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Dec 26. 2021

크리스마스 이브에 바티칸의 초대를 받은 한국 소년

교황 집전 성탄 대축일 미사 화동이 되었어요


오늘은 종일 비가 쏟아졌다. 3월 말의 로마에서 말이다. 6시 티브이를 틀었다. 화면 속 최대 3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베드로 광장은 텅 비었고 흰옷을 입은 단 한 명의 사람만이 서 있었다. 그는 아주 천천히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Dio, Non lasciarci nella tempesta.
(신이시어, 우리를 폭풍우 속에 내버려 두지 마세요.)

나이 든 교황의 목소리가 떨렸다.


위 글은 작년 3월의 글입니다.


2020년 3월, 글을 쓰던 날의 하루 사망자는 969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후 이탈리아에 발생한 최고의 사망자 숫자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린 베드로 광장에 섰습니다. 오전에 내린 비로 돌바닥이 젖어 광장의 모든 빛을 흡수해 더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그 어느 해보다 더욱 화려한 크리스마스 크리가 광장을 밝힙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가득 안고 트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도 반짝입니다.



작년 3월에 상상했던 2021년의 크리스마스는 팬데믹이 종료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우리 곁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한 바이러스가 여전히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감염에 대한 불안은 분명 존재하나 그 정도는 조금 옅어졌고 감염속도는 더욱 빨라졌지만 이겨내는 속도도 그에 상응해 빨라졌습니다. 이 것이 우리가 바이러스에 적응했다는 슬픈 결과일 수도 있지만 공포는 약해지고 희망은 피어나고 있음의 증거라고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굳게 믿고 싶습니다.


베드로 광장 한가운데 두 아이가 한복을 입고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티칸의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초대장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두근거립니다. 게다가 초대를 받기도 하기도 어려운 이 시기의 초대니까요.  심지어 바티칸이라는 문구라니 가슴이 뛰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초대장의 주인공은 이안이 입니다.



교황 접전의 바티칸 대축일 미사의 화동으로 이안이가 초대를 받았습니다. 작년 나 홀로 광장을 걸었던 교황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에서 다시 신자들과 함께 성탄 전야 미사를 합니다. 보통 저녁 10시에 시작해 자정까지 이어지는 미사이지만 노년의 교황을 배려해 저녁 7시 반에 시작합니다.


베드로 광장에서 투어를 마치고 오는 아빠를 기다립니다. 아직 식은 시작도 안 했는데 4살의 이도는 이미 지쳤습니다. 이도는 내일 크리스마스에 5살을 선물 받습니다. 이도는 크리스마스 새벽에 태어난 아이랍니다. 칭얼거리는 이도는 8살의 이안이가 안아 올립니다. 원숭이처럼 오빠에게 꽉 매달린 동생에게 속삭입니다. 오빠가 이도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필요한 건 다 이야기해. 떼쓰는 동생을 죄다 받아주는 이안이에게 보다 못한 엄마가 묻습니다. 왜 그렇게 동생에게 잘해주는 거니? 그런 엄마의 질문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다는 듯 이안이가 답합니다.


엄마!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고 내일은 크리스마스잖아.
크리스마스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날이야.


지금까지 저의 크리스마스는 부모 되기 전까진 선물을 받는 날, 부모가 된 이후로는 선물을 주는 날이었습니다. 8살 아이가 깨우쳐준 이 날의 의미,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는 날이었네요. 어릴 적, 이 맘 때면 언제나 마주쳤던 구세군은 사람이 사람에게 잘해주는 마음의 증표였습니다. 매일 친절한 사람이 될 순 없겠지만 내일 하루만이라도 전 친철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더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잘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습니다.


투어를 마치고 한복으로 차려입은 아빠가 도착했습니다. 우린 초대받은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모두에게 이 경험은 특별하겠지만 수도 없이 투어를 위해 바티칸을 드나들던 우리 부부에게 비공개된 공간으로의 입장은 너무나 뜻깊습니다. 심지어 바티칸 내에 주차도 했단 말입니다.


작은 복도를 지나가 화려한 조명과 함께 베드로 대성당이 나타났습니다. 스위스 용병의 곁을 지나 우리를 위해 마련된 좌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오늘 이안이의 역할은 각국의 다른 어린이들과 교황과 함께 성탄 구유의 아기 예수 곁에 화환을 놓는 일입니다. 미사 전 간단한 예행연습을 마치고 얼마지 않아 예식이 시작됩니다.


화려하고 경건한 행렬의 한가운데 아이들이 섰습니다. 멀리 지켜보는 것만으로 웅장한 감동이 몰려오는데 그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예년과 같은 인파가 성당을 가득 채운 가운데 걸음조차 힘겨워 보이는 교황이 사람들에게 은총을 내립니다. 그는 이 성당 안에서 유일하게 마스크를 쓰지 않는 어른입니다.



미사가 끝나고 화동을 했던 어린들만 따로 교황과 단독으로 알현을 했습니다. 알현을 마치고 돌아온 이안이의 손에 작은 선물이 있었습니다.


 내가 교황 할아버지께 내일이 이도 생일이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나랑 이도랑 이렇게 선물을 두 개를 줬어.


아이가 교황에게서 받아 온 선물은 바티칸 묵주였습니다.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 세상의 모든 폭풍우를 대신 맞으며 텅 빈 광장을 가로지르던 교황에게 아이가 고하고 싶었던 것은 동생을 생일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안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사실 난 어제까지 예수를 믿지 않았어.
내가 소원을 빌었지만 들어주지 않았거든.
나의 소원은 행운이었어.
그런데 내가 행운을 빌었지만 행운을 주지 않으셨어.
하지만 난 이제 예수를 믿어.
나에게 행운을 주셨거든.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는 행운이야.



신에게 행운을 기도했던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행운 안에는 참으로 많은 것을 담았습니다. 행운이라는 단어 속에 욕심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신이 행운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은 욕심을 채우지 못한 허기짐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운은 이미 우리 곁에, 우리 모두에게 이미 닿아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우리 스스로 그 행운을 볼 수 있는 마음,

이미 받은 행운을 누릴, 지금  순간 살아있는 로 충분했습니다.


written by iandos



*글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https://youtu.be/vP4f1G5kv70

Youtube 로마가족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별로로 남겨두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