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너를 위한 거라고 해놓고는.

나의 선한 의도가 우리의 선한 결말에 가닿도록.

by 진아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만 있기 시작하면서 우리 부부는 근처 화원에 가서 아이들이 직접 고른 화분 몇 개를 사 와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우리 부부는 누구나 다 키울 수 있다는, 정말로 손 갈 일이 없다는 스투키도 시들게 한 대단한(?) 똥손 부부다.


그런데 두 아이 모두 워낙 꽃을 좋아해서 집에서 꽃을 키워보면 어떨까 막연히 생각만 해보던 참이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외출조차 쉽지 않아 지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꽃 화분 한두 개쯤 키워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진분홍 수국, 귤나무, 영산홍 화분까지 세 개를 사 왔는데 꽃이 너무 예쁘게 피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해바라기, 파란 수국 화분에 방울토마토 모종까지 사 와서 빈 화분에 심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하며 눈뜨자마자 베란다에 나가서 꽃에 물을 주겠다고 성화였다.


사랑이는 말을 알아들으니 내가 생각한 대로 화분에 물을 주면서도 흙이나 꽃도 크게 헤집지 않았다. 복병은 봄이였다. 봄이는 도대체가 제멋대로였다. 방울토마토 화분의 흙 파기는 물론이거니와 꽃 화분의 흙 위에 놓여있는 작은 돌멩이 헤집기, 그러다 꽃 따기 등 한 번 베란다에 들어가면 베란다 전체를 헤집어 놓기 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더 문제는 그런 봄이를 보며 사랑이도 가세를 해서 함께 논다는 것이다.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행복하게 노는 두 아이를 베란다에서 끌어내는 것은 언제나 전쟁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위해서 화분을 들여놓은 베란다에 아이들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겼다. 아이들은 안방 창문 넘어로만 꽃을 보았다.




오랜만에 사랑이가 베란다에 가서 꽃을 보고 싶다기에 큰마음을 먹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베란다에 들어간 봄이는 흥분상태가 되어서는 갑자기 방울토마토 화분의 흙을 찔러보며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사랑이까지 덩달아 옆에 앉아 흙을 파기 시작하는데 말릴 도리가 없어서 묘목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한쪽 귀퉁이를 가리키며 그쪽만 파보라고 했다. 두 아이는 모두 흙파기에 심취해서 신나게 흙을 파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겨우 한 개 열린 방울토마토도 만지작거리다 톡 따버렸다. 그래도 사랑이는 공룡놀이가 하고 싶다며 얼마 있지 않아서 거실로 나갔는데 봄이는 너무 재밌는지 도통 나갈 생각이 없었다. 결국 직전에 깨끗이 갈아입은 옷은 물론이거니와 손과 다리 모두가 엉망이 되었고, 끝내는 흙을 찍어 얼굴에 발라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봄아! 안돼! 나가자! 안 되겠다.”


봄이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내 손에 끌려서 거실로 나왔다. 거실 바닥에 흙 발자국을 열 개쯤 찍고서야 욕실로 갔고, 겨우 씻겨서 데리고 나왔더니 그때까지 억지로 끌려 나온 것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는지 울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달래느라 안고 서서 거실을 서성이다가 문득 며칠 전 놀이터에서 장면이 떠올랐다.




며칠 전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에 나갔는데,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아무 데나 앉을까, 아무거나 집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OO아, 그거 만지면 안 돼. 거기는 그냥 앉으면 안 돼!”


아이 엄마는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새하얀 원피스에 흙이 묻을까 조마조마하며 자리를 깔아주고, 소매를 걷어주느라 바빠 보였다.

그 모습을 힐끗 보며 ‘저럴 거면 하얀 옷을 왜 입힌 거야.’ 혼자 생각했다. 그 아이는 끊임없이 주저앉아 잔디와 흙을 만지며 놀고 싶어 했고, 그 엄마는 어차피 더러워진 그 옷을 어쩔 줄 몰라하며 자꾸만 털어냈다. 아이는 너무나 예쁜 옷을 입고, 자꾸만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녀를 보며 예쁜 옷을 입혀 데리고 나오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어쩐지 예쁜 옷을 입고도 자주 울 듯한 아이의 얼굴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런데 오늘 나의 모습이 그 엄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집에 식물을 들이고 키워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은 순전히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식물 키우기에 재능도 관심도 없는 내가 다육이 한두 개도 아니고 꽃 화분 다섯 개에 방울토마토 모종까지 사 와서 심은 것은 오로지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바깥 활동을 잘하지 못하니 집에서 꽃과 식물을 키우며 흙도 만져보고 꽃이 피고 열매가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이 꽃을 만지다 꽃잎을 떼 버릴까 봐, 흙을 만지다가 토마토 모종이 쓰러질까 봐, 아니 그보다 베란다 바닥이 흙과 작은 돌멩이로 더러워져서 치울 일이 깜깜해질까 봐, 아이들 몸과 옷에 흙이 묻어 다시 씻기고 빨아야 하는 나의 일이 늘어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꽃을 보면 만져보고 싶고 흙을 보면 파고 싶고 그러다 보면 옷과 몸이 더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집에 꽃과 화분을 들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예쁜 옷을 입혀 나온 마음이나 집에 식물을 들여놓은 마음은 모두 좋은 마음이었겠지만, 그 마음은 결국 놀이터에서 맘껏 놀지 못하도록 쫓아다니거나 베란다를 어지럽힌다고 베란다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 결과적으로 아이를 울리거나 혼내게 되는 결말로 끝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아이들은 내가 펼쳐놓은 도화지 위에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그리기 도구를 선택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뿐, 결코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리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내 의도는 도화지를 펼치는 것, 딱 거기까지만 영향을 미쳐야 한다. 어떤 도구로 어떻게 그릴지는 아이들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잠든 후 베란다에 들어가서 봄이가 남겨놓은 흔적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내일 이 베란다의 문을 열 때에는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시간을 보내봐야겠다고. 물론 꽃을 마구 꺾거나 모종을 뽑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분명히 가르치겠지만, 몸에 흙이 묻으면 "나중에 씻으면 돼", 옷을 버리면 "갈아입으면 돼", 베란다가 어질러지면 "같이 물청소해볼까?"라고 말해야겠다고.


그렇게 선한 의도가 선한 결말에 가닿을 수 있도록 내 마음부터 다잡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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