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야.

아이들 앞에서는 부부싸움도 복화술로 해야 한다더니.

by 진아

아이를 낳고 나면 부부싸움도 복화술로 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 상황에 자주 노출될 경우 아이들의 심리에 매우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부부 사이가 좋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잘 싸우지 않는다. 한 공간에서 갈등 상황을 견디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웬만해서는 서로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각자 참는 편이다. 좋은 말로 하면 서로의 다른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어차피 상대를 내 마음에 맡게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에 빠지면 다른 것에 철저히 무신경해지는 신랑과 어떤 상황에든 민감하게 대응하는 나는 매번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한쪽이 혹은 양쪽이 그것을 모른 척 애써 넘겨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 두 사람 모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는지 사소한 일에도 자주 날이 섰다.




며칠 전에도 신랑의 소소한 행동들에 점점 화가 나서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예컨대 옷을 세탁실 입구에 그냥 막 벗어 놓는 것, 신고 나갔다 온 양말을 욕실 앞에 고스란히 벗어둔 것, 아이들이 저녁 준비하는 내게 매달려서 징징대는데 방에서 빨리 나와보지 않는 것 등.(평소 신랑은 아이들이랑도 같이 잘 놀고 집안일에서도 자기가 할 부분은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화가 나기 시작한 날은 잘한 기억은 모두 사라진다.)

차오르는 화를 참고 저녁으로 떡국을 끓인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그날따라 사랑이가 계속 옆에 와서 같이 놀자며 짜증을 부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조리도 되지 않은 떡국떡을 먹겠다고 씻어놓은 떡을 집어 대기 시작했다. 좋은 말로 달래고 이해하도록 설명해도 점점 막무가내였다. 결국에는 씻어놓은 떡이 담긴 그릇을 반쯤 엎어서는 떡을 집어가는데 순간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할 듯 차고 올라왔다.


'안돼! 어떻게 참은 건데. 애한테 소리 지르지는 말자.'


정신을 다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손에 떡을 쥐고 있는 사랑이의 손을 잡아 떡을 뺏어 그릇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요리해서 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사랑이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신랑에게로 갔다. 신랑은 그제야 아이를 달래며 거실로 나왔고 그렇게 두 아이와 신랑이 같이 노는 동안 떡국을 끓였다.


'아니, 진작 좀 나와서 애들과 있어주면 안 되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을 하느라 뻔히 내가 저녁 준비 중인 걸 알면서도 방에서 나오질 않는 거야. '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겨우 마음을 억누르고 떡국을 그릇에 담아낸 뒤 저녁 먹자고 불렀더니 두 아이는 아빠랑 노는 데에 빠져 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신랑이라도 빨리 가서 먹자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몇 번을 먹자고 해도 셋이서 까르르 웃으며 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때까지 차오르던 화가 눈물로 바뀌어 울컥하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떡국과 수저를 놓아두고는 아이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후드득,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마음이 좀 가라앉아서 멍하니 엎드려 있는데, 신랑과 사랑이가 저녁을 먹으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내가 방에 들어간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사랑아, 근데 엄마 어디 갔지?"

"어딘가 있겠지. 있을 거야."

"엄마 나간 것 같은데?"

"아니야. 엄마 숨바꼭질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근데 엄마가 왜 갑자기 사라졌지?"

"엄마 화났어."

"왜?"

"내가 아까 떡 그냥 먹을 거라고 계속 떼썼어."


순간 멍해졌다. 나는 떼를 쓰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런 상황에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신랑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그리고 신랑에게 화 난 마음을 아이에게 풀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자신에게 화가 나서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불같이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온몸으로 지금 엄마는 화가 나있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자기의 행동에서 엄마가 화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아이와 신랑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아빠, 나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잠시 나갔나 봐. 곧 올 거야. 그리고 사랑이 옆에는 아빠가 있잖아."

"아빠보다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엄마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엄마 올 거야."

"나 걱정돼. 엄마가 안 올까 봐."

"그럼 밥 다 먹고 우리가 엄마 찾으러 가볼까?"

"그럼 킥보드 타고 가보자! 그럼 되겠네!"


사랑이는 말없이 사라진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먹거렸고 신랑은 내가 진짜로 밖에 나갔다고 여기는 듯했다. 중요한 것은 신랑은 내가 자기한테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사랑이가 나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된다는데 더 이상은 방에 엎드려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거실에 나갔더니, 사랑이는 반가운 기색은커녕 도리어 내 눈치를 살폈다. 아마도 내가 자기에게 화가 났다는 생각 때문인 듯했다.


"사랑아, 잠시 이리 와봐."

"왜, 엄마?"

"엄마 너한테 화난 거 아니야."

"그러면?"

"사실은 엄마가 아빠한테 조금 화가 났는데 너한테 화난 것처럼 보였나 봐. "

"아빠 왜?"

"가끔 어른들도 그럴 때 있어. 아빠랑 엄마도 다투거나 마음이 안 맞아서 서로가 미워 보일 때가 있어."

"... 그럼 나 상어 책이랑 고래 책 읽어줄 거야?"

"당연하지! 엄마가 아까 말도 없이 방에 들어가 버려서 미안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랑이는 요즘 푹 빠져 있는 상어 책과 고래 책을 가져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같은 책을 읽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사랑이는 금세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사랑아, 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야. 그런데도 너를 걱정하게 하고 눈치 보게 해서 정말 미안해. 엄마가 여전히 부족하고 서툴러서 그래.'


그 곁에서 아이들보다 더 먼저 코를 골며 잠든 신랑을 보며 어찌 된 영문인지 화보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여보, 오늘은 사랑이 때문이 아니라 당신에게 화가 났던 거야. 우리 부부에게도 지금이 쉽지 않은 시간인 거 알아. 그래도 지나고 보면 아이들이 어린 지금이 제일 좋은 시절이래. 우리 조금만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부부가 되면 좋겠어. 그리고 진짜 만약에라도 애들 앞에서 다투는 일이 생긴다면, 복화술로! 알았지?'


애들이 잠들면 신랑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그렇게 속엣말로 대신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 가족은 별일 없었다는 듯 저마다의 새날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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