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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Jan 11. 2024

불혹 ; 불같이 혹한다.

죽을만큼 일하면 진짜 죽을 수 있는 나이


"모르겠어요. 그 감정을 질투라고 해야 할지... 달리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데.. 질투였던 것 같아요. 누군가 무엇을 한다고 하면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누가 무엇을 한다고 하면 도와주고 싶고, 무언가를 보면 하고 싶고, 며칠 전에 아는 분이 어떤 일을 한다고 하길래 제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한 분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두란님, 두란님 일부터 챙기고요. 제가 제일도 챙기지 못하면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돕고 싶고 또 질투하고 자꾸 휩쓸려요. 며칠 전엔 구독 취소를 했던 어도비가 여전히 매달 돈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생 돈이 나가고 있는데 화도 나고 그런데 그걸 해지하려니 5만 원을 내래요. 그 상황에 아이가 힘들게 하니 거기에 화풀이를 했는데, 저도 알고 있었어요. 제가 진짜 화가 났던 건 어도비도 아이 때문도 아니에요. "


두란은 말하며 생각했다. '내가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린 같이 협업을 하는 사이인데. 나 이것밖에 안된다고 까발리는 꼴이잖아. 화끈거려. 너무 부끄러워. 속상해.' 민주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눈빛으로 당혹과 반성과 불안과 조바심이 뒤섞인 화면 속 두란을 바라보았다. 민주는 두란과 똑 닮은 사람을 안다. 4년 전 두란과 같은 마음으로 널뛰던 사람을 안다. 4년 전, 민주가 지금을 두란의 나이였을 때 딱 저랬다.


4년 전, 민주는 곁의 모두가 질투가 났다.


시기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다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었다. 다 해야 할 것 같았다. 다 해봤다. 욕심이 과했다. 그땐 그게 민주의 성격인 줄 알았다. 돌이켜 보면 꼭 성격 탓은 아니었다. 20대와 30대 초엔 뭘 해도 손에 잡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35살이 넘어가며 시도를 하면 작든 크든 결과가 나왔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제대로 집중을 못하던 시기가 점점 아이에서 나로 무게 중심이 기울어졌다.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은 민주의 시간이 확보된다는 의미기도 했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공백만큼 민주만의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가 가장 많은 글을 썼던 시기기도 했다.


비단 민주만이 아니었다. 30대와 40대의 경계에 선 모든 인간들이 그랬다. 뭔지 모르지만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뭔지 모르니 sns 속에서 사람들이 다들 한다는 것으로 몰려들었다. 직장인은 사이드잡을 해야만 할 것 같고, 엄마들은 글을 써야만 할 것 같고 글이 안되면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고, 아빠들은 재테크를 해야 할 것 같고, 여하튼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한다고 자신들을 몰아붙였다. 진짜 실행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하는 사람도 안 하는 사람도  불안하고 조급하긴 마찬가지였다. 30대와 40대의 경계에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 육아가 조금은 능숙해지고 여유가 생겼다는 반증이다.  인간은 적응하기 바쁠 땐 곁을 보지 못한다. 어쩌면 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여유 사이로 평화가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틈사이로 먼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불화다. 불안과 조바심이 먼저 공백을 채운다. 그렇게 40대로 넘어가는 시간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만다. 불혹을 누가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이라고 하느냐? 감히 공자에게 대들어 본다.


불혹은 [불같이 혹한다]라는 뜻이다.
여기도 저기도 화르르 유혹당해 버린다.


왜 그렇게 조바심이 났을까? 그건 '하면 된다'는 것을 민주가 느꼈기 때문이다. 유튜브 영상을 올리면 아주 작은 기회라도 잡게 되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 작게 잡지에도 글이 실릴 수 있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 댓글이라도 달려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이 불안했던 거다. 그 사람이 하면 어떤 기회를 얻을 것을 알아서. 민주의 바운더리에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그 사림이 그 기회를 가지면 민주는 놓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애초에 민주의 것이 아니었지만 마치 빼앗긴 것 같았다. 모두가 그만그만한 수준이라서 한 가지 일로 이내 따로 잡고 따라 잡혔다. 조바심이 여기에서 왔다. 내 기회를 빼앗길 것 같은 기분, 내가 뒤처질 것 같은 마음.


그 마음이 절정일 때 코로나가 닥쳤다. 훗 날 민주는 생각했다. 신이 준 기회가 있다면, 코로나였다고. 유혹에 널뛰던 민주에게 코로나가 판을 깔아주었다. 펜데믹이라는 극단의 상황은 한 가지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민주는 달려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널뛰며 이것저것 휩쓸려 다니며 해 보았던 모든 일들이 죄다 쓸모였음을.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관련성을 찾을 수 없던 그 모든 일들이 사람들을 연결시켰고 온라인에서 기회를 만들어 민주가 하나의 일에 몰입하기로 한 시점에 하나의 지점으로 에너지를 몰아주었다.


이제 민주는 더 이상 널뛰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보이는 모두를 시기하고 질투했는데 요즘은 잘하는 사람들은 더 잘하면 좋겠고 힘든 사람은 더 힘을 내면 좋겠다. 그리고 잘하고 힘을 내는데 민주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날아갈 듯 기쁘다. 누가 먼저 앞서 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민주는 민주의 트랙을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글쓰기를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유튜브를 시작했던 사람들 중 여전히 유튜브를 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무엇이든 시작했던 사람 중에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먼저 달렸다고 먼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 늦게 출발했다고 해서 마냥 늦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가고 있는가? 였다. 그리고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책을 출간했고 여전히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은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4년 전 민주는 거의 자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 따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냥 새벽 4시면 눈이 떠졌다. 하루가 부족했다. 지금 민주는 하루 8시간 수면은 반드시 채운다. 절대 밤샘 작업은 하지 않는다. 죽을 만큼 열심히 하면 진짜 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면 30대와 40대 경계에 유혹에 불나방처럼 흔들리는 이유는 죽을 만큼 일해도 죽지 않는 마지막 나이의 경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이 시간이 지나면 힘들어서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것을.


불나방이라니 떠오르는 사람이 또 있다.


민주의 남편 재선. 재선이 30대와 40대의 경계에 불나방처럼 일에 달려들었다. 불나방을 넘어 하루살이 수준이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몸을 불살랐다. 민주와 재선은 신혼이었다. 가이드가 업인 재선은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입했다. 하루종일 투어를 하고 밤에 나가서 무료로 대학생들 야경투어를 했다. 휴일인 다음 날에도 투어 모임 장소에 나가서 후배 팀의 인원이 많으면 소수의 손님들을 모아 또 투어를 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투어를 하고 투어를 하고 투어를 했다. 일만큼 신나고 자극적인 것이 없었다. 가이드 10년 차 그는 날아올랐다. 사람들은 그를 가이드의 신이라 불렀다.


민주는 20대와 30대의 경계를 지나고 있었다. 매일 재선이 쉬는 날만 기다렸다.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었다. 곧 아이도 가져야지. 차도 사면 좋겠다. 20대와 30대의 경계는 아이를 가지기에 최적의 시간대이니 민주는 본능적으로 가족을 만들어야 함을 알았다. 안타깝다. 민주와 재선의 생의 주기는 맞지 않았다. 안타깝다. 재선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에 서툴렀고 민주는 재선을 시간대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둘은 참 많이 싸웠다.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해받기를 원했다. 하루는 재선이 베네치아에 출장을 갔다. 투어 마지막 하루가 남았고 재선은 홀로 푹 쉬고 싶었다. 그런데 민주가 베네치아에 올라왔다. (와.. 진짜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민주는 어렵게 맞춘 쉬는 날, 함께 있고 싶었다. 그날 재선은 생각했다.


이렇게는 평생 살 수 없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이후 민주와 재선은 너무나 긴 시간을 싸워나가야 했다.


시간이 흘러 재선은 40대와 50대의 경계에 민주는 30대와 40대의 경계에 섰다.


마치 그때의 재선처럼 민주는 하루살이처럼 일에 달려들었다. 재선은 그런 민주를 신나게 응원하진 않지만 적어도 오래전 민주처럼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10년의 시간이 흘러 10년 전 재선의 나이가 된 민주는 이제야 그때의 재선을 이해한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나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이 너무 재미있고 욕심나고 신났구나. 그런 그가 제대로 널뛰지 못하게 했던 것이 미안했다. 이래서 어른들이 4살 차이가 부부에게 딱 맞다고 한 거다. 동갑이면 같이 널뛰어서 안되고 4살 차이 이상이며 생의 주기가 너무 어긋난다.


투어를 마치고 집에 오면 하루 종일 잠을 청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맛대가리 없어 보이는 블루베리와 셀러리와 마를 넣은 스무디를 벌컥벌컥 마시고 투어로 향하는 재선을 보며 한숨도 안 자고 밤늦게 소 한 마리 잡아먹고 아침 따윈 먹지 않아도 한 달 내내 일해도 전혀 지치지 않던 시절의 그가 일을 못하게 애 먹이던 어린 아내는 많이 미안하다.


재선이가 투어에 미쳤던 때에 민주도 가이드였다.


민주는 동료들과   어울렸다. 설상가상으로 재선과의 사이는 걷잡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료들은 다들 모여서 밥도 먹고 함께 놀러 가도 민주는 좀처럼  사이에 끼지 못했다.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자신이  문제가 있어 보였다. 당시 민주는 40대의 언니를 알고 있었다. 언니는 보고 싶은 그림이 있으며 밤비행기를 타고 러시아에 가서 그림을 보고 다음날 훌쩍 돌아왔다. 언니는 어쩜 저렇게 혼자서도 우뚝   있을까? 하루는 민주는 언니 옆에서 훌쩍였다. 늦은 , 산죠반니 대대성당  벤치에 앉았다.  자리에서 재선이 직접 만든 도시락을 먹여주며 민주에게 사귀자고 말했다. 민주는 남편과도 직장에서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자신이 너무 못나 속상했다. 훌쩍이던 민주의 등을 쓰다듬어주던 언니가 우아하게 박수를 쳤다.


"민주 씨, 축하해요. 드디어 맞는 방향을 찾은 거예요. 더 외로워져야 해요. 우린 외로울 때만 자신을 볼 수 있어요. 혼자일 때만이 진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 있어요. 민주 씨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원하는 것을 찾아 그 방향으로 가면 알게 될 거예요. 민주 씨가 찾지 않아도, 사람들이 민주 씨를 찾아올 거예요."


축하해요.
더 외로워져야 해요.


그 말을 따라, 민주는 외로워졌고 스스로의 방향을 따랐다.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며 29수를 맞이했던 민주는 언니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언니의 나이가 되면 저런 언니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2024년 1월, 민주는 두란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두란의 나이였던 민주와 재선이 스쳤다.

훌쩍이던 민주의 어깨를 감싸아주던 언니를 떠올렸다.

언니라면 지금의 두란에게 뭐라고 말해 줄 거예요?


어느덧 민주는 언니의 나이가 되었다.

언니는 지금 곁에 없지만 언니라면 이렇게 말해 주었을 것이다.


민주가 입을 열었다.


화끈하게 휩쓸려요.
지금만 할 수 있어요.
제대로 널 뛰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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