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성취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하지 않아야 할 부분만 정해 놓는다.
지난 화요일 독서모임에서 커넥터 아람님이 금광에서 캔 금광석을 제련하는 영상을 공유해 주었다. 영상에는 금광에서 금맥을 찾아 순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려졌다. 금광에서 금덩어리를 발견해 캐내는 것이라 생각한 나의 무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영상에서 '여기가 금맥이다' '여기가 노다지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영상을 시청하고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예명님이 그 장면을 언급하며 말했다.
"여기다 금맥이라고 알려주고 심지어 정확히 가리키며 보여주는데도 저는 전혀 못 알아보겠더라고요."
이후 순금으로 제련하는 과정은 더 기가 막혔다. 금가루를 분리하고 녹이고....그렇게 순금의 덩어리가 나타났다. 이후 그 과정을 다시 찾아보았다.
순금을 제련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글로 접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과정에 단 1의 '어쩌다' '우연히'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다'보니 금이 되었고, '우연히' 금이 발견 되었다가 아니다. '확실하게' 어디에 금이 있는지 알았고, '정확하게' 어떻게 해야 '완벽하게' 금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지 정확하게 금맥을 알아볼 수 있게 될까?"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 질문과 동시에 한 영상이 떠올랐다. 독서모임 직전 시청했던 인터뷰 영상이었다.
나는 요즘 티모시 살라메를 딥다이브 중이다. ( 갑분 고백 무엇? ) 그렇다. 딥다이브라고 쓰고 덕질이라고 읽는다. 그의 인터뷰 영상들에 매료되어서 빠짐없이 찾아보고 반복 시청 중이다. 그중 거의 20번 넘게 시청하고 여전히 무한 반복 중인 인터뷰가 영화 겟아웃의 다니엘 칼루야와 티모시의 대화 영상이다.
배우 두 명이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보통은 세대차가 나는 선후배 배우들이 연결된다. (데스커라운지의 1:1 버전 같다. 이후 데스커 라운지에서도 업계의 선후배가 함께 대화하는 순간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예외로 티모시와 다니엘은 비슷한 세대의 배우가 연결되어 대화를 나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살짝 그 둘의 상황을 설명해 보겠다.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은 2017년이다.
: 다니엘 칼루야는 1989년 생으로 청소년 대상 시리즈와 비쥬류의 장르 쪽에서 연기 경력을 쌓다 조건 필 감독의 [겟아웃]이 2017년 개봉하면서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직후다.
: 티모시 살라메는 1995년 생으로 연극과 영화에서 엄청난 오디션과 실패를 겪던 중 ( 오디션 중에 스파이더 밴드 있다.) 오디션도 없이 캐스팅되었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는 중이다. 대중에겐 2018년 공개되었기 때문에 인터뷰 시점의 2017년 당시는 영화계에서만 알아주는 배우였다.
이 둘의 대화 중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금맥을 알아보는 법'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티모시 : 지금은 당연히 조던 필이 <겟아웃>을 만든 천재 감독이란 걸 잘 아는데, 형이 '와, 진짜 이 사람 대단한 감독이구나' 싶었던 때가 언제야?
다니엘 : 스크립트 보고 알았어. 첫 줄부터. 성경에서 발췌한 글로 시작하는 걸 보니 세상 돌아가는 걸 아네, 싶었어. 작가 스스로가 방향을 제대로 알고 있구나 싶으면 믿게 되잖아.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왜냐하면 난 재미로 스크립트를 읽거든.
티모시 : 형... 정말....
다니엘 : 아니, 난 그냥 뭔가를 좋아하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그러다 보면 내가 왜 그걸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알게 돼. 그 모든 게 다 나 자신을 알려고 하는 거지. 난 대중의 감성에 더 가까운 것 같아. 정말 비현실적인 게... 최근 하기로 한 작품들은 2009년, 10년, 11년에 한 작품들 덕이야.
티모시 : 미쳤다.... 단편영화들은 어디 금고 같은 데 보관해 놔서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했는데...
다니엘 : 난 <겟아웃>이 큰 영화라서 한 게 아니었어. 내가 스토리를 믿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하게 된 거야.
(둘의 대화 당시 다니엘은 마블의 블랙 팬서 촬영을 마친 직후다.)
무명 시절의 단편을 보고 다니엘에게 스크립트를 보낸 조던 필 감독도, 조던 필 감독의 스크립트 첫 줄의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다니엘. 금맥을 꿰뚫어 보기까지 금가루가 금덩어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국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티모시의 말속에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재미로 스크립트를 읽는다는 다니엘의 말에 티모시가 소리친다.
나도 그 방법을 써야겠다!
좋은 배우라면 쓰는 방법 같아!
허무하게도 어떻게 돌아와도 성장을 위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하나다.
지금 당장 내가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당장 실천한다.
그렇다면, 내가 금맥을 알아보는 지점으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신호가 있을까?
티모시가 묻는다.
티모시 : 나도 이런 질문을 최근 많이 받아서 형한테도 한번 물어보고 싶어. 그걸로 어떻게 삶이 바뀌는지.. 안 바뀔 수도 있고, 안 바뀌는 게 더 건강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혜성처럼 나타났다! 하려나? 아닌가?
다니엘 : 난 그냥 특정 시기에 버스를 못 탔던 사람인 거지.
(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다는 뜻이려나? )
티모시 : 학교라고 하니까 궁금하다 정확히 언제?
다니엘 : 애들이 수업 끝나고 나올 때
티모시 : 이래서 내가 형이랑 이걸 하는 게 너무 좋은 거야.
다니엘 : 내가 스킨스에 출연했을 땐 시청자가 모두 내 또래였지. 그래서 말 그대로 비슷한 또래만 주변에 있었어. <블랙 미러>는 예술 영화를 아는 사람들만 알고, 근데 < 겟아웃 >은 진짜 전부를 아우르는 거지. 내 주변의 모두가. 내 친구들이 다 이걸 본 거야. <분노의 질주>를 보던 사람들이 <겟아웃>도 본다는 거지. 영화계 사람 말고 그냥 일반인 친구들이 그럴 때 변했구나 싶어. 보통은 신경들 안 쓰거든. 그때는 삶의 방향을 좀 달리해야겠다 싶지. 무슨 말인지 알지?
티모시 : 와, 대단해.
마지막으로 다니엘이 티모시에게 묻는다.
다니엘 : 다음에 뭘 할 계획이야?
티모시 : 아냐, 이제부터 내리막길 시작이지.
다니엘 : 뭘 하고 싶어? 어느 쪽으로... 뭐든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거니까. 넌 지금 막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선 거잖아.
2024년의 우리는 티모시가 어떻게 마음을 먹었는지 안다. 그가 들어선 새로운 세상이 가파른 오르막길임도 안다. 이후 수많은 인터뷰에서 티모시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며 자신이 정한 원칙들에 대해 반복해서 언급한다.
1. 뭔가를 성취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하지 않아야 할 부분만 정해 놓는다.
: 그냥 진실하게 보이자.
2. '창조와 분석은 다른 과정이다.'
: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할 땐 오로지 그에 집중해야 한다.
3. 오디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디션장을 나가는 그 순간부터다.
: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져야 금방 회복할 수 있고, 다음 오디션 때 불안 감 없이 여기 할 수 있다.
4. 영화가 하루아침에 주목받는 것보다,
한 번에 운 좋게 성공한 오디션보다,
지속적으로 많은 활동하면서 오디션에 접근해야 올바른 방향이다.
: 끊임없이 좋은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5. 협업하는 과정에서 받는 거친 피드백을 사적으로 받지 말라.
: 결국 팀작업이다. 어떤 피드백도 낯두껍게 받아들여라. 누가 무례하게 부정적인 코멘트를 한다 해도 지적받아도 그건 개인적인 게 아니다. 기술적으로 잘 이해 못 한 것 뿐.
그는 끊임없이 말한다. 좋은 배우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좋은 작업'에 참여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좋은 작업'이 무엇인가의 답은 그의 전환점이 된 두 영화의 거장이 그에게 한 말을 옮겨보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글은 마무리하지만 덕질.. 은 계속된다...
“티모시, 이 영화가 얼마나 특별한 지 잊지 말라. 고객들의 반응은 절대 계획에 없던 부분이다. 감사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건 우릴 일이 아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개봉 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말
“티모시, 우리가 원해서 만든 영화를 사람들이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어. 어쨌든 우리는 원하는 영화를 만들 거야.”
-[듄 1] 개봉 전, 드니 빌뇌브 감독의 말
[2017 다니엘 x 티모시 : 유튜브 @ella ]
[2017 LAFCA 어워드 Best Actor 상을 수상 소감 : 유튜브 @el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