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봄이는 낮잠 잘 준비를, 사랑이는 신랑과 외출할 준비를 하는 참이었다. 자기 전에 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하는데 봄이가 자꾸만 도망을 갔다.
"우리 봄이 어디 있나~ 우리 이쁜 봄이 기저귀 갈고 코 자자~."
외출 준비를 하는 신랑과 사랑이를 따라 현관 앞에 서서 있는 봄이에게 기저귀를 입히러 다가가는데 옆에 서 있던 사랑이가 대뜸 말했다.
"엄마, 엄마는 왜 봄이만 예뻐해요?" "응?" "엄마는 왜 봄이를 더 예뻐해요?"
드디어, 결국, 그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형제자매가 있는 집에서는 반드시 한 번은 거쳐가야 할 말, "엄마는 동생만 예뻐해.". "엄마는 오빠만 예뻐해." 우리 사랑이의 입에서 드디어 그 말이 나온 것이다.
"사랑아, 엄마가 봄이만 예뻐하는 것 같아? 엄마가 사랑이보다 봄이를 더 예뻐하는 것 같아?" "응"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몰라,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엄마가 봄이만 예뻐하는 것 같았어?" "응, 그랬어." "아고,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는 너도 봄이도 똑같이 아주 많이 사랑해. 그런데 엄마가 사랑이한테 표현이 부족했나 보다. 이제는 더 많이 표현해야겠네!"
사랑이를 꼭 안고 볼에다 뽀뽀를 해주며 "사랑해"라고 말해주었다. 웃으며 아빠와 외출을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한 편이 짠했다. 아직 사랑이도 너무 어린아이인데 동생과 엄마 아빠의 사랑을 나눠가지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차라리 그렇게 말을 해주니 또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지난 5일 간 사랑이의 불안과 결핍이 신체 반응으로 나타나서 1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쫓아다니고, 계속해서 자기가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를 묻는 모습을 보며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내가 조금 더 마음을 쏟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이가 그러는 것 같아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사랑이에게 마음을 쏟았다 싶었다. 사랑이에게 부족했을지 모르나 나는 내 최선을 다했다. 나를 다 내려놓고 오로지 엄마로서 살면서 지난 4년간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표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가 결핍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이유를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전문가가 아니니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랑이보다 내가 사랑이와의 분리를 더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는첫아이이다 보니 정말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사랑하며 키웠다. 아이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잠시도 혼자 노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집안일을 못한 것은 물론이고 나의 식사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렇게 키운 사랑이는 나의 성향을 닮아 감수성이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로 자랐다. 그런 마음을 받아줄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봄이가 생기면서 나와 사랑이는 분리되는 일이 많았고, 그 분리의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사랑이와의 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봄이를 돌보면서도 마음은 사랑이에게 쏟아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봄이가 갓 태어나 먹고 자고만 하던 시절에는 잠깐의 여유만 생겨도 신랑과 잘 놀고 있는 사랑이에게 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최근에도 사랑이가 혼자서, 혹은 아빠와 잘 놀고 있는데도 굳이 내가 끼어들어 아이와 시간을 가지려고 애썼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라 여겼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랑이가 엄마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조금씩 외연을 넓히려 할 때마다 내가 다시 나를 찾게끔 했던 것 같다.
내가 사랑이와의 시간이 필요해서, 내가 첫아이와의 분리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이의 마음을 자꾸만 내게로 묶어둔 것이었다.
사랑이가 더 아기였을 때, 신랑이 조금 더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빈자리를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챙기는 시간에 사랑이가 혼자서 무언가를 도전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새로운 환경을 인정하고 아이와의 분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과거는 결코 바꿀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 사랑이 마음에 더 이상의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나부터 사랑이와 조금씩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비워둔 자리를 아빠로, 할머니 할아버지로, 형으로, 누나로, 선생님으로, 친구로 조금씩 조금씩 채워나가며 더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나는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지지해주어야 한다.그리고엄마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내가 내 중심을 잘 잡고 아이를 키워낸다면, 우리 사랑이는 잘 자랄 것이다. 그러니 엄마인 내가 불안해말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사랑하는 만큼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런 엄마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 엄마가 꼭 되고 싶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매사가 서툴고 실수투성이이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것은 신기하리만큼 매일이 '새날'이라는 것이다. 어제의 실수가 내 아이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 실수했더라도 오늘 다잡을 수 있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제의 실수가 오늘의 실수로 이어지지 않도록 애쓰면 된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 혹여 함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