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답게, 여자답게 말고, '너'답게 자라렴.

엄마의 반성이자 기도이고, 다짐인 글

by 진아

며칠 전 잠시 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신랑이 아이 둘을 보고 있고 혼자서 외출을 했다가 돌아왔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신랑이 아이 둘을 양쪽 팔에 안고 마중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반가움은커녕 울컥, 화가 치밀었다. 신랑이 말도 없이 봄이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것이었다. 한눈에 봐도 대충 자른 티가 역력했다. 삐뚤빼뚤은 기본, 중간중간 튀어나온 긴 머리카락은 덤, 꼭 바가지를 뒤집어쓴 듯한 형상이었다. 더 화가 난 것은 봄이를, 내 예쁘고 귀한 딸을 누가 봐도 아들이라고 할만한 모습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날 아침에 두 아이와 물놀이를 하면서부터 조짐이 보였다. 신랑이 봄이 머리가 길다고, 앞머리가 눈을 찌를 것 같다며 가위를 달라고 하는 걸 잘못하다가 애 다친다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두라고 했었다. 나중에 봄이의 앞머리만 살짝 잘라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외출을 하자마자 기회다 싶었는지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그것도 앞머리만이 아니라 앞뒤 양옆까지... 신랑의 생각은 단순했을 것이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면 애가 불편하다. 머리가 길면 감기고 말리는 것도 힘드니 앞머리 자르는 김에 다 자르자.'

안 들어봐도 알듯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딸아이의 머리를 그렇게 잘라놓은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머리카락이 쭈뼛 설만큼 화가 났다. 그런데 아이들이 있으니, 그리고 신랑에게 논리적으로는 반박할 말이 없으므로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했다. 대신 말도 없이 애 머리를 이렇게 잘라놓으면 어쩌냐고 혼잣말로 구시렁거리고는 표정이 안 좋으니, 신랑도 내 기분을 눈치채고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봄이 머리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딸내미 머리를 이렇게 잘라놓는 게 어딨담! 요즘 한참 삐삐머리로 묶어주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아, 보면 볼수록 남자아이 같아. 진짜 마음에 안 들어...'


혼잣말을 수백 번은 해가며 짧아진 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두 아이가 모두 잠들고 나서 일기를 쓰려고 앉았다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난 데다,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하며 봄이를 보여줬더니 사랑이와 똑 닮았다며, 귀엽기만 한데 왜 그러냐고 도리어 핀잔을 받은 터라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 때였다.


'나는 왜 어차피 다시 자랄 머리카락으로 그렇게 화가 났었나, 그리고 신랑의 논리 중 반박할 말이 있긴 한가.'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봄이를 '여자답게'의 틀 안에서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던 것이다.


딸과 아들을 동시에 키워본 엄마라면 격하게 공감할 만한 것이 딸은 옷을 사러 나갈 맛이 난다는 것이다. 옷을 사러 나가보면 남자아이 옷과 여자아이 옷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색감도, 무늬도, 화려함도 차원이 다르다. 액세서리는 또 어떤가. 신발은? 모자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별로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로 양분된 세상에 살고 있었다.


사랑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안 20주 이후부터 선물로 받은 모든 옷들은 대체로 하늘색 계열의 옷이었다. (그 뒤 봄이는 90%가 분홍색 계열의 옷을 선물 받았다.) 그에 대한 반발심리였을까? 적어도 남자아이니까 무조건 파란색 옷을 입히는 엄마는 아니고 싶어서 사랑이에게 잘 어울리는 옷 색깔을 찾느라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혀보았다. 그 결과 사랑이의 피부색과는 주황색 계열의 옷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사랑이는 연두색, 분홍색, 하얀색, 하늘색 식판 중 망설임 없이 분홍색 식판을 고르는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 봄이를 낳고는 나 스스로도 봄이를 '여자답다'는 세상의 틀에 꽉 맞춰 키웠다. 머리카락이 아주 얇고, 머리숱도 많지 않았던 아기였는데, 머리카락이 조금 자라기가 무섭게 색색깔의 핀을 사서 끼워보았다. 머리 크기와 비례할 법한 큰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씌워서 외출을 했다. 머리카락이 조금 길자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묶어주었다. 분홍, 노랑, 주황 계열의 원피스를 사 입혔다. 그리고는 너무 예쁘다고 감탄하며 여기저기에 자랑을 했다.


비단 옷 색깔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이는 대근육 발달이 매우 빠른 아이여서 18개월에 아빠와 축구공을 갖고 운동장을 달리던 아이였다. 26개월에 이미 킥보드를 자유자재로 탔다. 그런 성향과는 정반대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책을 한 번 읽어주기 시작하면 20분이고 30분이고 집중해서 들었다. 기질적으로는 아주 예민한 아이라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낯선 것에 대한 경계가 아주 심했다. 손이나 옷에 뭐가 조금이라도 묻으면 닦아야 하고 갈아입어야 하며, 젖은 머리를 극도로 싫어해서 머리를 물기 하나 없이 완전히 다 말려야만 욕실에서 나간다.

봄이는 아직 사랑이만큼 많은 부분이 드러난 개월 수는 아니나, 호기심이 왕성해서 낯선 것에 대한 경계를 호기심이 이기는 아이이다. 대근육 발달은 사랑이보다 더 빨라서 9개월에 걷기 시작했고, 14개월에는 혼자서 앞구르기를 터득했다. 놀이터에 가면 제법 높은 계단도 서슴없이 오르고, 미끄럼틀도 혼자 타려고 한다. 요구사항이 있으면 온몸으로,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나나 신랑이 그것을 못 알아들으면 알아들을 때까지 난리가 난다. 가만히 앉아서 노는 시간은 거의 없고 거의가 뛰고, 숨고, 꺼내고, 무너뜨리며 논다. 또 애교가 많고 표현이 뛰어나서 무뚝뚝한 엄마 아빠까지 덩달아 애교 부리게 만드는 아이다.


나는 그런 두 아이에 대해 말할 때, 사랑이는 예민한 기질이 있긴 하지만 '남자아이답게'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이라고, 봄이는 애교가 많지만 '여자아이 답지 않게' 별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라고 했다. 적어도 '남자답게, 여자답게'구분에서는 벗어난 사람이라 스스로를 생각해왔었는데 자식 문제 앞에서 모든 것이 까발려진 느낌이 들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스스로의 양육방식에 대해 돌아보았다. 알게 모르게 '남자아이니까 괜찮아, 여자아이니까 괜찮아'라고 구분 지으며, 아이들을 틀 안에 둔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두 아이가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남자다운', '여자다운'의 틀 안에 갇히지 않고 '나다운'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이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이 잘 어울리는지,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가 그럴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함께 하고, 많은 책을 읽어주며, 아이의 질문에 열린 대답을 하고, 아이보다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싶다.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여자아이의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잘랐다고 화를 내는 엄마가 아닌,

아이의 불편을 덜어준 신랑에게 고마워할 수 있는 아내이자,

앞머리가 더 이상 눈을 찌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정말이지 밖에만 나가면 앞만 보고 달리는,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그곳이 흙바닥이든 보도블록이든 망설임 없이 주저앉는 봄이에게, 원피스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머리에 핀을 꽂기 무섭게 빼버리는 봄이에게 핀은 쓸데없고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일 뿐이다.


'여자아이'라는 세상의 틀에 맞춰 보지 말고, 그저 '봄이'로 봐야겠다. 엄마인 나부터 그래야겠다.

수국을 좋아하는 아들과 앞구르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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