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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Sep 20.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춘다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3

6월 여름방학을 앞두고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참여했던 무용 수업 공연이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던 아이가 올해 초부터 무용 수업은 어땠냐고 물으면 '이안이는 안 해.'라고 대답을 한다. 왜냐고 물으면 전혀 다른 화제의 이야기를 꺼내 버려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공연 당일 , 유치원 수업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공연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들이 막무가내로 집으로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엉뚱한 이유들로 울면서 떼를 쓰는 아들을 달래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스크림, 공룡 장난감 그 어떤 것도 회유가 되지 않았다.
 

겨우 진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기 위해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지난 1년간 동요에 맞추어 율동을 배우는 수업인 줄 알았던 무용 수업이 바로 발레 초급 반 이었다는 것을. 반 안에 아이들은 모두 분홍색 발레복을 입고 있었다. 전 학년 중 무용 수업을 듣는 남자아이는 아들을 포함해 두 명이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인 로렌조가 하필 휴가를 갔다.
 

아들은 전교에서 유일한 발레리노였다.
어쩔 줄 몰라하며 집에 가자고 하는 아이. 급기야 이건 여자들이 하는 거라며 울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여자애들이 하는 거라고 놀렸나 보다. 무용 선생님은 아들이 지난 수업 동안 즐거워했다고 당신은 보았던 아들의 춤을 부모가 보지 못해 안타깝다했다.
 

아들을 달래 보았지만 아들의 마음을 돌리긴 쉽지 않았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자.
그런데 유치원을 나설 때쯤 아들은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들어가겠다노라 말한다.

이미 시작된 공연,
춤추고 있는 분홍의 발레리나들 사이로 까만 쫄 바지에 흰 티를 입은 발레리노가 무대로 올라선다. 객석에서 환호가 울려 퍼지고, 언제 울었냐는 듯 무대를 즐기는 아들. 잔잔하던 공연은 아들로 인해 유쾌해졌고 웃음과 박수가 커질 때마다 아들은 멋지게 응답한다.


무대 위 유일한 발레리노


 나의 빌리 엘리엇


무대에 춤추는 아들을 올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부끄럽다는 감정을 이겨내고 홀로 무대에 오르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기특한 한편 나의 손을 잡고 어제나 나란히 걸어갈 것만 같은 아들이 나의 앞으로 손을 놓고 달려가버리는구나……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생의 다섯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네 살 생일을 앞두고 아이는 말에 있어서의 표현은 다양해지고 행동에 있어서는 자아가 강해지고 있었다. 공연의 감동은 감동이고 하루 종일 아이와 부대끼고 나면 피로와 짜증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엄마에겐 슬슬 한계점이 오는데 아이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이건 이안이가 할 거야. 혼자 할 거야' 를 남발하며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혼자 할 거야.' 이 말은 참……
엄마가 아이를 대견하게 생각하게도 만들지만 엄마 속을 뒤집어 놓기에도 이만한 문장이 없다. 결국 폭발해 아이에게 화를 낸다. 울음이 터진 아이에게 소리친다


네 멋대로 해봐!!
 

소리를 지르고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아들의 울음은 서서히 잦아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아들은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젠 혼내도 겁도 안 먹는구나 싶어 오히려 더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화도 식힐 겸 설거지를 하는데 뒤에서 아들이 '엄마……' 하고 부른다.
'뭐!!' 여전히 화가 난 목소리로 대답하며 뒤돌아본다.

아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서 있다.
 

분홍색 하트가 잔뜩 그려진 스케치북


엄마, 우리 사랑하잖아요.
화내지 말아요.
엄마가 좋아하는 분홍색 하트예요  


순간,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아 버린다.

아들이 다가와 작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말한다.
 
 “엄마가 왜 울어요. 뚝! 울지 마요. 이안이가 울어서 미안해요.”
 “아니야……이 안이가 울어서 엄마가 화난 게 아니야……어휴……나 어떡하면 좋아…….”


미안하다, 감동받았다……그런 감정이 아니다. 정말 아이에게 엄마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정이 몰려왔다. 그저 화내고 혼내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너무나 단순한 존재로만 생각했다.
  

아이는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난 아직 이 순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성장하는데 난 제대로 성장하고 있나? 막막하고 두려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된다고 생각했는데……내가 엄마가 되는 것보다 아이는 더 빨리 자란다는 것을 어째서 그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아이를 엄마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어제도 일주일 전도 한 달 전도 모두 어제라고 말하던 아이의 시간들이 점점 순서가 맞춰가고 어느 날은 내일을 기대하고 어떤 날은 지나간 어제들 중 하루의 추억을 속삭인다. 어제와 내일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매일이 지금이던 단순했던 아이의 세상이 커져간다. 마음은 다양해지고 감정은 복잡해지고 생각은 섬세해져 간다. 하루하루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자라나는 저 마음으로 난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육아가 힘들다고들 했지만 힘듦은 넘어 이렇게까지 어려운 것일 줄이야…
그저,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어렵다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할지…..


 엄마 룽잉타이에게

저는 당신과 안드레아가 주고받는 편지들, 그리고 당신의 모든 글들을 빼놓지 않고 읽고 있어요.
늘 오매불망 기다리죠.
특히 안드레아의 편지를요.
이렇게 참을성 있게 엄마와 긴 글로 토론을 하는 아들은 정말이지 흔치 않습니다.
룽이타이 당신은 두 손 모아 하늘에 감사라도 해야 할 거예요.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과 선택에 대해 제 의견을 말했더니 아들놈이 제 어깨를 두드리며 웃더군요.
‘엄마,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아요. 저는 제 인생을 살게요. 우리 그러자고요.’
아이들 하나하나가 곧 한 권의 ‘경經’인 것 같습니다.
엄마가 평생 두 손 받들고 읽어야 할…….
이 경을 잘 읽어낼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두 엄마의 인내와 사랑, 운에 달려 있습니다.
‘연’은 손을 놓으면 날아가버리지만, 이 경은 늘 엄마의 손안에 있어서, 계속 읽어나가야 하고, 계속 마음을 써야 합니다.
엄마로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각자 건강을 챙기고,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미국에서 마리가.
 
-룽잉타이 [사랑하는 안드레아] 양철북, 2015


written by_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었던 글을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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