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가슴 위로 물결이 출렁거린다

Lago di Martignano

by 로마 김작가

Lago Martignano

Lago di Martignano

- (Roma)


그 후로 십삼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어린 케이케이가 수영을 했다던 그 냇물을 상상했다.
아직 일곱 살이었던 케이케이가 팬티 차림으로 들어갔을 그 차갑고도 푸른 물을.
거기에서 그는 흘러가는 냇물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누워 있었겠지.
떠내려가는 케이케이.
결코 마르지 않을, 물기로 촉촉한 어린 몸뚱어리.
구름을 바라보며 케이케이가 숨을 쉴 때마다,
먼 훗날 내가 즐겨 안겨 있게 될 그 가슴 위로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아 따뜻해진 물결이 한가롭게 출렁거렸을 것이다.

- 김연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문학동네, 2009




로마에서 차로 40분을 달리면 만나게 되는 작은 호수가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로마와 전혀 다른 풍경이지만 이 지역은 로마에 속해 있다. 우리가 보는 로마란 결국은 우리가 보고 싶은 로마 인 것뿐인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10년을 로마에서 살아오면서 이 호수의 존재 조차 몰랐으니, 참……이 나라 사람들은 좋은 건 알리고 싶지 않은가? 정말이지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마인드 어쩌면 좋으냐.......


친구 가족이 매년 여름이면 향하는 근교의 호수가 있다고 몇 번 이야기는 했었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호수는 별로, 여름은 바다!!”라는 생각이 워낙 강해 그저 흘려듣기만 했다.


아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감당하기 어려운 아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기 위해서는 어디라도 따라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띠고 친구네 가족의 호수 행 차에 아들과 함께 몸을 실었다.


그렇게 이 곳을 만났다.

하늘, 바람, 호수, 모래 그리고 더없이 평화로운 사람들이 어우러져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들의 방학과 함께 이 여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던 내가 얼마나 이 여름이 끝나질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 호수의 이름은 마르티냐노(martignano) 다.


호수로 내려서는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왼쪽으로 lago di bracciano(브라챠노 호수) 오른쪽으로 lago di martignano(마르티냐노 호수)가 보인다.( 브라챠노는 마르티냐노의 10배가 넘게 큰 호수다. )


두 호수 모두 사바티노(sabatino) 산의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났다. 그래서 호수의 모래는 아주 부드러운 흙빛이다.


산 위에 있어 로마에서 가장 뜨거웠던 날 중 하루 호수로 향했지만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신기하게도 물속에 아직 화산활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여름 태양에 데워져 물은 적당할 정도로 따뜻했다. 물에 누워 얼굴만 내밀고 한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 들리는 것은 바람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뿐이었다.

2016년 여름날의 호수

남부 왕자라 불리며 일주일에 반 이상을 아말피 해안을 배를 타고 건너는 남편도, 매일 바다를 뛰어놀아야만 가능할 것만 같은 구릿빛 피부를 소유한 아들도 놀랍지만 물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허락한 수심은 엎드렸을 때 땅 짚고 헤엄 칠 수 있을 정도다. 어쩜 그들의 위한 곳이 여기 있었다. 마르티냐노 호수에서 특히나 좋았던 것은 얇은 수심이다.


호숫가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누구든 읽고 다시 제자리에 놓고 가면 된다. 5 유로면 하루 종일 썬배드를 대여할 수 있지만 호숫가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비치타월을 깔고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자 호숫가 나무 아래에는 아크로바틱 동호회 사람들이 자릴 잡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천과 함께 춤추듯 흔들리던 아이들을 바라보며 온전히 이 태양에 바람에 이 여름날을 맡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곳을 아들은 “작은 바다”라고 불렀다. 나는 이 작은 바다에 매년 여름 우리가 함께 하게 되길 기도했다. 매년 자라나는 너의 모습을 이 곳에서 담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아마도 내년이면 이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어서 어쩌면 우리가 이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몰라”라고 친구가 이야기했다.


이탈리아다. 내년 여름이 되어야 그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조금 더 오래 이 곳에서 여름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곳이 우리에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여름날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일상을 이 순간을 선사해준 삶에 가슴 시리던 여름 날을 말이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고 다시 여름이 왔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던 이 곳은 이번 여름도 우리가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Grazie Dio.

2017년 여름날의 호수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이탈리아에서의 여행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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