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이름으로부터의 휴가
박혜윤 작가의 책 [오히려 최첨단 가족]의 한 부분이다.
"너는 나랑 왜 결혼했어?"
"결혼은 애 낳으려고 했지. 왜 당신이랑 한 거냐면...... 키가 크고 뚱뚱해서."
"참나, 그게 말이 돼? 키 크고 뚱뚱하기만 하면 다른 건 개차반이라도 상관없다는 거야?"
"키 크고 뚱뚱한 사람이 많을 것 같지? 찾아보면 정말 드물어. 살만 많아서 뚱뚱하면 안 되고 어깨가 넓은데 살까지 두둑이 붙어야 한다고. 진짜 특별한 거야."
"아, 기분 나빠."
"기분이 왜 나빠? 당신이 착하고 훌륭해서, 나한테 잘해줘서, 돈 잘 벌어서 결혼했다면 기분이 좋겠어? 그러면 얼마나 피곤해? 계속 착하고, 잘해주고, 돈도 잘 벌어야 하잖아. 잘생겨서 결혼했다면 늙으면 끝인 게 확실하지만, 당신은 계속 키 크고 높은 확률로 뚱뚱할 예정이잖아."
_박혜윤, 오히려 최첨단 가족 59p
생각했다. 난 남편의 어디에 반한 걸까? 로마에서 가이드 선배들을 처음으로 대면하던 날 남부 투어를 마치고 제일 늦게 남편이 도착했다. 그를 본 그 순간 마치 중세 그림처럼 그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추고 주변이 모두 사라졌다. 한마디로 첫눈에 반했다. 내가 고백했고 (고맙게도) 그는 받아주었고 (에헤이, 후회해도 어쩌겠어~) 우리는 로마의 연인에서 로마의 부부에서 로마의 가족이 되었다. 무더운 로마의 여름이었고 남편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반했던 것은 그의 발목이었던 것 같다.
나의 휴대폰 사진첩에 유독 발목 사진이 많다. 완벽하게 재단된 바지와 센스 있는 신발과 발목을 감싼 양말의 조화가 좋다. 특히 173-4cm 정도 키의 남성의 발목을 편애한다. 한마디로 이태리 남자의 발목 형태를 사랑하는 것 같다. 깡말라서도 안되고 종아리와 일자로 떨어져서도 안되고 무튼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바로 이거지!' 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그 완벽한 비율과 굵기를 가진 사람이 남편이다. 적당한 알이 있고 맨질맨질 윤기 나는 종아리와 발목과 발까지의 균형이 완벽하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나에겐 너무나 견고하고 명확한 기준의 발목의 미가 있는데 그것을 가진 이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어느 날 말없이 마주 앉아 있다가 남편에게 고백했다.
난 당신의 발목에 반했어.
“심지어 발목은 늙지도 않잖아. 인간의 신체 중에서 애를 써서 관리를 해야 하는 부분도 아니고, 또 노력해서 바꾸기 힘들고. 한마디로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발목인데 당신 발목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발목이야." 나의 말에 남편은 심히 당황하며 진.지.하.게. “ 발목에 살을 찌우려면 어떻게 하지?” 라고 물었다. 다음날 발목이 보이지 않는 바지를 입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남편의 발목 빼고 머리카락 한 올까지 싫어졌다. 그냥 다 싫은데 ‘싫다’의 단계를 넘어서자 모든 것이 불편해졌다. 이렇게 함께 사는 사람이 불편할 수 있다니. 행동하나 말 한마디까지 죄다 거슬리는 단계가 넘어가자 이번엔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사건건 부딪혔기 때문이다. 결혼 10년 차가 넘었음에도 그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제까지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기본적인 결이 맞지 않았다. 사고방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미움과 불편은 쌍방인지라 그 또한 내가 심히 밉고 불편했을 것이다. 나의 언어와 그의 언어가 너무나 달랐고 영혼의 mbti는 무척이나 상이해, 매 순간 부딪혀 싸움을 만들더니 그 끝은 침묵이었다. "차라리 말을 말자."의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하루는 아들과 해변가를 걷고 있었다. 쇠똥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한참을 둘이 앉아서 참 귀엽네 하고 이리 보고 저리 보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니 또 보였다. 어머? 여기도 있네? 그런데 잠시 후 한 마리가 더 보였다. 알고 보니 그 해변은 쇠똥구리 밭이었다. 수많은 쇠똥구리들. 얼마나 많은지 여기저기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밟혀서 납작하게 짜부라진 시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귀엽기는 개뿔, 진절머리 나게 징그러웠다. "어휴,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 계속 보이네, 너무 징그러워. 이안, 그런 거 알지? 싫다고 하니까 계속 보이는 거? 으으 너무 싫다!" 함께 걷던 아이가 그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싫으면 보지 마.
싫은 건 안 보면 돼.
엄마가 안 보면 되잖아.
정말 싫었던 걸까? 아니면 싫은 걸 굳이 찾아 계속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걸까? 원인은 나의 불안하고 힘든 마음이었는데 그의 싫은 점을 찾아 나의 마음을 회피하고 외면한 채 모든 것은 그의 문제라고 떠 넘기고 싶었던 걸까? 그 당시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그도 힘들었다. 서로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싫은 모습도 못 본 척, 미운 모습도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각자 자신의 마음의 짐이 커서 서로를 보듬을 수 없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었다. 나는 힘이 드는 일이 있으면 그에게 풀었고 그 역시 나에게 풀기를 원했다. 힘듦을 공유하는 것이 부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혼자 감당했고 나도 스스로 감당하기를 원했다. 그는 서로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 것이 부부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푸는 방식이 너무나 다른 그와 그녀였다. 그것이 나에겐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공감해주지 않는 남편으로 보였고 그에겐 불편한 감정을 토해내어 혼자 힘들고 말걸 다 힘들게 만드는 아내로 보였다.
오래전 기억에 떠올랐다. 아직 우리 둘이 부부가 되기 전, 함께 영화관에 갔는데 서로가 보고 싶은 영화가 달랐다. 난 싫은 영화라도 상대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봐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고 그는 함께 영화관에 가서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각자 영화를 보면서 함께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다음엔 상대방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그 당시엔 너와 영화를 보기 싫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궤변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깨달아 알게 되는 마음도 있음을 그런 마음이 스며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따로 영화를 보아도 결국은 같은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라는 사이임을 간과했다.
잊고 있던 그 일이 떠오른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자신을 항상 설명하고 있었는데 내가 들으려 하지 않았구나. 마음에 드는 발목 하나만 빼고 나머지를 죄다 나에게 보기 좋게 바꾸고 싶어 했구나.
침묵한 날들이 쌓여가던 어느 날 마주 앉았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은 채 물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 그는 대답했다. 바라는 거 없어. 나의 언어에서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도 그런 뜻을 가졌다고 해석하지 말자. 바라는 것이 없다면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담겨있지 않을지는 그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안에 넌 바뀌지 않는 사람이야. 난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뜻이 담겨있을 거라고 나의 언어로 번역하여 짐작하지 말자. 나는 그에게 바라는 것이 수천수만 가지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많으면 멀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내가 바라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신기하게 바라는 것이 사라졌다. 다만 함께 하고픈 한 가지는 명료해졌다. 나는… 나는…. 행복하고 싶어. 우리 함께.
함께 행복하게 위해, 발목 외의 것은 그에게 둔다. 좋고 싫고 상관없이 그대로 둔다. 발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에 빠졌던 처음처럼.
일본 드라마 롱베이케션의 대사다.
"저기... 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긴.. 휴가'라고.."
"'긴.. 휴가' 라니?"
"난 말이죠. 언제나 분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 있잖아요. 뭘 해도 잘 안 될 때 가요. 뭘 해도 안 되는 그럴 때, 그럴 때는 뭐랄까... 신이 주신 휴가라고 생각해요. 무리하지 않는다. 초조해하지 않는다. 분발하지 않는다. 흐름에 몸을 맡긴다."
뭘 해도 안 되는 시간, 뭘 해도 자꾸만 싸움이 되고 뭘 해도 자꾸만 어긋나는 시간, 이 시간을 ‘신이 준 부부 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나의 질문에 기무라 타쿠야가 대답한다.
좋아지죠.
때로는 사랑이 지겨워질 때가 있고 사랑이라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랑도 이런데 가족은 어떻고 부부는 어떠랴. 가족도 사랑도 부부도 지겨워지고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스물다섯,스물하나의 청춘은 서로의 응원이 닿지 않으면 뒤돌아 안녕을 고했지만 마흔하나,쉰의 중년은 ‘안녕’ 대신 ‘휴가’ 라고 쓴다.
이탈리아에선 휴가를 Non fa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부른다. 분발하지 않는다. 초조해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은 인간관계에 거리를 두면 손절이라고 이름 붙이지만, 가족 사이에서의 거리두기는 그것 또한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이기에 각자의 휴가를 존중할 수 있다. 휴가가 끝나고 돌아오는 곳은 집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퇴사 후 휴가는 떠날 때 가장 즐겁고 휴가 내내 막연하게 불안하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휴가는 휴가를 떠날 때도 휴가 중에도 평온하다. 마음 편한 휴가에서 돌아오면 온전한 내가 된다. 내 휴가니 내가 하고픈 것을 한다. 내 고민과 내 행복에 집중한다. 그렇게 잘 보낸 휴가 후엔 나와의 관계는 항상 좋아졌다. 그리고 나와 사이가 좋아진 후엔 타인과도 사이가 좋아졌다. 가족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지난 수많은 휴가에서 깨달았던 일이다. 그저 나 그대로도 충분하게 가족 안에서 휴가를 보낸다. 아내로 남편으로 자식에서 휴업하고 '집을 떠나 휴가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올게.'가 아니라 가족이 버겁거나 가족 안에서 나의 역할이 부대낄 때, 나라는 한 개인으로 지치고 방황할 때 언제든 휴가가 가능한 가족이 될 수 있다면 이것도 꽤 멋질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전히 나이기가 힘들다. 어느 관계에서나 어떤 자리에서나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야만 할 것 같다. 그렇지 못해도 그렇게 보여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만큼은 아무런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발목처럼, 이 안에선 만큼은 나 자체로 충분하면 좋겠다.
혹여라도 남편이 이 글을 읽는다면 한 마디 하겠다. 이게 내가 항상 말하던 거잖아. 그러게 이걸 이제야 알았네. 결국은 발목 빼고 다 싫었던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발목만큼은 미워지지 않았던 거였어.
그대로 충분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