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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Jan 10. 2024

남는 게 없는데 왜 하는 거야?

 그거! 사업하는 사람에겐 금기어야!!!!


두란은 편지를 썼다.
민주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김민주 작가님께

북토크 지나고 바로 편지 쓰고 싶었는데 이러저러한 일로 늦어졌지만, 오히려 다시 찬찬히 그날을 뒤돌아보니 더 진한 감동이 묻어 나오네요. 작가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책을 읽고, 창고살롱 줌 북토크에 참여하며 작가님이랑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도대체 저는 어디서 작가님께 반한 걸까요?  

곰곰이 들여다보니 작가님의 책을 만난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지금도 하루에 수백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읽지도, 알지도 못하는 게 얼마나 많고, 좋은 책 추천은 여기저기 많지만 딱 그 시기에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을 읽은 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로 모든 게 멈춘 절망적인 시간 속에서 솔직 담백하게 쓴 문장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제 마음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거든요. 이 과정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그럼 신이 주신 선물에 조금 더 마음을 더하면 작가님을 뵐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코로나를 지나며 배운 게 있다면 1) 고마운 사람에게 즉시 고맙다고 인사하기. 2) 가능하다면 꼭 만나서 눈빛 마주하고 말하기. 이 두 가지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작가님 한국에 오시면 찬이 님이랑 만나지 않을까? 그럼 내가 밥이나 커피를 사면 어떨까? 그런데 이왕 좋은 건 함께 나누면 더 좋지 않을까? 나도 우연으로 작가님의 책을 통해 용기를 받았다면 누군가도 북토크로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더 큰 에너지를 받아서 앞으로 더 좋은 작업을 한다면 이거야말로 나에게 더 이득이 되는 일 아닌가! 우리끼리 만나는 것보다 이게 더 시급하다! 밥은 북토크 끝나고 먹자고 해야지! 이렇게 생각한 저를 꽤 오래 칭찬했고, 작가님 시간이 안 될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게요.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지난번에 다른 행사로 가 본 북티크가 딱 떠올랐어요. 분위기며 위치며 너무 딱이야!

그런데 문제는 사회였어요. 혼자 이걸 끌고 가기엔 제 힘이 부족했거든요. 그때 찬이 님께 제 생각을 전했더니 너무 고맙게도 찬이 님이 맡아 주신다고 하셨죠. 함께 하는 든든한 동료까지 더하니 시작도 전에 이건 무조건 잘된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제가 바라던 상상보다 더 크게, 심하게 좋았던 귀한 날이에요. 제가 한 일이라곤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았을 뿐인데 제일 큰 선물은 제가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감사 편지를 씁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그중 제일은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나이도, 사는 곳도, 성별도 모두 다르고, 전부 처음 보는 사이인데 보드게임으로 하나가 되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으로도 넘치게 좋았어요.  로마가족에게 어울리는 북토크 모습이랄까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 만든 자리에 모두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귀한 시간을 내주신 작가님께 진짜 진짜 감사드려요.


두란은 수제 그래놀라 '고마워서 그래'의 대표다.


그녀의 시작은  아이의 음식 알레르기가 고맙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첫째의 돌 무렵, 아이의 음식알레르기를 알게 되었다. 그중 우유와 계란 알레르기 수치가 꽤 높아 시중 빵이나 과자 등을 먹을 수 없었다.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갈 위험 때문이었다. 가정보육을 꽤 오래 하다가 어렵게 간식과 도시락을 엄마가 싸는 조건으로 유치원에 보냈다. 그러나 아이는 친구들이 먹는 걸 자기는 왜 먹을 수 없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두란은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찾아 비건 빵집 여행을 다녔다. 지금이야 택배도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서울 이태원, 홍대 정도는 가야 겨우 아이에게 먹일 빵을 구할 수 있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키우니 몰랐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전체 간식 시간이나 각종 체험 학습 활동에서 제외되는 등 실질적인 차별은 물론 아이 엄마도 마음의 상처를 당할 일이 많았다.  알레르기 정도에 따라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말들이 두란에게 꽂혔다.


 먹다 보면 적응된다.
엄마가 태교를 잘못해서 그렇다.
유난스럽다


그러다 온 가족 미국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알레르기를 대하는 태도가 정말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식당에서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대해 미리 안내가 되어 있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면 정말 친절하게 대체 음식까지 안내했다. 두란은 깨달았다.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두란은 비건 베이킹 공부를 시작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든 없든 '차별 없이 믿고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내가 먹는 것들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걸까?' 지금까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건 세계가 너무나 궁금했다. 두란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돌보는 이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음식 알레르기는 불편하지만 아이의 음식 알레르기가 고마웠다.

두란은 미운 음식 알레르기 덕분에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두란은 존경하는 여성학자 박혜란 선생님께서 셋째 초등 입학과 동시에 여성학 공부를 시작하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렸다. 나도 언젠간 뭐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꿈을 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아이의 알레르기 수치는 자꾸 높아만 갔다. 선택이 필요했다. 초등 입학하면 급식 대신 도시락을 보낼 다짐을 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학생 수가 적으면 더 신경을 써주실까 싶어 시골 학교로 보내려고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하반기 어느 날, 아이의 음식 알레르기 수치가 극적으로 하락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이건 기회다.' 싶었다. 아이의 알레르기가 개선된다 해도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을 행할 기회.  엄청난 요리 실력을 갖춘 것도,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무식한 용감함이 있었다.


  [고마워서 그래] 의 시작이다.

사진출처 | 인스타그램 @mayonnaisemagazine


두란은 지금은 수제 비건 그래놀라와 비건 브라우니를 만들지만, 나중엔 음식 알레르기 아이들을 위한 쿠킹 클래스, 음식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 개선, 비건에 대한 작은 생각, 일하는 엄마,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 두란이 좋아하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다.


2020년 2월 초 무엇에 홀린 듯 부동산을 계약했다. 3월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부동산 계약하자마자 몇 주 뒤에 코로나로 모든 게 멈췄다. 아이의 초등 입학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하마터면 고마워서그래는 세상 빛도 못 볼 뻔했다. 하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지금까지 왔다. 참 신기했다.


'고마워서 그래' 라고 이름을 짓길 잘했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두란은 왜  민주에게 마음이 자꾸 갔을까? 두란은 나름 꽤 매 순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며 달려왔다. 분명 감사할 일이 넘치지만 나름 음식 알레르기로 오랜 시간 고생했다고 생각했고, 이젠 그 보답으로 고마워서그래가 잘 풀리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태풍이 몰아쳤다. 두란이 쓰러졌다.


억울했다. 내가 돈을 엄청 번 것도 아니고, 엄청 유명해진 것도 아닌데, 이제 좀 잘해보려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욕심을 부려서 이런 걸까? 별별 생각이 부풀어 올랐다. 무기력함과 우울증이 함께 찾아왔다. 끝없이 아래로 내려다던 두란을 붙들어 준 것이 책이었다. 읽고 또 읽으며 두란을 가득 채운 검은 그림자를 걷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문장을 만났다.


“불확실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세상에 무모하다는 이유로 도전을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_김민주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제철소, 2021


이 문장 하나를 붙들었다. 두란은 할 수 있겠다. 용기가 생겼다. 이번 생은 두란을 아주 단단하게 키울 작정인가 보다. 두란은 민주의 문장을 마음에 품고 한 발 한 발 나아가기로 했다. 고마워서그래는 곁을 내어주는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다. 두란이 받았던 고마운 에너지들을 잊지 않고 좋은 곳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두란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며 더 많이 사랑하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살 것이다. 두란은 넘치게 감사했다.


두란은 그 표현을 현실화시켰다. 여름휴가차 한국에서 머무는 민주의 가족을 위한 북토크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그리고 지난 북토크의 소회와 함께 그녀의 깊은 마음을 꺼내어 글로 옮겨 민주에게 보냈다.


며칠 뒤 두란은 민주의 답장을 받았다.


두란님께,
안녕하세요.
로마의 새벽에 쓰는 편지입니다.

로마에 돌아와 몇 번을 편지를 쓰려고 앉았는데 이렇게 새벽이 되어서야 이야기를 시작하네요. 로마에 다시 돌아와 남은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고 이안과 이도의 새 학기 준비도 잘 마쳤습니다. 다들 방학이 길어서 힘들겠다고 하지만 이방인 엄마의 솔직한 속마음은 학교 생활 신경 쓸 일없는 방학이 더 좋답니다. 그래서 아이들 방학이 끝나는 날 마치 저의 여름방학이 끝난 듯 아쉬웠어요. 정신없이 숨 가쁘던 한국에서의 찐한 시간을 보내며 미적지근 시간이 흐르는 로마가 그립기도 했는데요. 다시 로마에 돌아오니 여유 사이로 다시 조급함과 불안이 스며듭니다. 한국에선 다들 그리도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데 로마에서 다시 정체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요.

예전 같으면 또 뭔가 해보려고 시도하고 애썼겠지만 이번엔 좀 달랐어요. 9월은 정리정돈의 달로 하자. 무언가를 채우기보다 비우는 시간도 필요해. 사람의 그릇은 넓혀야지만 더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비우는 것 또한 그릇을 넓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 깨달았거든요. 비우지 않고 채우기만 하니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보이질 않아 기준도 목적도 방향도 없이 다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방 한 면, 서랍 하나씩 정리하고 정돈해 보자. 그렇게 한 달을 하루 30분 정도 투자해서 매일 부담 없이 정리를 해나가고 있어요.

겨우 서랍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버릴 것들이 나오는지 아세요?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구나. 이렇게 구입했던 것은 버리게 되는구나, 이렇게 구입했던 것은 오래 쓰게 되는구나. 그 시절엔 꼭 필요했던 것이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구나. 예전엔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이제는 미련이 없이 버릴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게 하나 둘 정리해 나가며 앞으로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하는지 채우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이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정리정돈으로 쓰게 된 것은
두란님 덕분입니다.

작년 겨울부터 심한 무기력을 앓고 있었어요.
지난 3년 정말 열심히 달려왔고 그만큼의 굵직한 성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코로나 이후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제 주변의 관계들, 남편과의 사이까지 많은 것들이 틀어져있었어요. 내 욕심 때문일까? 내가 이루고 싶은 것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걸까? 왜 모두 나에게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해?" "너무 유난스럽지 않아?"라고 하는 걸까. 나의 열심에는 문제가 있는 걸까? 제가 해 왔던 일들 앞으로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이 무가치해 보였어요.

나아가는 일이 무서웠어요.
예전 같으면 한국 휴가를 앞두고 이것저것 해보려고 안달을 냈을 텐데 그런 마음이다 보니 이번 한국행에선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마음으로 갔던 한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들을 만들고 돌아왔네요. 내가 애쓰던 시간들이 쌓여서 이제는 스스로 흐르는구나. 주변에서 날을 세우고 부딪히던 관계들에서 다음 시절로 넘어왔구나. 내가 쌓았던 일을 좋아하고 나의 열심을 고마워해주는 세계도 있구나. 그 생각들이 폭발된 순간이 두란님과 찬이 님이 만들어주신 북토크 자리였어요.

다시 나아가고 싶다.
밝고 건강하게, 그리고 철부지 시절의 시간을 관통하며 일, 돈 그릇만 키우려 했지만 이제는 관계들을 소중히 여기며 담아 나갈 마음의 그릇을 잘 다듬어보자. 전, 제가 겪은 무기력이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로마로 돌아오기 이틀 전, 달리 운동장 수지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깨달았어요. 두란님과 수지님이 함께했던 푸드 마켓 이야기를 들으면서요. 모두 함께 내년 여름엔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하는 캠프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북토크도 하고, 그래놀라도 만들고, 피자도 만들고, 운동도 하고, 함께 책도 읽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쉬고, 놀고, 웃는 그런 시간을요.

가슴이 뛰었어요.
그때 알았어요. 저의 무기력의 이유를요.

다음으로 나아가면?
그다음에 만들어나가고 싶은 것이 뭐야?

저는 그 답을 찾지 못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거예요. 전, 이탈리아의 일상 속 작은 깨달음들을 전달하고 싶어요. 저라는 사람을 키워준 이탈리아의 친절, 여유, 사랑을 글로, 영상으로 올리브 유에 담긴 이야기로 잘 버무려 전해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각자의 일상 속 깨달음과 기쁨을 각자의 방식으로 전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신나는 일들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제가 과연 그만큼의 역량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는데 북토크를 하고 두람님을 통해 여러 인연들을 알아가며,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면 할 수 있겠다!라는 용기가 샘솟았어요.

그러자 지금 제가 해야 할 일들이 보이더라고요. 모든 모험 만화에서 주인공들은 동료를 만나잖아요. 한 권 한 권 새로운 모험 후엔 새로운 동료들이 합류하지요. 우리의 만남들이 한 권 한 권의 모험 속에서 만나는 동료들 같아요. 한국에선 만났던 누군가, 지난 시간 해왔던 일들을 듣고 그랬어요.

"정말 신나는 인생이네요."

두란님의 편지를 읽으며 고마워서 그래의 성장기를 읽으며 저도 생각했어요.

"정말 신나는 인생이다."

신나는 인생들이 만나면 얼마나 신나는 일들이 생길까?
신나는 일들과 함께 아이들이 성장하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재능이 없기 때문에 계속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해요. 서툰 지난 시간 덕분에 현재를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게 된 것에 감사해요. 기록으로 인연이 만들어지는 기적에 감사해요. 여름 방학을 앞두고, 제가 겪었던 무기력이 삶에 순응하게 해 준 기회였음을 깨닫습니다.

함께 신나는 일을 만들어요.
이 모든 용기의 씨앗을 뿌려준 두란님, 정말 고마워요.
또 편지할게요.

로마에서 김민주 드림


2013년, 민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는 초보엄마의 고충이 담긴 글이었다. 글의 독자는 민주가 알고, 민주도 아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민주가 모르는, 민주를 모르는 사람들에 글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 글은 아들의 아토피에 관한 글이었다. 민주는 글 속에 악다구니를 쏟아부았다.


난 아름다운 말을 해주기에 사랑을 담아 뽀뽀를 해주기엔 아이의 피부가 너무 원망스러웠고,지쳤다.
출구가 없는 미로를 혼자서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출구야, 하고 문을 열면 깜깜한 미로가 새롭게 시작되는.... 밤에 잠을 깼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아이가 긁는 말 든 거실에 홀로 누웠는데 해가 뜰 때까지 울었다. 며칠을 새벽까지 울었다. 멍하니 있다가 울고 아이에겐 화내고 그러다 무서워졌다.

엄마라는 것이 너무 무거웠다.
아이를 위해 했던 지난 모든 것들이 다 아이의 피부를 망치기 위해 했던 것만 같았다. 임신 때부터의 모든 것들이 아토피의 원인 같았다. 내가 뭐라고 나의 결정 나의 행동이 죄다 아이에게 드러난 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무거웠다. 엄마의 칭찬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따위의 글만 봐도 욕지거리가 나왔다. 젠장! 성격 타고나는 거지! 피부고, 미래고, 성격이고, 지능이고, 뭐가 죄다 엄마 탓 이래!! 어쩌라고!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_김민주 [로마에 살면 어떨 것 같아?] 생각정거장, 2019


그 글이 아이의 아토피로 밤을 지새우는 지새는 엄마들에게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민주의 마음이 꿈틀거렸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구나.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아토피는 불편하지만 아이의 아토피가 고마웠다.

민주는 미운 아토피 덕분에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민주의 중학교 시절, 매달 기다리던 패션 잡지책에서 가장 먼저 펼쳤던 것은 심리테스트였다.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시작은 같은 점이었지만  첫 질문부터 서로의 답은 다른 방향은 향하고 다음 질문 다음 질문이 이어지며 그들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마지막엔 상이한 알파벳 위에 선 자신들을 발견했다.


어느 날, 온라인으로 알게 된 엄마들과 얼굴을 대면한 적이 있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선희는 뉴욕, 나연은 서울, 민주는 로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휴가를 맞아 서울에 모인 셋이 압구정 어딘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수없이 만났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세계로 소환된 셋은 신기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요?


나연이 특유의 평온하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무심한 듯 잔을 쓰다듬으며 낮게 말했다. 부끄러워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그녀의 말속에는 언제나 단단함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고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닮은 선택을 한 거예요.


모두가 심리테스 같은 자리에서 시작할 , 어쩌면 그들은 거꾸로 출발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다른 알파벳에 서서 시작했지만 그들은 삶의 어떤 순간마다 닮은 선택을 했고 결국 같은 출발점에 섰다.


삶은  신기하다. 생의 주기마다 다시 출발점에 서게 만든다.  출발점에서 이전까지 함께 했던 이들  몇몇은 방향이 바뀌고 몇몇은 같은 길을 향한다. 그리고 방향이 바뀌어 헤어진 이들의 자리엔 어김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진다. 그렇게 선희 나연 민주가  출발점에서 겹쳤다. 앞으로도 닮은 결정을 하게 될지는   없다. 누군가는 같은 알파벳으로 누군가는 다른 알파벳으로 나뉘게 되겠지. 하지만 그들은  순간만큼은 같은 점을 밟고 섰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선희와 나연과 대화를 하던 순간, 민주와 두란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모르는 순간에도 닮은 선택을 하며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민주는 두란을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그래놀라를 먹었고, 두란은 민주를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결국, 만났다.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고 민주가 먼저 제안했다.


저와 함께 기획 상품을 만들어요.


민주와 두란


둘은 시간을 잡고 ZOOM 화면 앞에 앉았다. 둘 사이엔 8시간의 시차가 있다. 8시간이 늦은 민주가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8시간 빠른 두란의 아이들이 학원에 있을 시간이다. 둘에게 허락되는 것을 단, 2시간.


시차와 육아의 틈을 파고들어
두 여자는 자신들의 업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혼자 일하던 두 여자의 가슴이 뛴다. 혼자 수많은 역경들을 헤쳐나가면 의지하고 기댈 동료가 절실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민주가 부가세신고를 하며 투덜거렸다.


“하…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그 말을 들은 월급쟁이 남편이 한마디 툭 던진다.


남는 게 없는데 왜 하는 거야?


민주가 고개를 훽 돌리며 소리쳤다.


그거! 그거!
사업하는 사람에겐 금기어야!!!!
마이너스 아닌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해!
그렇게 말하란 말이야!


드디어 '남는 게 없는데 굳이 하고 있는' 여자, 둘이  만났다.


우리 함께 만들어보자. 두란과 민주가 동시에 소리쳤다.


진짜 재밌겠다!


그리고 대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둘은 같은 생각을 했다.


근데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민주와 두란

환장한다.


지들 혼자 하는 사업만 할 줄 알지 함께 할 때는 뭐부터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른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둘이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민주는 안다.

모른다는 것이 일의 시작에서 있어서 그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두란은 안다.

시작하지 않고서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두란과 민주는 수많은 닮은 선택을 거쳐 비로소 한 점에 섰다.


다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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