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4
한국의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탈리아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오빠가 먼저 전화를 한 적은 10번도 채 되지 않는다.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아들 사진을 보내어도 묵묵부답, 별일 없냐면 괜찮다 걱정 마라 하고서 조카들 사진 달랑 한 장 보내주는 게 전부인 오빠의 전화다.
지진이 났다는데 괜찮으냐?
당시 로마에서는 3차례의 지진이 있었다. 로마에 살면서 처음 겪은 지진은 아니지만 지난 지진들이 모두 새벽에 일어나 직접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아침 준비 중에 느끼는 바람에 이 후로도 꽤 오래 지진 트라우마를 겪었다.
놀랐지만 로마는 큰 피해는 없어. 오빠는 잘 지내? 지진도 지진이지만 한국 뉴스 들으면 거기가 더 걱정이다.
생전 힘들다는 말을 않던 오빠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야~~ 죽겠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던 집 주인이 급하게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겨우겨우 옮겼는데 고작 한평수 늘어나는데 가격은 어마하게 차이가 나서 고생을 했단다. 전화 온 시간이 한국은 저녁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여전히 회사에 있던 오빠는 두 아이 얼굴 보기가 힘들다며 그래도 가족들 다들 건강하니 걱정 말고 몸조심하라며 전화를 끊는다.
지진을 핑계로 타지의 동생에게 답답한 마음을 내보이고 싶었는지...... 서울에서 살면서 맞벌이 부부가 온전히 둘의 힘으로만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의미인 것인가?
괜히 무거워져 오는 마음
이후 함께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해외 살이 독박 육아다 뭐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크는 거 온전히 부대끼며 옆에서 보면서 키울 수 있는 게 감사할 일이다, 말하면서도
한국의 힘듦 에서 이탈리아의 어려움에서 적당히 한 발짝 때고서 그 미묘한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자꾸만 생각이 많아지는 날들이었다.
그로부터 1년,
한국은 대통령이 바뀌었고 그 사이 유럽은 지진보다도 테러가 더 큰 위협으로 도래했다. 가족들의 전화통화 말미엔 언제나 이 곳의 치안을 걱정하지만 정작 이 곳의 사람들은 한국의 전쟁이 더 큰 걱정이다.
먹거리, 전쟁, 지진, 테러, 오랜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원초적인 걱정이 삶을 지배한 적이 있었나 싶다. 이 와중에도 가장 큰 고민은 육아라니 결국 이래저래도 당장 내 앞의 삶이 가장 중요하구나 싶다.
이도가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나자 온몸으로 엄마 뱃속 밖의 환경에 적응해가는 성장통으로 태열이 올라왔다. 세상의 모든 성장통이 그러하듯 천천히 힘겹게 지나가겠지만 그 후엔 아이를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을 믿는다. 태열이 지나간 후 아이의 피부는 더욱 부드럽고 윤기가 나게 됨을 그 무엇보다 시간이 약임을 첫째를 통해 배웠다. 첫째 때는 안절부절못하던 초보 엄마는 둘째 앞에선 담담하게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만큼 튼튼한 아이지만 피부만큼은 아주 예민하다. 돌 전 이유식과 함께 시작된 아토피는 겨울이 오면 모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 만큼 더욱 심해진다. 부작용을 알면서도 피부에 진물이 나올 만큼 심해지면 스테로이드 연고도 써보고 좋다는 로션은 수소문 끝에 구해 발라줬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낫는가 싶다가도 어김없이 다시 올라오던 아토피
최근 이탈리아 약국에도 아토피 로션을 찾기가 쉬워졌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생소해 소아과를 가도 스테로이드 연고나 보습용 로션 자주 발라주라는 이야기뿐이었다. 결국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었다. 이 방법 저 방법 끝에 다다른 것이 바로, 노 로션, 노 샴푸였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아이의 피부가 스스로 강해지는 시간을 가지도록 기다려주자.
의외로 가장 많은 아토피의 원인이 로션과 세제라는 글을 읽고 어떤 방법으로도 근본적으로 낫지 않는 다면 아이에게서 화학적인 성분들을 배제시켜보자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나타나는 피부 트러블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인데 아이들의 피부가 제대로 적응도 하기 전에 로션이나 연고를 써버리면 결국 로션에 의한 보습이 필요한 피부가 되어 버릴 수밖에, 안쓰러운 마음에 이런저런 로션과 연고를 발라주면서 정작 아이가 세상에 적응할 시간을 빼앗아 버렸던 것은 아닌지……
위의 글을 쓰고 얼마지 않아 '안아키 사태' 가 인터넷을 달궜다. 그 사건에 대해 옹호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맹신(?)하게 된 심정에 대해서는 알 것도 같다. 나 역시 노 로션에 도달하게 된 것은 이 전에 로션과 연고를 거쳐오며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션이나 스테로이드 연고를 끊고 아이의 피부가 나아짐을 경험하게 되면 접종이나 약에 대해서도 불신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무엇에 있어서든 과유불급.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옳지 않다. 여하튼 난 두 아이 모두 최대한 로션과 세제에 있어서만은 배제를 하고 있다. 물론 노 로션을 했다고 해서 아이가 획기적으로 나아졌다거나 완치가 된 것은 아니다.
단, 악화가 되지는 않았다.
완치와 최악의 상황 그 사이에서 진행이 멈추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 주고 난 후에는 피부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재발했고 재발 후엔 어김없이 전 단계보다 심해졌다. 로션과 연고를 끊고 피부는 당연하게 안쓰러울 만큼 건조해졌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여름까지만 지켜보자 싶었다. 잠든 아이가 몸을 긁을 때면 밤새 아이 곁을 지키며 몸을 만져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아이들의 피부에 가장 좋은 것은 햇빛, 곧 봄이 오고 여름이 올 테니 즉각적인 효과가 없다 하더라도 여름이 지날 때까지 아이의 피부에 쉬는 시간을 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서 서서히 피부가 부드러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워낙 이탈리아의 태양이 강해서 뜨거운 날에는 알로에 100% 젤을 발라주었다.)
여름이 오고 새까매질 만큼 태양 아래에서 뛰어놀고 바다에 몸을 담그던 아이의 피부가 구릿빛으로 변해가는 만큼 피부결도 깨끗해져 갔다. 태어난 후 몇 번 느껴본 적 없는 부드러운 살이 나에게 닿기 시작했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이탈리아 어른들은 피부질환에는 무조건 바다에 가라고 한다. 내년에는 더욱 부지런히 바다를 다녀야겠다.)
물론 불쑥불쑥 피부는 거칠어지고 아이는 어김없이 몸을 긁지만 다시 가라앉기까지의 시간이 갈수록 짧아진다. 거칠어진다 해도 진물이 나올 만큼, 피부가 벗겨질 만큼 긁던 아이를 겪어본 나에겐 이 정도의 거침도 그저 감사할 정도다. 피부가 아주 천천히 강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둘째는 지금 생후 9개월, 역시나 로션과 세제는 쓰지 않는다. 우려했던대로 둘째도 첫째와 같이 이유식 시작과 함께 피부가 거칠어지고 얼굴에 발진이 올라왔다. 속상한 마음에 바로 로션에 손이 갔지만 참고 일주일만 지켜보자 마음먹고 기다리다 보면 서서히 나아지고 만다. 여름철 오빠와 함께 알로에 젤만 발라 주었다. 이번에는 기저귀 크림도 거의 쓰지 않았다. 다행히 40도가 넘는 엄청난 더위에도 땀띠에 기저귀 발진 하나 없이 여름을 보냈다.
로션이나 연고를 쓰면 획기적으로 나을 것을 아는데 손 놓고 있음에 대한 불안감, 어떻게 보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 엄마의 당장 효과를 보려는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해주는 것보다 지켜봐 주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 그 시간과 과정은 더디지만 아이가 적응하길 기다려주는 것 또한 엄마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임을 깨달아간다.
아이가 성장통을 겪는 시간을 빼앗지 말자.
작년 9월 아들은 어린이 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들어갔다. 첫 몇 주는 유치원이 어색해서인지 어린이 집으로 들어가 선생님 손을 잡고서 겨우 유치원으로 들어가던 아들은 금세 친구들 이름을 부르며 쌩~하고 유치원에 들어가 버린다. 유치원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쉼 없이 종알종알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 여름의 태양 아래의 한 달이 이렇게 나도 모르게 아이를 자라게 하는구나 싶다.
당시 아들에게 한 가지 더 생활의 변화가 생겼으니 수영장이다. 돌만 지나도 팔에 튜브를 끼고 수영장에 뛰어들어 노는 물과 친한 이탈리아 아이들과는 달리 극도의 물 공포증에 유아용 풀에서만 몸을 담그려던 아이를 동네 수영장에 보내기로 했다.
엄마 아빠랑 함께 물놀이를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던 아들은 한 시간 내내 수영장이 떠나갈 듯 울다 수업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울다 지쳐 물에서 잠들어버린 거다.
잠이 든 건지..... 현실도피로 차라리 잠을 자버리자는 것이었는지…… 아님 졸도를 한 건지……
아들은 하루 만에 수영장 개장이래 울다 잠든 최초의 아이가 되어 유명해져 버렸고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행여 울음을 그치면, 선생님들도 함께 지켜보던 엄마, 아빠들 모두 한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응원해 주었다.
“지금은 안 울어요. 처음엔 다 그래요. “
그래도 이 어미의 마음은 다들 안 울고 저리 재밌게 노는데 홀로 저리도 쉼 없이 울기만 하는지 안쓰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역시나 종일 수영장에서 울고 나온 어느 날,
수영장에 데려가느라 지치고 한 시간 내내 울어버리는 통에 괜히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에게도 눈치가 보이고, 녹초가 되어 수영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아…. 해도 해도 너무하네…..
잠시 나무 아래 비를 피하고 있는데 비가 잦아들더니 무지개가 떴다.
엄마! 엄마! 무지개! 너무너무 커!! 티라노사우루스보다 크고 브라키오 사우루스보다도 더 커!!
언제 울었냐는 듯 신이 나서 내 앞을 뛰어가던 아들이 뛰어도 뛰어도 계속 무지개가 보이자 뒤 돌아보며 나에게 소리쳤다.
엄마! 엄마! 아까도 무지개 있고 여기도 무지개 있어!!!!
무지개는 어디에나 있어!!!!!"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지난 달부터 내내 짓누르고 있던 무기력함과 허탈감에서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적응하느라 헤매고 있으면서 아들에겐 왜 그 시기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었던 걸까? 너무 당연해서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하기엔 오글거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무지개가 뜨기 위해서 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무지개를 만나기 위해선 먼저 비에 젖어야 하는 것을 말이다.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이무너진 한국, 보이는 많은 것이 무너진 이탈리아,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허물어진 나의 일상, 그 와중에 아들에게 재촉하던 이기적인 나.
아들의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어 앞에 달려가던 아들에게 외친다.
기다려!! 같이 가!!
아들이 돌아보며 웃으며 나를 향해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어요!! 손잡아 줄게요~
며칠 후 아들은 처음으로 홀로 수영에 성공했다.
물론, 그다음 주 다시 오열하며 선생님 등에 매달려 있었지만......
아들은 이 후로도 수영장에서 많이도 울었다. 겨울이 왔고 몇 번의 기침과 한국 휴가로 수영 수업은 결국 멈추게 되었다. 종종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보았지만 어김없이 대답은 싫다였다.
그렇게 다시 여름이 왔고 짧은 휴가에서 아들은 홀로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극복한 아이는 내친김에 얼굴을 물에 넣고 잠수를 했고 그 날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하루는 잠들기 전 나에게 다시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안이는 이제 형이야. 커졌어. 그땐 아기였고, 아기는 우는 거야.
그런데 이제는 커져서 수영장에 가도 될 거 같아.
그래, 믿자. 그리고 조바심 내지 말자.
비는 그치고 무지개는 어디에나 떠오를 테니…..
피부에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는다.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물에 뛰어든다.
조바심을 내지 말자 다짐하며 글을 쓰던 시간에서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아이는 오빠가 되고 형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가 이만큼 커졌구나 방심하는 순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새 친구가 생겨서 슬프다며 속상해하는 아이의 말에 아이를 재워두고 내가 더 속상하다. 아이의 피부만 나아지면 수영을 좋아하게 되면 겨우 두 개의 욕심뿐이 었는데 하나 둘 욕심이 더해지고 또 이렇게 조바심이 내 곁에 다가와있다.
1년 전과 같이 되뇐다.
아이가 성장통을 겪는 시간을 뺏지 말자.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라 있을 테니 우리 함께 성장해나가자.
나도 멋지게 성장통을 맞이 할 테니 너의 성장통도 응원한다.
파이팅.
written by_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었던 글을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