르쳐 주려는데 먼저 ‘2가 돼요!’라고 먼저 말해버린다고. 그렇게 다 알면 초등학교에 있으면 안 되지. 고등학교 가야지. 그런데 고등학교 것도 다 알잖아? 그럼 대학교 가야지. 그런데 대학교 것도 다 알지? 그러면……. 그러면…. 세상에 나가서 무언가를 해야지. 안 그래?"
그렇네, 우린 그래서 배우는 거네. 모르니까. 잘하는 것을 뽐내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지. 수영 수업에서 눈을 감고 경직되어 있던 이도가 물속에서 자유로워지던 순간을 떠올린다. 요령 없이 버둥거리던 발길질이 점점 물살을 가르고 수려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언어치료를 받으며 내 맘 같지 않던 혀를 이리저리 굴리며 작은 입으로 정확한 발음의 주파수를 찾으려 애쓰던 이도를 떠올린다. 정확한 발음으로 단어를 내뱉고 선생님과 하이파이브를 하던 아이의 환한 웃음을 바라본다.
며칠 전, 이안은 친구 루카와 함께 집 앞 스케이트 보드를 연습하는 공터에 거대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름 아래에 깨알처럼 무언가를 더 써넣었다.
Luca più di Picasso
Ian più di Van Gogh
피카소보다 더 뛰어난 루카와
반 고흐보다 더 뛰어난 이안
저는 피카소보다 반 고흐 더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서 배워야 해요.
'나는 아주 뛰어난 사람입니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어린이들의 멋짐에 감동한다. 어린이들은 드넓은 공터를 자신들의 그림으로 가득 채울 거라고 했다. 함께 물속으로 얼굴을 넣어주던 아이들과 시종일관 눈을 마주치던 선생님과 그 응원에 힘입어 짧은 순간에 일취월장하던 이도의 수영을 마음에 새긴다.
이도의 언어도 언젠가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것이다. 아이들은 하나 둘 그림을 채워가며 수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날 것이다. 그 아름다운 시간을 응원하며 덕분에 엄마는 다시 기록을 시작한다.
written by iandos
https://youtu.be/7BVQTbTLw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