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자다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깨버린 사랑이가 울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워낙에 잠투정이 심한 아이라 어련히 그런가 보다 싶어서 달래주려고 “엄마가 안아줄게.”라고 했더니 갑자기 온몸에 힘을 주고는 눈에 핏발이 설만큼 악을 쓰면서 "엄마 저리 가, 오지 마!"라며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무 방어태세도 취하지 못한 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잠투정이겠거니 생각하고 안아줄 테니 진정해보자며 다시 한번 부드럽게 얘기했는데, 오히려 더 악을 쓰며 내 몸을 제힘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신랑이 달래 보려고, 진정하고 아빠랑 밖에 나가보자고 했더니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도리어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신랑의 어깨와 손을 팍 하고 밀어버렸다. 이내 곁에 있던 봄이에게까지 소리를 지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잠투정이라도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사랑! 그만해!”
“엄마, 저리 가!!!! 오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 마!”
“으아악악악!”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어!”
그만하라고 한대서 그만할 사랑이가 아니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수록 아이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결국 나까지 욱하고야 말았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말하면서 내가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아주 무서운 목소리로, 눈까지 부릅뜨고 말이다. 잠투정에, 엄마에게 혼난 설움까지 더해져 사랑이는 보란 듯이 더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결국 사랑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앉지 않으려는 아이를 힘으로 앉히고 나도 마주 앉았다. 사랑이는 몇 분을 더 악을 쓰며 울었고, 나는 사랑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 쉬”
훈육 상황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그것만큼 난감한 경우가 없다. 그래도 바지에 싸게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사랑이를 방에서 데리고 나와 화장실 앞에 세웠다.
“들어가서 하고 와.”
“엄마가 바지 벗겨줘.”
“아니야, 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야.”
“못해, 못해!!!”
“아니, 할 수 있어. 못하면 여기에 그냥 쌀 수밖에 없어. 하고 와.”
“못한다구!”
“그냥 하라고 했어! 아니면 그냥 바지에 싸!!”
“엄마, 미안해요. 엉엉엉”
사랑이는 내 표정과 목소리에 압도되었는지, 갑자기 미안하다며 나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아이의 훈육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랑이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은지 바지를 내려달라, 팬티를 내려달라, 혼자는 못한다, 쉬를 쌀 것 같다는 말들만 반복했다. 나는 버텼다.
결국 사랑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나더러 나가라고 하더니 혼자 소변을 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사랑이는 좀 전까지 그렇게 울며 짜증을 부리던 아이가 맞나 싶을 만큼 기세가 확 꺾여 있었다. 사랑이를 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진정된 아이를 보자 내 마음도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머리끝까지 났던 화도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사랑아, 네가 낮잠을 덜 자고 깨서 화가 짜증이 났던 거야?"
"내가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깼어."(이건 사랑이의 상상일 뿐, 사실은 아무도 시끄럽게 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야, 사랑아. 아무도 시끄럽게 한 사람은 없었어. 네가 갑자기 깨서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한 거야."
"너무 피곤해서 더 자고 싶었는데, 깨서 화가 났어."
"그래, 너무 피곤한데 더 못 자서 화가 났을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엄마 아빠를 미는 행동은 안 돼."
"엄마, 근데 그건 기억이 안 나."
"네가 너무 잠이 올 때 한 행동이라서 기억이 안 나나 보다. 하지만 앞으로도 엄마나 아빠를 미는 행동은 안 돼."
"응, 알았어. 엄마 근데 내가 말하려고 하는데 딸꾹질이 계속 나서 말을 못 했어.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엄마가 많이 무서웠구나. 하지만 엄마는 네가 그렇게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엄마나 아빠를 미는 행동을 하면 앞으로도 안 된다고 무섭게 말할 수밖에 없어."
"응, 알았어."
"이리 와, 안아줄게. 엄마가 많이 무서웠어?"
"응."
눈두덩이가 새빨개진 아이를 끌어안았다. 땀 냄새와 눈물 냄새가 코끝까지 올라왔다. 아이를 두렵게 했다는 생각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이의 공격적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에 나의 감정이 깊이 개입되고야 말았다. 혼만 내야 하는 상황에서 화까지 낸 것이다. 진정한 훈육은 아이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인데 최근 들어 훈육의 상황에서 자꾸만 나의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생긴다.
사랑이가 네 살이 되면서 훈육을 해야 할 일들이 늘어간다. 나는 권위적인 부모는 되고 싶지 않지만, 부모로서의 권위는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기준이 분명하고 명확한 편이다. 그리고 일관성 있게 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네 살 남자아이를 훈육해야 할 상황이 자주 생길 수밖에 없다.
훈육, 말 그대로 가르쳐서 기르는 일이다.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를 세워주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내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려고 꿈틀거린다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참지 않는 이상 “안 돼”, “그만해”라는 말보다, “사랑!!!!!!!”이라며 화를 가득 담아 부르는 아이의 이름이 입 밖으로 먼저 나온다. 훈육 상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화도 점점 차올라서, 어느 선을 넘어가면 나도 이성의 끈이 탁하고 끊어져 버린 것처럼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육아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훈육을 할 때는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는데, 나는 단호하고 분명한 메시지에 내 감정까지 한껏 실어서 아이에게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는 엄마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그런 표정과 목소리로 화를 내는데 안 두려워할 아이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엄마의 쏟아지는 화를 온몸으로 받은 사랑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오후 내내 더 이상 낮잠을 자지 않고도 잘 놀았다. 저녁 식사 시간, 갑자기 물 120ml를 한 번에 쭉 마시더니 “엄마, 나는 물사랑이야. 물을 좋아해서!”라며 깔깔거렸다. 그러더니 “엄마는 꽃엄마야. 엄마는 꽃을 좋아하니까!”라며 씩 웃었다. 사랑이에게 화를 내고 미안함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하아, 꽃엄마라니... 세상 제일 무서운 꽃이겠구나 싶었다.
“사랑아, 엄마가 아까 무섭게 해서 미안해.”
“응?”
뜬금없는 내 말에 사랑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봤다. 사랑이는 이미 다 잊어버린 일을 나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가 보다.
“아니야, 아까 엄마가 너한테 화를 낸 게 미안하다는 말이었어.”
“언제?”
“아니야, 아니야. 아무튼 엄마가 꽃엄마라니 너무 예쁜 이름인데?”
“응! 엄마는 꽃을 제일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꽃엄마지!”
“고마워, 사랑아! 엄마 진짜 행복하다.”
혼만 냈어야 하는데, 화까지 내어버린 오늘. 조금 더 단단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소망해본다. 내 마음의 화는 내 안에서 가라앉히고 내 머릿속의 메시지만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작 엄마 4년 차이지만, 조금이라도 내공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말해야 할 상황에서 소리 지르지 않고 아이의 감정에 따라 함께 감정의 널을 뛰지 않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