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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16. 2022

이태리 초딩은 고백을 놀리지 않는다

그걸 왜 놀려? 박수를 쳐야지. ( feat. 이태리 화법 )

이안이를 교문에서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사무엘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엘의 품엔 꽃다발이 안겨있었다. 다소 커 보이는 꽃다발이 사무엘의 곱슬머리 위로 하늘거렸다.


하굣길에 이안에게 물었다.


_오늘 무슨 날이었어? 아침에 사무엘이 꽃다발을 들고 학교에 들어가더라고. 엄만 행사 있다고 따로 들은 이야기가 없는데.

_아~ 오늘 마르타 생일이었어. 근데 한 번이 아니야. 작년에도 줬어.

_사무엘이 마르타에게?

_응, 좋아하거든, 사무엘이 마르타를. 저번 발렌타엔 데이에는 프란체스코가 안나에게 반지를 선물했어. 니콜로도 안나에게 꽃다발을 줬어. 아, 안토니오는 울었어. 안토니오도 안나를 좋아하거든. 그런데 안나는 프란체스코의 반지를 더 좋아했어.


그걸 보면 너희는 어떻게 해? 놀려?


질문을 들은 이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어찌 잊을까?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 여기서 왜 그 질문이 나와?라는 순수하게 놀라던 눈빛을.


놀려?
그걸?
왜?
우린 당연히 축하해줬지.
박수를 쳤어.
아우구리(축하해!) 라고 소리쳤고.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이 나라 사람들이 무척이나 사랑을 이야기함에 솔직하다는 생각을 했다. 비단 연인끼리만이 아니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사랑의 언어가 자연스러웠다. 말로 하는 언어, 몸으로 하는 언어 모두가. 어쩌면 저렇게 솔직하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내 마음이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려보면 이성 간에 아주 작은 오묘한 분위기만 감지되어도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학교의 벽면 어딘가 누가 누구를 좋아한데요~라고 낯간지러운 낙서가 새겨질 좋아한다는 마음이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8살의 아들에겐  응당 축하를 받을 소중하고 존중받는 마음이었다. 아이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알고 있었다. 분명 나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 배우지 않았으니 가르칠 줄을 모른다.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왜 놀림을 받는 일이냐 되묻는 아들을 보며 깨달았다. 솔직한 사랑의 언어의 배경은 부끄럽지 않아서였다.


아주 오래전, 이안의 유치원 공연 날, 둘째의 칭얼거림으로 인파의 끝에 서서 아이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공연 내내 나를 찾던 아이는 결국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나에게 온 아이가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먹이며 말했다.


_엄마의 눈빛이 너무 멀어서 슬펐어.


낯선 사랑이었다. 왜 거기 뒤에 서 있었어!!라는 원망인 아닌 사랑의 언어로 마음을 전하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그런 문장을 만드는 5살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를 참 못하는 엄마 앞에서 8살이 말했다.


_엄마, 중요한 것은 엄마의 계란말이는 세상에서 최고라는 거야.


의아한 사랑이었다. 맛있는 반찬은 당연하고 맛없는 반찬에는 반드시 투정을 했던 8살을 살았던 나에게 그 목소리는 의아했다. 우리가 오글거린다고 표현하는 문장들이 아이에겐 일상의 언어다.


드라마에는 스물다섯스물하나 7반 이쁜이라 불리는 문지웅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것에 아름답다 말하는 그 소년을 사람들은 이쁜이라 부른다. 보는내내 이태리 화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의 언어가 일상인 아이는 아이는 자라나 미래의 자신의 사랑에게도 아름다운 문장을 선물할 것이다. 물론, 자신의 생을 통과하는 매 순간 자기 자신에게도. 아이의 문장을 가장 많이 듣게 될 사람은 그 누구보다 아이 스스로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가 사랑이 가득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고 부모는 많은 사랑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사랑을 아무리 채워도 밖으로 꺼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배우며 자라나게 되면 아니 될 일이다. 아이만큼 사랑의 언어에 솔직해질 자신은 없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아이의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거다.


채워져 있어서 나올 수 있는 것 이 아니었다. 사랑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것이었다. 비우면 채워지는 것이 사랑이었다. 사랑을 줌으로 비워내고 받은 사랑으로 다시 채운다.


무례에는 무례로. 개소리엔 개소리로. 날카롭고 직선적인 표현에는 날이 갈수록 솔직해지고, 사랑과 진심 앞에서는 말을 삼키며 나날이 어려워지는 엄마는 사랑의 언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축하받고 존중받으며 자라는 아들을 보며 생각한다.

.


사랑을 채우려 조바심을 내지 말자.

사랑은 비우면

다시 차 오를 거야.

내가 하는 사랑의 말의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은 나이니 비우는 동시에 채워지는 것이 사랑이야.



이안, 너의 재능이 뭐야?
나의 재능은 친절한 거.
그 재능은 어디에서 온 거야?
친구들이 내가 혼자일 때 놀자고 해줬어. 그 친절이 좋아서 나도 친절하게 된 거야.
엄마가 너에게 준 재능도 있어?
남을 사랑하는 거.
엄마가 너에게 그런 재능을 줬어?
엄마가 나를 사랑하니까, 나도 남을 사랑하게 되었어.


https://youtu.be/e_oCATwjnQI

유튜브 로마가족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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