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니하오'라고 하면 꽃을 주는 거야?

3화: “SEI CINESE?, 너 중국사람이야?"

by 로마 김작가
10살 이안과 6살 이도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한국 어린이입니다. 가족과 한국말을 하고 친구들과는 이탈리아말을 합니다. 두 아이의 한국말 표현에는 예상치 못한 특별함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특별하고, 저의 육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하면 특별하던 그 말들이 이탈리아말로 바뀌면 지극히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특별함은 이탈리아말이 미묘하게 한국말에 스며들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어떤 말들이었을까요? 저는 앞으로 아이들의 한국말속에 스며든 이탈리아말을 찾아 떠나보려 합니다.


<이탈리안 레시피> 3화
“SEI CINESE?, 너 중국사람이야?"




2017년 여름, 이안 유치원 1년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났다.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는지 무리 중앙의 여성의 머리에는 월계관을 놓여있었고 가슴엔 한가득 장미꽃이 안겨 있었다. 사람들은 연신 웃으며 대화했다. 그들 곁을 지나는데 이안이가 그들에게 외쳤다.


"아우구리!!" (Auguri! 축하해요)


그들은 작은 꼬마의 축하에 난리가 났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성이 장미꽃을 하나 빼서 이안에게 건네며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니하오~"


옆에 서 있던 남성은 두 손을 합장하며 이탈리아 말로 Grazie (고마워.) 인사를 한다. 난 기분이 상했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꽃 고마워요, 그런데 우린 한국인이에요."

"어머! 미안해요. 그런데 한국말 인사는 모르는데 어쩌지..."


아이는 장미꽃에 그저 신이 났다.


"엄마!! 너무 예쁘지? 엄마 너무 좋지? 엄마 꽃 좋아하잖아."

"(무뚝뚝하게) 응, 너무 예쁘다. 집에 가면 병에 물 담아서 꽂아 두자."


그런데, 엄마?
'니하오'라고 하면 꽃을 주는 거야?



2017년 겨울, 이안 유치원 2년


•페루 친구 카르멘과의 대화:


"카르멘, 이안이가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를 하는데 중국인 역할을 맡았어. 난 기분이 좋지 않아."

"민주, 그거 알아? 난 페루 사람이지만 중국인 혼혈이야. 할아버지가 중국인이야. 츄스라고 중국 이름도 있어. 난 어릴 때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당하기도 했어. 그런데 내가 어릴 땐 페루에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 놀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런데 지금 봐. 이탈리아는 정말 많이 개방되었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 이 아이들은 금발이든 흑인이든 아시아 사람이든 아무런 느낌이 없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Nuova generazione, 완전 다른 세대인 거야 우리들보다 나아. 오히려 부모들이 아이들보다 못해. 어른들이 더 성장해야 해."


"난 선생에게 따지려 했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안이가 즐거워하잖아. 분명 전혀 기분 나쁜 느낌을 받지 않은 거야. 내가 그 공연을 보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넌 현명해. 우선 진정하지. 그리고 생각해. 그다음엔 기다려보지. 잘하고 있는 거야. 내가 아는 많은 엄마들이 화부터 내고 따지지.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아이에게 전이시키지 않는 거야. 너의 감정을 아이에게도 느끼게 하면 안 돼.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을 따라가잖아. 크리스마스 공연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나오는 내용인 거 같은데 이안이는 그중에 중국인 파트를 맡은 것뿐이잖아.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야. 유치원에서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면 믿고 지켜봐. 그리고 난 남미 사람들 나라별로 구별할 수 있어. 하지만 아시아 사람들은 필리핀 사람은 조금 달라 보이지만 전혀 모르겠어. 다 똑같아 보여. 중국인이라고 물을 때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야. 정말 몰라서 그런 거지. 그건 누가 어디서 어떤 의도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2019년 봄, 이안 유치원 3년


•유치원 등굣길,


최근 읽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아이가 벽의 전단을 읽다가 물었다.


"엄마, sky는 왜 그 스키가 아니고 스카이야?" (스카이는 이안이 반 중국인 친구다.)

"아~ 그게 sky을 영어로 읽으면 스카이라고 읽어."
"엄마, 스카이도 이름이 세 글자고 나도 이름이 세 글자야."
"그렇네! 다른 친구 중 또 세 글자가 있나?"
"없는데? 엄마, 그런데 스카이 얼굴이 갈색인 거 알아?"
"갈색인가?"
"응, 갈색이야. 그리고 나도 갈색이고,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분홍색이야. 나도... 분홍색이면 좋은데..."
"에이~ 여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갈색이고 싶어서 태양에 막 태우고 그래, 갈색 되려고. 엄마는 갈색이 좋은데 너무 매력적이잖아. 이안이 매력적이야. 매력적인 게 뭔지 알지?"
"응, 멋진 거."


아이는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불현듯 저 웃음이 나의 칭찬에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나의 말을 위로로 여겨 멋쩍은 웃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원 하굣길,


이안과 같은 학교 초등학교 형들과 함께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은 나도 얼굴이 낯익은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먼저 이안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다른 학교 학생인 듯한 아이가 친구에게 물었다.


"저 작은 중국애는 누구야? 너 저 애 알아?"


얼굴이 낯익은 소년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대답했다.


내 친구야.



2019년 가을 이안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앞에서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이안이 반 친구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달래고 있었다. 정신없는 등교시간이었다. 며칠째 오빠와 같은 교실에 들어가겠다고 우는 둘째를 겨우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학교를 벗어나는데 울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보였다. 그녀는 일본인이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물으니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했다. 매년 이안이와 함께 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름학교에 참여했던 안나를 올여름에는 보지 못했다. 이탈리아 시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마을의 여름학교에 보냈는데 그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시아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아이는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악의적인 인종 차별이었다. 일본인 엄마, 이탈리아 아빠, 안나는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괴롭힌 건 나이가 더 많은 언니들이었고 그날 이후 안나는 자신보다 큰 아이들 앞에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안나는 유치원 내내 반의 리더였고 남자 여자애들 모두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부모였기에 안나는 가장 일찍 학교에 도착해 가장 늦게 집에 돌아가는 아이였다. 매일 오후 안나의 부모가 도착할 때까지 같이 기다려줘야 한다는 아이들 덕분에 졸지에 우리도 수다를 떨며 해 질 녘 교문 앞을 서성였다. 그 소녀가 여름이 지나고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외모는 우리가 가진 일부분이지만 우리를 드러내는 가장 크고 쉬운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우리를 특이하게 만들기도 한다. 겉모습이 우리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음에도 누군가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안과의 대화


“이안, 엄마와 이야기 좀 할래? 얼굴이 검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얼굴이 검다는 이유로 놀려도 돼? 그러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떨까?”
“슬프지..... 맞다! 오늘 로렌조가 내 코를 누르며 놀렸어”
“기분이 어땠어?”
“조금 안 좋았는데.... 그래도 웃었어. 친구들이 눈이 작다고도 그러는데..... 나도 눈이 동그라면 좋겠어”
“이안, 이안의 눈은 엄마 아빠의 눈과 똑같아. 싫어?”
“아니 예뻐.”
“이도를 봐. 어때?”
“너무 귀엽지.”
“이도 눈이 이렇게 커지면 어때?!”(이도 이안이 둘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이안, 그거 알아? 이안이는 학교에서 동양 아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앞으로 누가 눈이 작다고 코가 작다고 다르게 생겼다고 놀리면 이안이가 그렇게 하는 건 잘 못된 거라고, 나쁜 거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줘. 우린 모두 다르게 생겼어. 우리 모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을 선물 받은 거야.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자신이 가진 모습을 부끄러워하거나 잘 못 된 거라고 느끼게 해서는 안돼. 이안, 앞으로 누가 그러면, 그게 선생님이고 형이고 누나라도 그건 나쁜 거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 부끄러워하고 무서워하고 작고 말을 못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이도를 위해서. "

"응, 그럴게. 그런데, 기억을 못 하면 어쩌지?"


괜찮아. 엄마가 계속 이야기해 줄게.



2020년 봄, 이안 초등학교 1학년, 축구학교에서


참으려 했던 것 같다. 아니, 참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발견한 아이는 참을 수 없었나 보다. 후다닥, 내가 나타나자 아이의 옷을 잡아당기던 두 아이가 달아났다. 지퍼가 내려간 져지를 추켜올리며 이안이는 날 올려보며 울었다.


“치네제(중국사람) 래, 아니라고 했는데, 다시 인디아노(인도사람)라고....”


축구학교에서 시합을 하던 중이었다. 시합이 겪해지면 아이들은 이안을 중국애!라고 부르며 화를 돋우곤 했다. 한두 번의 일이 아니지, 그러나 아이 앞에서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떤 의도로 그 단어를 사용했는지 알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 단어 자체가 나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단지 한 나라의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다. 엄마의 분노로 인해 아이가 그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화를 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의연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운다. 축구 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과 코치들과 부모들이 오가는 가운데 소리쳤다.


너희 둘! 이리 와!
얘는 코레아노야!
사과해! 사과하라고!!!!
울고 있잖아!!!!!!!!!!


아... 제발 나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쭈볏쭈볏 두 아이가 다가왔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듯했다. 얘가 그랬어요. 난 안 그랬어요. 아이들은 서로 미뤘다. 바로 코치들과 아빠들이 다가왔다. 울고 있는 이안이의 유니폼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 우린 같은 팀이야. 사과해. 심지어 우리 모두는 로마(축구팀)를 응원하잖아!! 그렇지?"


이안이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전 라찌오..."(로마와 라찌오는 라이벌이다)


(순간 일동 침묵.......)


아빠와 코치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 그래! 로마도 라찌오도 모두 같지! 그럼!! 그럼...."


(심각한 상황인데... 참아! 김민주! 여기서 웃으면 안 돼..)


그때 이안과 같은 반, 단짝친구 안토니오가 도착했다. 6살의 아이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아까 어떤 애가 이안 이를 놀렸어. 이안이가 울었어. 이야기를 다 듣고 한숨을 쉬더니 안토니오가 말했다. 3학년 형들이죠? 지난번에도 몇 번 그랬어요.


멍청한 자식들.


축구장으로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이안이를 찾더니 아주, 아주 크게 소리쳤다. “이안!!!!!!!” 공을 차던 이안이가 달려왔다. 둘은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손을 살짝 스치고 동시에 공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안과의 대화


"왜 울었어? 한 번도 운 적 없잖아."

"안 울려고 한 거야. 그런데 이번엔 울어버렸어."
"한국사람이라고 말하지 그랬어."
"치네제(중국사람)라고 해서 아니라고 했어. 그랬더니 인디아노(인도사람)래. 아니라고 코레아노(한국사람)라고 하니까, 그냥 다 똑같대.
"무식하다고 그래."
"무슨 말을 해도 계속 다른 말을 할 거야."

"그런데 이안이가 친구들과 다르게 생긴 건 알지? 한국에 이탈리아 아이가 있으면 한국아이들도 그 애가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할 거고 프랑스 사람, 스페인 사람 다 똑같이 생겼다고 이야기할지도 몰라. 너도 유럽사람들 잘 구분하지 못하잖아."

"그런데 그러면 어디에서 왔냐고, 어디에 사냐고 물어보면 될 텐데.."

"그럼, 그냥 한국말해. 어차피 모를 텐데, 그냥 한국말해. 난 한국인이다. 이 똥멍청이야! 방귀나 뀌어!"
"큭큭큭 방귀나 뀌어!!!! 똥멍청이야 방귀나 뀌어!!!!"


로마 밤하늘 아래에서 우린 소리쳤다.


똥 멍청이야!!
방귀나 뀌어!!!!



2023년 여름, 이도 초등학교 2학년


"엄마, 리듬체조하는데 어떤 애가 나보고 '너 중국 사람이야?'라고 물었어. 왜 그렇게 묻는 거야?"

(아.... 이거 무슨 평행이론도 아니고, 초등학교 1, 2학년 공식 질문인가....? 어휴...)

"한국 사람이라고 말해 줘."

"아니, 나는 그게 아니고~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고 묻지 않고, 왜 '너 중국 사람이야?'라고 묻냐고~?"

"이도네 학교에 한국 사람은 너와 이안이 둘이지? 중국 친구들은 몇 명이야? 더 많지? 학교뿐이 아니야. 로마에선 한국 사람보다 중국사람을 만날 일이 더 많아. 어쩌면 이도 친구들에게 이도는 생애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일 거야. 대부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중국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서 아시아 사람들 만나면 다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좋은 질문을 몰라서 그래. 또 너 중국 사람이야?라고 놀리면, 그 질문은 좋지 않다고 더 좋은 질문은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고 네가 가르쳐 줘."

"응, 알겠어. 그런데 엄마, 왜 놀린다고 해? 내가 언제 놀렸다고 했어? 나는 '너 중국 사람이야?'라고 물었다고 했지. 놀린 적 없어. 나는 그냥 왜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고 묻지 않는 게 궁금했던 거야."




순간, 지난 일들이 파바박! 스쳐 지나며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 중국사람이야?'라는 질문에 '차별'이라는 의도와 '반박'과 '상처받지 않음'이라는 방어기제를 펼친 것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것과 아이들이 느꼈다고 생각한 것은 어디까지가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 나의 감정을 그대로 투영하여 아이들도 느끼고 있다고 여겼던 것을 아닐까?


처음 카르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중국인이라고 물을 때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야. 정말 몰라서 그런 거지. 그건 누가 어디서 어떤 의도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Nuova generazione, 완전 다른 세대인 거야 우리들보다 나아. 오히려 부모들이 아이들보다 못해. 어른들이 더 성장해야 해.


이도가 나에게 질문을 할 때 분명 그 목소리에 속상함이 묻어났다. 그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속상함의 포인트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중국사람'이라고 오해받은 것에 대한 속상함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도의 속상함의 이유는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한국이 덜 알려져 있음'이었다. 지난 이안과의 대화를 돌이켜 보았다. 끊임없이 묻던 질문,


"왜 이탈리아에서 한국은 안 유명해?"

"왜 중국이 더 유명해?"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을 잘 몰라?"


지난날 축구 학원에서 이안이 울던 날, 아시아인으로 차별받아서 울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중국이나 인도나 한국이나 다 똑같다는 그 말이 이안을 울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로마에 온 것은 2006년이다. 어느덧 이탈리아 살이도 18년 차다. 처음엔 다짜고짜 중국인이라고 묻고 한국이라고 대답하면 공식처럼 북한이냐? 남한이냐?라는 질문이 따라오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예전 파시즘 정부 아래 있었던 역사 때문에 이탈리아의 몇몇 대학에는 북한 유학생도 있었고 유럽의 다른 국가인 독일의 경우 동독과 서독이 통일 전에도 왕래가 가능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북한과 남한의 휴전 상황은 우리와 사뭇 이해도가 다르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전쟁 중이지만 이안의 우크라이나 반친구는 이번 여름 방학내내 우크라이나 할아버지 집에서 머물다 왔다.


내가 처음 이탈리아에 왔던 2006년에는 비하면 2023년 현재 이탈리아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정보량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대부분 콘텐츠 영역에 국한되어 있고 여전히 일반적인 이탈리아사람들에게 한국은 많은 부분이 생소하다.


단적인 예로, 이탈리아 사람들도 음력 설의 존재는 알지만 '중국 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 정보의 대부분은 중국을 기반으로 한다. 아무리 이 나라에서 오래 살아도 무턱대고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남한이냐 북한이냐는 물어오면 무의식적으로 불쾌감과 함께 한숨이 나온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이것을 차별의 영역으로 묶지 않는다. 이것은 무지의 영역이다. 정보의 부족과 함께 관광객과 별개로 일상의 삶 속에서 이민자와의 부대낌이 적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해도 부족으로 인한 무지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여행객이 많은 것 때문에 이민자의 사회적 진출도 높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관공서 등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일반 직장에서도 유럽권의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외국인의 사회적 진출을 보기 힘들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는 많지만 분야는 한정적이다. 특히 아시아 이민자의 역사도 짧아서 아시아인의 사회적 진출이 거의 없다. 이 부분은 한국과 꽤 닮았다.


아마 이안과 이도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는 이탈리아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2023년 현재, 일반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고 이방인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낮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친구들에게 설날 이벤트

올해 초 런던에 갔다. 마친 음력설과 기간이 겹쳤는데 런던 전체가 음력설 분위기로 넘쳐났다. 일반 슈퍼에 음력설음식을 만들 수 있는 밀키트가 있을 정도였다. 이건 놀람을 넘어 쇼킹한 일이었다. 이탈리아에선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살지만 한국 친구들과 함께 전을 부치고 한인 성당 한글학교에서 명절을 축하했다.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이렇게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마주하자 그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아, 우리 스스로가 지켜나가는 것만큼 알리는 것도 중요하구나. 우리를 존중하라! 소리를 내는 것만큼 존중받을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구나.


우리 가족이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는 없겠지만 작지만 시작해 보자. 그래서 지난 설날 우리 가족은 함께 둘러앉아 복주머니를 접었다. 복주머니에는 동전 초콜릿을 담았다. 이안은 이탈리아 말이 서툰 이도를 위해 반에서 설명할 수 있도록 설날 설명을 종이에 적어주었다. 두 아이의 반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설날 이벤트로 충분하다고 생각는데 추석을 앞두고 이도가 질문을 한 것이다.


"이도, '중국사람이야?'라는 질문보다 더 좋은 질문이 있다는 것을 말로만 알려주지 말고 제대로 멋지게 보여주자. 우리 이번 추석에 신나는 일을 만들어보자!"


반친구들에게 추석 이벤트

추석 전날, 밤늦게까지 한복을 접었다. 저고리를 접고, 치마를 접고, 옷고름도 만들었다. 이번엔 동전 초콜릿에 백 원을 프린트해서 붙였다. 그리고 한복 치마에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 한글로 적어 넣었다.


서프라이즈는 언제나 신난다. 하는 사람도 놀라는 사람도 모두.


Sei cinese?
너 중국 사람이야?


이 질문은 끊임없이 우리의 뿌리를 인식시킨다. 우리가 다양성의 존중에 대해 깊게 고찰하는 대화를 끌어낸다. 분노보다 건강하게 우리를 알리는 법을 고민하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니하오'라는 인사에서 꽃을 발견하는 법이다.




"이도, 지금은 초등학생이니까. 아직 이도 친구들은 한국을 잘 몰라. 그런데 엄마가 장담하는데 네가 중학교에 가면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너도 친구들도 휴대폰을 가지게 되겠지. 그때부터는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지도 몰라. 친구들이 너에게 물을 거야. '너 한국 사람이야?' 그런데 그 질문은 네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한국 사람이길 바라며 묻는 질문일 거야. 앞으로 네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은 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될 거야. 네가 한국 사람으로 이탈리아에서 사는 것도 진짜 큰 매력이 될 거야. 한국에 가면 다들 '어머! 이탈리아에 살아요?'라고 할걸? 이탈리아에선 '어머! 너 한국 사람이야?' 할 테지. 그런데 네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한국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매력이 되기 위해서 네가 꼭 해야 할 것이 있어.


한국말을 잘해야 해.
한글도 잘 읽고 써야 해.

그때야 비로소 한국이 너의 진짜 매력이 되는 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어.
명랑하고 유쾌해야 해.

이탈리아에서 사는 명랑한 한국 소녀.
그건 너를 매력적으로 빛나게 해 줄 거야.

신나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가서 일기 써.

명랑이…과했…구…나….
이도는 문자를 깨우친 5살부터 매일 한글/이탈리아어 일기를 쓴다. [우리 이도…. 오늘 성당에 가서 우는 척해서 용돈을 받았고… 나….]
이안은 문자를 깨우친 4살부터 매일 한글/이탈리아어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일기 노트들과 초3 때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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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 모자문답집

: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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